검찰 뒤흔들 ‘이국철 뇌관’ 터지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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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철 폭로 정국 2탄’ 전망 나오게 하는 정황 포착…‘검찰 로비 리스트’ 조만간 공개될 수도

(왼쪽) ⓒ 시사저널 윤성호, (오른쪽) ⓒ 시사저널 이종현

“나 한 사람 구속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다만, 왜 SLS그룹이 워크아웃당하면서 이렇게 망가졌는지 그 진실만 밝힐 수 있으면 된다.”

지난 9월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터뜨렸던 울분이다. 이회장은 당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했다”라고 처음 폭로할 때부터 이미 ‘감옥행’을 각오했던 것이다. 실제 그는 11월16일 신 전 차관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이국철 폭로 정국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고, ‘SLS 사태’ 또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이다. 정작 이회장이 그토록 갈망했던 ‘SLS 사태 진상 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회장은 구속되면서 비망록 일부를 언론을 통해 공개했고, 나머지도 머지않아 추가 공개할 예정이어서 아직 이번 사태가 막을 내렸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특히 <시사저널> 취재 결과, ‘새로운 뇌관’이 곧 점화될 듯한 긴박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 9월 본지의 최초 보도로 한 차례 정국을 강타했던 ‘이국철 폭로 정국’이 곧 2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회장이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쥐고 있던 이른바 ‘검찰 로비 리스트’가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정치권과 사정 당국 일각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회장의 ‘검찰 로비 리스트’를 추적했다.

이국철, 본지 취재진에  일부 실명 귀띔해

지난 9월, 본지 취재진은 당시 이회장을 여러 차례 만나 그동안 이회장이 금품 및 향응을 제공했던 여권 및 사정 당국 인사들에 대한 증언을 상세히 들었다. 여권 인사로는 신재민 전 차관을 비롯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거론되었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10억원대 이상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여권 핵심 실세’측에도 ‘어마어마한 거액’이 전달되었다고 했다. 이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전달된 금품은 여권 실세측에 전달된 것의 10분의 1도 안 된다”라고까지 말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A4용지 아홉 장 분량의 이회장 자필 문건에 따르면, 이회장은 2008년 추석과 2009년 설 때 신 전 차관을 통해 청와대 인사들에게 백화점 상품권 5천만원어치를 전달했다고도 주장했다. 박 전 차관의 경우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5월22일 일본 출장 당시 SLS그룹 일본법인 사장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았다고도 했다.

이회장은 “당시 밥값과 술값, 화장품 선물값 등으로 5백만원 정도를 썼다. 일본법인 카드 사용 내역서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은 곧 반격에 나섰다. “일본 출장 당시 술값 등은 SLS그룹측이 아닌 내 지인이 계산했다”라고 반박하며, ‘영수증’이라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박 전 차관 등은 지난 9월27일 이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상황이 역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최근 다시 나오고 있다. 박 전 차관의 일본 출장 건에 대한 이회장의 재반격 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9월18일 본지 취재진에게 “내가 입을 열면, 현재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가운데 최소한 10명 정도는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라고 폭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회장으로부터 SLS그룹 법인카드를 건네받은 신 전 차관이 이를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돌려쓰게 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 입수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자필 문건.ⓒ 시사저널 우태윤

‘폭로 로드맵’ 꼬이자 ‘마지막 카드’ 빼든 상황

이회장은 지난 9월 초 청와대에 진정서를 전달했다고 했다. 진정서에는 이회장이 금품과 향응 등을 제공했던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적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서를 전달하면서 이회장은 청와대에 △SLS조선 워크아웃 과정과 관련해 산업은행과 수출보험공사 등을 수사해 진실을 밝혀줄 것 △통영해양경찰이 (이회장 등을) 다시 수사하게 된 배경과 배후 세력을 밝혀줄 것 △SLS그룹을 원상 복귀시킬 것, 세 가지를 요구했다. 또한 “만약 청와대가 SLS 사태에 대해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여권 인사들의 비리 내용을 1차, 2차에 걸쳐 폭로할 수밖에 없다”라는 최후통첩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청와대 쪽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신 전 차관을 필두로 ‘이국철의 폭로’가 시작된 것이다. 

본지 취재진이 당시 이회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른바 ‘이국철 폭로 로드맵’은 이렇다. ‘청와대에 SLS 사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진상 규명이 이루지지 않을 경우 신 전 차관과 박 전 차관 등과 관련된 내용을 먼저 1차로 폭로한다. 그런데도 여권이 진상 규명을 하지 않았을 경우 ‘여권 핵심 실세’와 관련된 내용을 2차로 폭로하고, 여권이 끝까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사정 당국 관계자들에게 제공된 로비 내역을 3차로 폭로한다’는 것이었다. 이회장은 연간 매출 2조원대에 달하는 SLS그룹이 왜 워크아웃에 들어갔는지, 그 과정에 여권 실세들이 개입했는지 등을 여권 스스로 밝혀야 할 것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하지만 이회장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의 검찰 수사는 변죽만 울리고 있었던 셈이다. 신 전 차관에게 대가성 있는 뇌물을 전달했는지에만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와 함께 검찰은 SLS그룹 구명 로비 명목으로 이회장으로부터 7억8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대영로직스 대표 문 아무개씨를 11월20일 구속했다. 이회장이 2차로 폭로하려 했던 ‘여권 핵심 실세’의 경우, 이 실세의 보좌관인 박 아무개씨가 문씨로부터 고가의 여성용 명품 시계 등을 받았다가 최근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돌려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국철 로드맵’대로라면 이미 1, 2차 폭로는 대략적으로나마 끝난 셈이다. 

그럼에도 SLS그룹 사태에 대한 진상 규명 수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구속된 이회장으로서는 3차 폭로인 ‘마지막 카드’를 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회장은 지난 9월 본지 취재진에게, 자신이 로비를 벌인 사정 당국 관계자 세 명의 실명을 귀띔한 바 있다. 한 명은 경찰 고위 간부였다. 나머지 두 명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었다. 이회장은 “만약 그들의 이름이 공개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이회장이 거론했던 두 명의 검찰 출신 인사 가운데 한 명인 ㄱ씨는 공교롭게도 SLS 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법조 인사이다. ㄱ씨는 현 정권의 핵심 인사와도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 명인 ㄴ씨는 검찰에서 한동안 다른 기관으로 파견 나갔다가 최근 정부 부처 고위직으로 복귀한 인물이다.

최근 들어 이 두 명 이외에도 검사장급 이상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 다섯 명의 실명이 정치권과 사정 당국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이른바 ‘이국철의 검찰 로비 리스트’이다. 현재까지 거명되고 있는 전·현직 검찰 인사만 모두 일곱 명인 셈이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범상치 않다.

지난 11월17일 뇌물 공여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이 결정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핵심 고위직, “만난 적 없다” 강하게 부인

검찰의 핵심 간부인 ㄷ씨의 경우, 이회장과 앞서 언급한 ‘여권 핵심 실세’의 박보좌관 등과 두 차례 만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ㄷ씨가 현재의 직위에 오르기 전이었고, 검찰이 SLS그룹 사태를 한창 수사하고 있을 때였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ㄷ씨가 이회장, 박보좌관 등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만났던 시점이 하필이면 검찰이 SLS그룹을 수사할 때여서 ㄷ씨가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ㄷ씨측은 “이회장과 박보좌관 두 사람 모두를 만난 적도 없고, 모르는 사람들이다. <시사저널>이 기사를 쓰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출국 금지를 당한 박보좌관은 지난 9월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 이후 최근까지 2개월 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이회장은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쳐 현재는 권력 핵심 기관의 주요 간부로 있는 ㄹ씨에게는 대기업에 다니는 ㄹ씨의 사위를 통해 1억원 상당의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을 떠난 고검장급 출신 ㅁ씨의 실명도 오르내리고 있다. 그 밖에 지검장 출신인 ㅂ씨와 ㅅ씨 등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정부 부처에 근무하고 있는 ㄴ씨와 지검장 출신인 ㅂ씨는 검찰과 관련해 안 좋은 소문이 나돌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이회장측은 조만간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 로비 리스트’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하고,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 이회장은 구속되기 직전까지 이 방송사 취재팀과 3주 정도 함께 움직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 프로그램이 방송될 경우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국철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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