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와 쿨하게 결별하는 법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1.11.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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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급우들 가운데 주로 입이 거친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을 그렇게 부르곤 했습니다. 부르기는 쉬울지 몰라도 듣기에는 영 거북한 이 비속어는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꽉 막힌 어른’들을 지칭하는 데 쓰입니다. 얼마 전 <흑산>이라는 소설을 내놓은 김훈 작가는 한 강연에서 ‘자라면서 고생한 얘기를 자랑처럼 자주 하고, 자기가 만든 틀에 젊은이를 자꾸 끌어들이려고 하며, 잔소리와 간섭이 많은 사람이 꼰대’라는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거론하며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꼰대를 쫓아내기 시작했다. 꼰대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습니다.

‘꼰대론’을 끄집어낸 이는 또 있습니다. 이른바 ‘청춘 콘서트’를 기획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뜨게 만들었다고 해서 주목받은 법륜 스님이 그입니다. 그는 한국 정치의 큰 화두로 떠오른 ‘안철수 현상’에 대해 설명하며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나 종교·시민단체에 관심이 없고 모두 ‘꼰대’라고 한다. 현상이 그런데 자꾸 진보와 보수의 경쟁, 여야 정쟁으로 접근하니 갈수록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들의 표현대로라면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흐름은 ‘세대 갈등’ 또는 ‘세대 전쟁’이라기보다 ‘꽉 막힌 세력’에 대한 ‘열린 세력’의 저항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자기만 옳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 이들이 바로 ‘꽉 막힌 세력’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기성 정치 집단이 그런 모습으로 비쳤던 것이겠지요.

그렇게 보면 ‘꼰대’라는 말이 의미하는 핵심은 결국 ‘소통 부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에는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외치는 바람에 식상한 느낌마저 드는 이 소통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공감’입니다.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교수도 이 ‘공감’을 ‘2012년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요즘 대중은 사람을 평가할 때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는가’를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소통이나 공감을 하려면 누구나 눈높이부터 조절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대화할 때 무릎을 꿇고 키를 낮춰주면 더 좋아하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생각의 틀도 바꿔야 합니다. 독선적인 사고로는 결코 아무에게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옛날 시골 할머니댁의 안방 문에 작은 쪽문이 하나 더 달려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누가 기척을 하면 할머니는 그 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시며 간단한 대화도 나누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이닥치면 안방 문을 통째로 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도 다 보고, 대화도 더 용이했기 때문입니다. 쪽문을 열고 보면 딱 그 문의 크기만큼만 밖이 내다보입니다. 소통이나 공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의 문 크기만큼만 사람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꽉 막힌 마음으로는 더더군다나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소통이 막힌 시대, 공감이 두절된 시대에 다시 ‘정치 붕괴’의 혹한기가 어지럽게 열렸습니다. 날치기와 극한 대립, 익숙한 풍경들이 또 눈앞에 닥쳐 있습니다. 광장에는 또 한 번 촛불이 켜졌고, 겨울은 더 추운 날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춥고 캄캄한 국민들의 마음에도 소통과 공감의 촛불이 따뜻이 밝혀져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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