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된 한·미 FTA, 우리 생활에서 무엇을 바꾸나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1.2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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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풀리는 미국산 대거 들어와 과자·포도주·양념류·축산품 가격 떨어질 듯 / 미국 방송 프로그램 늘어나고 인터넷 실명제도 대폭 완화될 가능성

게리 로크 미국 상무장관(왼쪽)이 지난 4월27일 외교통상부를 방문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비준을 마치면서 발효를 앞두고 있다. 야당이 무효 투쟁에 나서고 있지만 과거 ‘날치기 법안’이 무효로 처리된 경우는 없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국내 산업 구조뿐만 아니라 한국인 소비 생활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FTA 발효로 지금부터 15년 안에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면서 한국 소비자는 식탁, 안방, 인터넷, 자동차, 약품 등 생활 곳곳에서 변화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음식료, 방송, 인터넷, 자동차, 약품과 같은 소비재 품목에서 한·미 FTA가 가져올 변화상을 전망했다. 

■ 음식료 ‘수입 음식료값 인하, 후생 증가’

제과나 스낵 품목 관세율이 낮아지면서 다국적 제과업체가 한국에 바로 진출할 수 있다. 프록터앤갬블(P&G)이 감자칩 프링글스나 크래프트푸드가 나비스코 쿠키를 한국에 직접 팔 수 있다. 이로 인해 국산과 외국산 상관없이 과자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입업체가 가지는 중간 마진이 사라지면서 국내 제과업체와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초콜릿이나 파이류는 5년 후, 빵류는 10년 후 수입 관세가 철폐된다. 이로 인해 한국 소비자는 미국 초콜릿이나 파이 브랜드를 지금보다 더 많이 소비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면서 소비자 후생은 아울러 커진다. 

한국 소비자는 캘리포니아산 포도주를 지금보다 싸게 즐길 수 있다. 미국산 포도주 수입 관세(15%)가 바로 철폐되기 때문이다. 미국산 맥주나 위스키 값도 아울러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맥주 관세율 30%가 7년 내에 철폐되면 수입 맥주값은 20% 떨어질 수 있다. 버드와이저나 쿠어스 같은 미국 맥주를 지금보다 싸게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맥주와 경쟁해야 하는 국산 맥주업체도 아울러 맥주값을 낮출 것이다.

관세율이 1백35~3백77%나 되는 고추, 마늘, 양파, 생강의 관세가 15년 후 철폐된다. 장기적으로 양념 품목 값이 떨어져 소비자 효용은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세이프가드 조항이 18년 동안 적용되므로 미국산 양념류가 한국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축산 식품 가격은 크게 떨어진다. FTA가 발효되면 수입 관세가 없어져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난다. 미국산 돼지고기 삼겹살값은 1kg 기준 1만1천원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삼겹살 관세 철폐 시기는 10년 후이지만 냉동 목살은 2016년에 없어진다. 이에 따라 미국산 냉동 목살이 먼저 한국 식탁 위에 오를 듯하다. 이미 올해 1~8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백39% 증가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15년 동안 해마다 2.5%씩 관세율이 낮아진다. 유기농 포도즙이나 오렌지주스, 슬라이스 치즈는 36~54% 가격 인하 요인이 생긴다. 오렌지·자몽·레몬·체리·청포도 같은 과일류는 24~1백44%까지 관세가 낮아져 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14쪽 도표 참조). 한국 소비자는 칠레산만큼 싼 미국산 과일류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차태헌 동부증권 연구원은 “소비자에게 단기적으로 혜택이 일부 있을 것이나 수입 과정에서 명목 가격 상승이 지속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이 증가할지는 명확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 TV ‘미국 프로그램 위주 채널 등장 전망’

한·미 FTA 발효와 함께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는 미국 방송 프로그램이 늘어난다. 지상파를 제외한 케이블이나 위성 채널에서 방영되는 해외 수입 방송 프로그램 할당량(쿼터)이 상향 조정되기 때문이다. 채널 전체 편성 프로그램 가운데 외국산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60%에서 80%로 늘어난다. 다시 말해 하루 24시간 가운데 19시간까지 미국 방송 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방송 프로그램 제공업체(PP) 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미국 방송 사업자들이 국내 법인을 통해 간접 투자하면 보도 채널, 종편 채널, 홈쇼핑을 제외한 PP의 지분 100%를 소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메이저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내 PP업체를 인수해 미국 영화, 드라마, 예능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국내 PP 사업자는 미국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한국 시청자는 케이블이나 위성, 인터넷 방송을 통해 지금보다 더 많은 미국 방송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방송 프로그램 생산 기반이 무너져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의존도가 장기적으로 커질 수 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안방극장에서 고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해진다.

한·미 FTA 이후 낮아지는 미국산 제품 가격      단위 : 원 
  품목  2011월
10월 가격 
관세 철폐 시  가격
인하율 
철폐 시기 
식품  미국산 돼지고기 삼겹살(1kg) 13,000 10,612 -18% 10년 후 철폐 
미국산 돼지고기 냉동목살(1kg)  10,400 8,320 -20% 2016년 
토피카나 오렌지주스 2.84리터 2병  28,900 18,825 -35% 3~5년 후 철폐 
유기농 포도즙 100ml 3박스  135,000 93,103 -31% 즉시 철폐 
Velveeta 슬라이스 치즈 340g 5,400 3,971 -26% 10년 후 철폐 
Bob’s RedMiller 유기농 통밀 가루2.26kg 7,850 7,534 -4% 5년 후 철폐 
과일  캘리포니아 오렌지(약 3.2kg, 20개) 15,900 10.6 -33% 계절 관세 
플로리다 자몽(3kg, 7~8개) 24,900 10,205 -59% 15년 후 철폐 
썬키스트 레몬(1.3kg, 약 40개) 25,000 19,231 -23% 2년 후 철폐 
체리(200g) 9,900 7,984 -19% 즉시 철폐 
청포도(2kg, 1~2송이) 26,800 18,483 -31% 계절 관세 
기호 식품  모버트 몬다비 카베르네쇼비뇽(1병) 76,000 66,087 -13% 즉시 철폐 
밀러 무알콜 맥스라이트 캔 330ml 900 692 -23% 7년 후 철폐 
캘리포니아 명품 구운 아몬드(1kg) 25,900 23,981 -7% 즉시 철폐 
캘리포니아 썬프리 햇호두(탈각, 540g) 19,500 15,000 -23% 6년 후 철폐 
하모니 베이 헤이즐넛 커피 908g 22,500 20,833 -7% 즉시 철폐 
Raisin 건포도 300g 3,980 3,289 -17% 즉시 철폐 
건강 식품  GNC 비타민(우먼스 울트라메가) 1병   67,037 62,037 -7% 5년 후 철폐 
 자료 : 기획재정부 ‘한·미 FTA로 달라지는 우리 생활’ 중에서 발췌.
 2011년 10월20일 대형 마트 판매가 기준으로 유통 마진, 부가세 등에 따라 바뀔 수 있음. 

■ 인터넷 ‘불법 콘텐츠 근절과 실명제 완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크게 강화된다. 한·미 FTA 부속 서한에 불법 복제나 파일 공유 사이트로 콘텐츠 유통을 차단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소프트웨어나 동영상, 음원의 불법 유통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콘텐츠 산업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콘텐츠 산업 발전으로 인해 양질의 콘텐츠를 누릴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폐지되거나 대폭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보통신망법은 ‘상당수 인터넷 사이트에 업로드하는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을 강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2009년 4월 구글은 한국 이용자에 한해 유튜브에 자료를 업로드하는 것을 제한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본인 확인제 사이트에서 제외했다. FTA 발효를 앞두고 정부 정책이 규제 완화로 선회하고 있다.

■ 자동차 ‘세금 낮아지면서 대형차 수혜’

FTA가 발효되자마자 배기량 2천cc가 넘는 자동차에 대한 개별소비세율이 10%에서 8%로 낮아진다. 소비세율은 앞으로 3년 동안 차츰 낮아서 5%까지 떨어진다. 자동차 세율도 5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된다. 그만큼 대형차 운전자의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지금보다 대형차 소비가 상대적으로 늘어날 여지가 있다.

■ 약품 ‘약값 오르고 수입 약품 의존도 증가’

의약품이나 의료 기기 값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지적재산권 보호 의무가 강화되면서 복제약이나 제네릭 약품 개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국내 제약사가 특허료 추가 부담을 약값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한·미 FTA 발효로 인해 국내 의약품 생산이 연평균 6백86억~1천1백97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달리 의약품 수입액은 연평균 2천만 달러가량 늘어나 다국적 제약사 약품에 대한 의존도는 지금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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