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 기구 위상이 운명 가른다
  • 구혜영│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12.0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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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통합’ 양대 시나리오 / 손학규 대표 주도냐, 박지원 세력 입성이냐에 따라 흐름 달라질 듯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12월1일 열린 당무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2년 격변기를 앞두고 범야권의 지형 재편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혁통)은 각각 ‘안방 리그’를 매듭짓고 연내 통합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행보에 분주하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도 오는 12월5일 창당을 앞두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2월1일 “신당 창당과 강남 출마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밝혔지만 향후 정치적 역할에 대한 여지를 계속 남겼다.

일단 당장 ‘안철수 신당’ 가능성은 가시권에서 사라진 터라 야권 통합의 구심은 민주당과 혁통이라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선(先)통합, 후(後)경선’에 합의했지만, 아직 마음을 합하지는 못했다. 지도부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구성과 경선 룰 등을 놓고 밀고 당기기가 불가피하다. 더군다나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축으로 민주당 내 갈등이 치열하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야권 통합의 결정적 변수는 통합 주도권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오는 12월11일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가 통합 고지를 향한 마지막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야권 통합의 길로 가는 데 당장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민주당과 혁통의 1 대 1 통합에 따른 통합 야당이 먼저 출범하느냐, 아니면 민주당 주도의 야권 통합 작업이 좀 더 길어지느냐로 갈라진다. 이는 11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탄생할 수임 기구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임 기구의 위상에 따라 향후 야권의 판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 1  수임 기구 주도권을 손학규 대표측이 쥘 경우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혁통 상임대표는 지난 11월20일 ‘야권 대통합을 위한 제 정당·정파 연석회의’(연석회의)를 열고 신설 합당 방식에 합의했다. 입장 차는 있었지만 12월17일 통합 전당대회에서 통합을 결의하고 곧바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한꺼번에 뽑는 ‘원샷’ 경선에도 뜻을 맞추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 독자 전대파들의 “혁통은 당이 아니기 때문에 신설 합당 대상이 아니다”라는 반대에 부딪혀 각 세력별 전당대회를 열고 통합을 결의한 뒤 통합 정당 지도부를 선출하기로 했다. 지도부 경선을 위한 실무 협상은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문성근 혁통 상임대표가 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를 맡아 진행했다. 이와 함께 혁통은 12월7일 시민통합당을 창당하고 당 대 당으로 통합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민주당도 11일 전당대회를 열고 통합을 결정한다. 그동안 진행해온 통합 방식 등을 포함한 내용을 결의하고 곧바로 통합 수임 기구를 구성해 법적 통합 작업을 완성하기로 했다. 손대표와 문재인 대표는 현 지도부가 통합의 전반적인 내용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2·11 전대’에서 손대표가 주도하는 수임 기구가 탄생할 경우, 통합 야당은 연내에 출범할 가능성이 크다. 손대표측은 “통합 야당 지도부가 내년 1월1일을 함께 시작하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주고 못 보여주고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손대표나 문재인 대표나 모두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단 두 사람은 지난 11월 통합 로드맵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이견을 보였다. 당초 손대표는 “가능한 한 모든 세력이 한꺼번에 통합 테이블에 앉자”라며 원샷 경선을 제안했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가능한 세력부터 통합하고 진보 정당은 추후 방법을 찾자”라고 말했다. 손대표는 ‘민주당 대 다자 구도’를 통해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문재인 대표는 ‘민주당 대 비민주당 구도’로 단계적 통합을 통해 민주당 기득권을 차례로 허물겠다는 의도였다.

험로를 거쳐 어렵사리 접점을 찾은 것은 두 사람의 정치적 위상과 무관치 않다. 범야권 내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이다. 탄탄대로를 달리려면 총선 기여도를 비롯해 ‘확실한’ 시드머니가 필요하다. 통합 국면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중심성과 시민 참여 보장을 둘러싼 원론적 갈등은 있겠지만 두 사람의 ‘비슷한’ 처지 때문에라도 향후 경선 룰을 놓고 불협화음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래서 나온다. 김종욱 동국대 연구교수는 “잠재적 대권 주자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통합 정당의 위상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보았다. 당장 총선을 염두에 두고 지분 협상에 매달리기보다 대선을 겨냥한 정당에 신경 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역적으로 전국 정당화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호남당은 아니다’는 시그널을 보내며 세력 기반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손대표는 통합 정당을 이루더라도 민주당 몫의 대선 주자라는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의 기반이 유실되면 안 된다. 통합 정당 당명, 호남 지지층 배려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손대표가 12월1일 당무위원회에서 통합추진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당내 모든 정파가 참여하게 한 데는 이같은 의중이 담겨 있다. 반면 혁통은 통합 정당 지도부 구성 시점을 내년 1월 초순까지로 정하려는 분위기이다. 민주당은 연내에 달성하려 한다. 혁통 관계자는 “정당은 이미 많은 지분을 갖고 있지만 혁통은 아직 세력에 불과하다. 최대한 성과를 안고 통합 정당에 합류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시나리오 2  수임 기구 주도권을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쥐게 될 경우

11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진보 및 시민통합정당 출범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고비 때마다 손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통합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핵심 요구는 당헌·당규에 맞춰 질서 있게 통합해야 하고, 민주당 중심으로 진행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 독자 전당대회를 열어 차기 당권 주자를 선출한 뒤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1월18일과 22일 잇따라 열린 민주당 당무위원회의와 중앙위원회의는 당내 갈등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자리였다. 독자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측은 “현 지도부가 통합을 주도하려는 것은 2012년 총선 기득권(공천권)을 노리기 때문이다”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래서 통합 정당의 성격도 친노(親盧) 세력 중심인 혁통과 합치는 수준의 ‘도로 열린우리당’이라고 깎아내린다.

박 전 원내대표는 그러나 11월27일 밤 손대표와 ‘선통합, 후경선’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손대표가 통합이 지지부진하면 민주당 단독 전당대회를 하겠다며 마지노선으로 정한 날이다. 양측에 따르면 “박 전 원내대표가 통합 수임 기구를 구성할 때 (박 전 원내대표측 인사를) 포함해달라고 했고, 손대표가 이를 수용했다”라고 한다.

수임 기구는 통합의 법적 절차를 완료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박 전 원내대표는 수임 기구가 통합의 실무 협상도 맡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박 전 원내대표의 핵심 측근은 “통합 정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실무 협상이 11일 전당대회 전까지 잘 추진되고 무리 없이 통과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수임 기구가 승계해서 남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수임 기구 역할 논란은 당내 통추위를 수임 기구 위상으로 확대 개편해 당권 주자 의견도 반영하기로 하면서 일단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통추위 구성원이 통합 결의 후 수임 기구에 결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박 전 원내대표가 당내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무엇보다 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호남 대표 주자’ 위상을 확보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호남 기반은 무시할 수 없다. 뚜렷한 지역 맹주가 없는 상황에서 박 전 원내대표가 호남을 매개로 실리를 챙길 수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박 전 원내대표의 구상대로 통합 정당이 만들어지면 주된 정치적 기반은 기존 민주당 지지층이다. 반면 그의 입김이 세질수록 외부 세력과의 관계는 껄끄러워진다.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예고된다. 연내 통합 야당 출범은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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