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폭’ 파편 깊이 박힌 대테러 동맹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12.0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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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파키스탄, 파키스탄 병사 24명 사망 사건으로 최악 국면…공조 회복 노력 순식간에 물거품

가뜩이나 불편한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다. 이번에는 지난 11월26일 발생한 미군의 오폭 사건이 빌미가 되었다. 이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은 파키스탄 내 탈레반 은신처를 공습했다. 그러나 포탄이 엉뚱하게 파키스탄군 기지에 떨어지는 바람에 파키스탄 병사 24명이 죽었다.

미국, 파키스탄에도 책임 있다는 입장

양국은 이 사건을 놓고 격앙된 설전을 벌이고 있다. 파키스탄은 이 사건이 미군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주권 침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는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파키스탄측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양국 관계는 지난 5월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피살 사건 등으로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다.

양국 관계를 긴장시키는 사건이 연발하는 것은 파키스탄을 은거지로 이용하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조직을 파키스탄이 보호하거나 심지어 지원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파키스탄 내 테러리스트 기지를 수시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자주 오폭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미군의 무인기 공격은 정확도가 낮아 파키스탄 군인이나 민간인을 죽이는 사건을 종종 만들었다. 파키스탄은 일련의 사건들이 파키스탄의 주권을 무시하는 미국의 ‘오만’ 때문이라고 비난하지만 미국의 시각은 다르다. 파키스탄이 탈레반과 알카에다와 내통하고 있고 그래서 불미한 사건들이 연발한다는 입장이다.

오폭 사건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양국 신뢰에 다시 깊은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으로서 상호 협력한다는 전략적 구도마저 흔드는 국면으로 비화되는 모습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아프가니스탄까지 끼어들어 파키스탄을 비난함으로써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이 선제 도발해 미군의 오폭 사건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은 이것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뻔뻔한 책임 전가라고 반박했다.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CNN과의 회견에서 과거와 같은 양국 공조는 더는 없을 것이며 미국과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 내 탈레반 대변인은 파키스탄측에 상응한 보복을 하라고 선동했다. 탈레반을 보호하는 파키스탄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아프가니스탄은 이런 식으로 가면 파키스탄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나토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도 파키스탄을 달래는 눈치이다.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든 인명 피해가 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하고 이 일로 테러와의 전쟁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런던을 방문 중인 마틴 뎀시 미국 합참의장은 양국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시인했지만, 전에도 그랬듯이 불편한 관계가 곧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태도는 완강하다. 당장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나토군에 공급되는 3백 대의 보급 트럭들이 파키스탄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12월5일 독일의 본에서 열리는 아프가니스탄 대책 회의에도 불참하겠다고 통고했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약 1천2백억 달러의 경제·군사 원조를 파키스탄에 제공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파키스탄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으로부터 기대했던 만큼의 협조는 얻지 못했다. 미국 조야의 분위기는 분노와 좌절이 혼재한 듯하다. 파키스탄이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뒷구멍으로는 미국의 원조를 최대한 얻어내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양국의 신뢰는 회복 불능 상태로 추락했다. 파키스탄도 할 말이 많다. 지금까지 파키스탄군 1만명이 죽어나가면서 반(反)미 감정은 최고조에 달했다. 왜 남의 전쟁에 말려들어 혼란을 자초하느냐는 내부의 불만도 깊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양측 모두 답답한 처지이다. 특히 미국은 이처럼 망가진 관계를 회복할 여력이 얼마나 남았을까 탄식을 할 정도이다.

파키스탄은 나름대로 고민이 깊다. 전쟁 논리로만 따진다면 오폭 같은 불상사는 전쟁에서 수반되는 불가피한 일로 무마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갈수록 고조되는 사태가 부담스럽다.

지난 11월27일 나토군의 오폭으로 숨진 파키스탄 병사 24명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 AP연합

빈 라덴 사살 작전 때부터 공조 붕괴 시작

리처드 더빈 미국 상원의원은 파키스탄의 입장을 동정하기도 했다. 만약 파키스탄의 실수로 24명의 미군이 피살되었다면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도 이 전쟁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국무부는 협상을 통한 해결을, 국방부는 가공할 군사력을 통한 종결을 주장한다. 이번 사건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몇 주 전 고위 대표단을 이끌고 파키스탄을 방문해 테러 단체에 대한 파키스탄 정부의 강경한 조치를 주문한 직후에 일어나 미국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출구를 찾기 위해 ‘전투, 회담, 재건’으로 함축되는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이 전략은 모두 파키스탄의 협조를 전제로 한다. 그 절체절명의 협조가 오폭 사건으로 물거품이 된 셈이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공조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감행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으로 붕괴되기 시작해 이제 거의 파국에 이르렀다. 수일 전 파키스탄군 사령관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이 만나 합의한 공조 회복도 순식간에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지난 11월29일 울분을 터뜨리는 파키스탄 시위자. ⓒ AP연합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만1천명의 나토군과 2만5천명의 아프가니스탄군이 아프가니스탄 동부 7개 성에서 반군 소탕 작전을 벌여 파키스탄 영토를 피난처로 이용하는 테러분자 수백 명을 사살했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은 파키스탄 영토에서 날아오는 포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연합군은 으레 공습을 요청하고 공습을 하다보면 어김없이 오폭 사건이 발생한다.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파키스탄은 ‘남의 전쟁’으로 간주한다는 데 있다. 파키스탄의 주목적은 이 전쟁을 이용해 미국의 원조를 받아내는 것이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올해 예산에 책정된 대파키스탄 원조 53억 달러를 유보하자는 움직임을 보였다. 백악관은 응할 눈치가 아니다.

오폭 사건 조사에서 파키스탄군이 탈레반과 내통한 증거가 나온다 하더라도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국 관계를 더 긴장시킬 것이 확실하다. 이래저래 양국 공조는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이제 문제는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지, 그리고 회복된다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일은 파키스탄 영토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원조 루트를 복원하는 것이다. 현재의 파키스탄 분위기로 봐서는 가까운 장래에 좋은 소식이 올 것 같지 않다. 유일한 방법은 대파키스탄 원조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바로 이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칼자루는 파키스탄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념과 안보가 아닌 돈으로 맺어진 동맹 관계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이번 오폭 사건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지만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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