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부산 들쑤신 ‘질긴 악연’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12.0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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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결간 사태 왜 일어났나 / 노조가 최대 주주인 정수장학회를 문제 삼자 사측이 발행 막아

ⓒ 부산일보 노동조합 제공

종합편성 채널이 출범하며 미디어 지형이 요동치던 지난 12월1일, 부산일보 노조원들은 부산시 초량동 부산일보 건물 지하 윤전기 앞에 섰다. 전날인 11월30일, 부산일보는 사측에 의해 처음으로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노조 지부 관계자는 “원래는 오늘도 (사측은) 편집국의 기사를 발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라고 말했다.

노조원들이 윤전실에 모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사측 직원 몇 명이 윤전실로 내려왔다. 신문 발행을 두고 회사와 노조가 맞서던 이날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은 동아일보 종합편성 채널인 ‘채널A’의 컨소시엄 대표 자격으로 개국 축하를 위해 서울에 가 있었다. 이내 멈추어 섰던 윤전기가 돌자 한 임원은 분개하며 “이게 신문이야?”라고 노조원들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다시 신문이 나온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이날 오후 5시에 열린 편집국장 중간평가 자리에서 “신문이 발행된 것에 대해 사측에서는 매우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조합원들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을 보고 아직 부산일보에 기자 정신이 살아 있다고 느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노조위원장은 면직, 편집국장은 대기발령

그러면 사측은 왜 신문 발행을 중단했을까. 이번 사태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11월18일 부산일보는 1면에 ‘부산일보 노조, 정수재단 사회 환원 촉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부산일보의 최대 주주는 재단법인 정수장학회(이사장 최필립, 이하 정수재단)로 부산일보 주식을 100% 가지고 있다. 자사의 최대 주주, 그것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관계있는 정수장학회를 문제 삼았다는 것은 노조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이 시대 독자들은 언론사에게 높은 수준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는데 이런 구조라면 또다시 편집권이 침해당하면서 공정성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이 말하는 ‘공정성 논란’은 2004년의 기억을 말한다.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일보에서는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2004년 4월12일 부산일보 기자 100여 명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수많은 독자와 취재원들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겸 정수장학회 이사장에 대한 부산일보의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다’며 “취재를 하러 다니기 부끄러울 정도이다”라고 토로했다. 2004년 이후부터 부산일보에서 정수재단과 박근혜 전 대표는 변수가 아닌 민감한 ‘상수’가 되었다.

이번 노조의 요구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당시와 다른 점은 박 전 대표가 이제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 직접 선거판에 나선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내년 총선과 대선 때 일어날지도 모를 보도의 공정성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부산일보 사측에서는 정수재단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 이위원장을 지난 11월29일 징계위원회에 넘겨 ‘면직’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30일, 노조측 입장을 지면에 실은 이정호 편집국장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

사측의 결정이 나오자 부산일보 편집국은 11월30일자 신문 1면에 ‘부산일보 사측 징계 남발, 노사 갈등 격화’, 2면에 ‘부산일보, 정수재단 사회 환원 투쟁 갈등 원인은’이라는 제목으로 노조위원장과 편집국장 징계에 대해서 보도했다. 그러자 김종렬 사장은 윤전기 가동을 하지 못하도록 지시했고, 그에 따라 ‘결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홈페이지 역시 ‘본사 내부 사정으로 오늘 신문 발행과 인터넷 뉴스 제공을 하지 못했다’라는 회사측 공지만 게재된 채 닫혔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부산일보의 영향력은 전국지와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한다. 지역 신문 중 덩치가 가장 큰 매체이다. 이런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곳이 정수재단이다. 정수재단은 부산일보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다. 현재 이사장은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관을 지낸 최필립씨가 맡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여전히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가 회사와 노조 각 세 명씩 여섯 명으로 꾸려진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를 정수재단 이사장이 선임하는 ‘사장 후보 추천 제도’ 도입을 경영진에 요구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위원장은 지난 11월16일 최필립 이사장과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도 ‘박근혜’라는 상수가 등장했다. 이 자리에서 최이사장은 “경영진에 관한 인사권은 재단의 고유 권한이다”라고 말하며 “부산일보가 박 전 대표를 위해 제대로 다루어준 것이 무엇이냐. 오히려 진보 언론들보다도 못하다”라며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심지어 “노조가 계속 박 전 대표를 물고 늘어지면 매각도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이위원장은 전했다.

부산일보와 박 전 대표의 질긴 악연은 4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부산일보는 원래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와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였다. 부산의 기업인 김지태씨가 소유하고 있던 부산일보는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정권으로 넘어간다.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김씨는 부정 축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다음 해인 1962년 석방의 대가로 부산일보 등의 소유권을 국가에 넘겼다. 박정희 정권은 이 재산들을 토대로 ‘정수장학회’를 설립했고, 박 전 대표는 부산일보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이라는 형태로 부산일보의 사주가 될 수 있었다.

부산일보가 발행 중단된 다음 날 나온 12월1일자 부산일보 1면과 2면.

박근혜 전 대표, 종편 개국에는 축하 메시지

박 전 대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았다. 2004년 부산일보에 관한 보도가 공정성 논란을 일으킨 이유는 사주가 박 전 대표였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정수장학회에 관한 논란이 커지자 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수재단을 이미 사회에 환원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측근인 최필립 이사장이 이 자리를 승계받으면서 박 전 대표가 최측근을 통해 실질적 운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 최필립 이사장은 지금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김종렬 당시 상무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김사장은 임기 3년의 부산일보 사장을 두 번째 역임하고 있는데 최근 3연임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부산일보의 사장실이나 총무국 사무실 내에는 지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春秋正論’ 같은 글귀가 액자에 걸려 있다. 한 조합원은 “박정희나 박근혜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사장실에 한번 들어갔다 오면 자연스레 씁쓸해진다”라고 말했다.

부산일보 내 구성원들이 신문 발간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일으킨 12월1일, 화려하게 출범한 종편 4개 채널은 박 전 대표와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부산일보 사태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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