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보다 흥미진진” 신선한 무대의 ‘변신’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1.12.0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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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경연장처럼 기발한 발상 접목시킨 연극·뮤지컬 호평…첨단 기기 활용한 파격적 무대 디자인 눈길

허공에서 비명이 들리고 찰나의 시간을 두고 조명이 켜지자 관객의 바로 위로 배우가 온몸으로 떨어져내리며 관객을 덮쳤다. 다행히 배우는 1층 관객석 가운데 머리 위 2m 높이쯤에 쳐진 그물로 떨어졌다. 배우가 떨어지는 순간에야 조명이 번쩍 들어온다. 관객은 난데없이 허공에서 떨어진 배우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긴장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서커스를 보러 온 관객이라도 이 정도라면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커스가 아니다. 희곡 고전 중의 고전인 괴테의 <파우스트>가 이런 모습으로 재해석되어 관객과 만났다.

아이슬랜드 기계 체조 선수 출신인 기슬리 가르드손은 상식을 완전히 뒤엎은 이 무대로 유럽에서 큰 명성을 거두었고 지난 10월 말 열린 국내 초청 공연에서도 일반 관객들은 물론 공연 관계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세트 자체가 설치미술 같은 무대 등 새로운 시도 계속 선보여

극장 무대의 설계가 완전히 독창적이었기 때문이다. 객석은 2층까지만 열렸고 3층 객석은 폐쇄되었다. 3층에 ‘다이빙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층에는 무대와 연결되는 대형 그물이 1층 객석 위에 설치되었다. 3층 객석을 이용한 다이빙대에서 배우들은 연신 1층 객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낙차는 6m 정도. 그물 위에 떨어진 배우는 그 위에서 걷기도 하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휠체어를 끄는 재주를 보인다. 물론 맨몸으로 낙하하는 행위에만 집중했더라면 이 공연은 서커스이지 연극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깜짝 쇼는 삶의 다른 면을 동경하던 닥터 파우스트의 욕망을 재현하는 소도구로 맞춤하게 사용되었기에 평론가와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예술 장르에서 무대 디자인의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다. 아크로바틱한 교예가 무대 언어에 더해지는가 하면 첨단 미디어아트가 발전된 테크놀로지 제품군과 함께 무대 위로 날아들고, 케케묵은 환등기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관객들의 뒤통수를 날리고 있다. 발전된 기술과 제품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1순위는 아이디어가 먼저이다. 관객의 선입관을 산산이 부셔놓고 주위를 환기시키는 데 기술은 부가적인 부분일 뿐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정호승 무대 디자이너의 작품이 발군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국내 공연된 작품 중 기발한 아이디어 작품으로 <파우스트>를 꼽기도 한 정씨이지만, 그 역시 관객의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비주얼을 만들어내고 있다. 2007년 끔찍한 살인의 현장을 구현한 <스위니 토드> 무대에서 성가를 드높인 그는 지난 9월 연극 <됴화만발>에 이어 현재 공연 중인 <갈매기>, 내년 1월 공연 예정인 <풍찬노숙> 등의 작품에서 기존 무대 디자인을 완전히 뒤엎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됴화만발>에서 정씨는 무대 위에 단을 쌓고 배우가 검은 천으로 뒤덮인 무대 아래를 파고 들어가 단에 파놓은 구멍으로 등장하고 퇴장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배우의 무대 진·출입 방법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 실험은 현재 서강대 메리홀에서 공연 중인 <갈매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갈매기>에서는 1층 객석 대부분을 비우고 그 자리에 2백70cm의 단을 쌓아올렸다. 가로 7m, 세로 23m의 이 탁자형 단이 무대가 되고 배우들은 단에 매달려 있는 계단으로 등장하고 퇴장했다. 기존 무대가 있던 자리에는 세찬 비가 내리기도 한다. 무대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극장 전체를 활용해 무대를 꾸민 것이다.

정씨는 “관객으로서 극장에 갔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극장 안에 들어갔을 때 설레는가이다”라고 말했다. 즉, 그는 “관객이 극장 안에 들어서면서 설렘을 받는다면 극이 주는 자극을 적극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설렘을 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한다. ‘공간 자체를 뒤틀거나 변형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객석과 무대를 통째로 바꾼 <풍찬노숙>, 개막 앞두고 화제

그는 1월에 올릴 <풍찬노숙> 무대에서는 객석과 무대를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객석과 무대를 통째로 바꿔놓는 방법은 요즘 낯설음과 의외성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공연예술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지난 4월 공연된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는 객석을 무대 위로 올리고 무대 장막을 뒷배경 삼아 공연하다, 극 막판에 장막을 들어올린다. 장막을 걷자 1층 객석까지 기다란 브리지가 놓여 있고 눈이 먼 오이디푸스는 그 길을 따라 떠난다. 1천100석의 객석을 모두 비우고 모두 배경으로만 활용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첨단 전자 기기나 이를 활용하는 미디어 아트가 무대 혁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전통적이고 오래된 방법을 썼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전복적인 무대를 구현하기도 한다. 지난 5월 창작 초연을 가진 뮤지컬 <모비딕>은 초연에서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내년 3월 재공연이 예정된 <모비딕>에는 별다른 세트가 없다. 등장 인물이 모두 등·퇴장 없이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등 인물이 세트이자 악단이자 배경이 되는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면서 호평을 받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 현재 공연 중인 <넥스트 투 노멀>은 흡사 데미언 허스트의 설치 작품인 약장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3층짜리 무대 세트가 무대를 꽉 채우고 있고, 주 무대로 활용되는 2층은 유리와 금속으로 된 미닫이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소독 기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그대로 가져온 이 세트는 단순하면서도 병원을 자주 드나드는 주인공의 상황을 깔끔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의 승리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공연예술제에 선보였던 무용 <시네마티크>는 저해상도의 환등기(OHP)로 ‘첨단 기법’을 선보인 무대로 꼽히고 있다. 배우가 조약돌 몇 개를 내려놓으면 그것이 크게 비치면서 징검다리가 되는 방식으로 OHP를 활용해 무대에 자연을 되살렸다. 구식 기계를 아이디어 하나로 완전히 새롭게 활용한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인 <프레스>에서도 무대 세트는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대형 철판 하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밑에서 춤추는 무용수의 공간은 작아지지만 무용수는 악착같이 공간의 빈 곳을 활용해 춤을 춰 객석의 탄성을 끌어냈다. 

무대 디자인이 공연예술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의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공연예술센터의 황금실씨는 “최근에 호평을 얻은 공연은 거대 세트 같은 큰 오브제에 기대지 않고 영상이나 지붕 하나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선입견을 깨버린 아이디어가 바로 콜럼부스의 달걀이다”라고 전했다. 물론 관객들도 이런 새로운 방법론에 열렬히 반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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