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던’ 치우친 TV를 또 틀 것인가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1.12.1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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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텔레비전 수상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을 무렵에 TV가 있는 집은 그야말로 늘 문전성시였습니다. <아씨> 같은 인기 드라마가 방영될 시간에는 안방에 달린 마루가 이웃에서 몰려든 남녀노소 ‘방문 시청자’들로 미어터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TV가 한 집안의 부의 척도가 되던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TV는 흑백, 컬러를 넘어 스마트 TV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 TV 생태계 속에 새로운 혈통을 가진 신형 채널이 이제 막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출범하기 전까지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았기에, 종합편성 채널(종편)이라는 이 별종이 보여줄 내용에 많은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나자 여기저기서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옵니다. 졸속 제작의 흔적이 역력한 화면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심지어는 기존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어이없는 방송 사고까지 노출했습니다. 시청률 성적도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종편사들은 저마다 1%대의 시청률이면 성공적이라며 자신들이 앞서나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일반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도토리 키 재기’나 다름없습니다. 1% 안팎의 시청률에 만족한다면 스스로 케이블 TV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깎아내리는 꼴밖에 되지 않는데도 자화자찬 일색이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보도 기능까지 갖춘 ‘종합편성 방송’이라는 타이틀이 영 겸연쩍습니다.

종편 방송에 대한 평가가 인색할 수밖에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방송의 주체가 이른바 한국의 ‘언론 권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메이저 신문사(조선·중앙·동아·매경)들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이 그처럼 많은 특혜를 입고도, 또 스스로 ‘세상에 없던 TV’를 선보이겠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실망감만 안겨준다면, 왜 그토록 서둘러 종편을 출범시켰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원초적 회의’만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종편은 그것을 요구하는 국민적인 여론을 업고 탄생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정부가 ‘알아서 척척’ 만들어낸 속도전의 산물일 뿐입니다. 애당초 다른 언론 참가자들의 동의도 전혀 없었습니다. 현직 기자들은 오히려 종편 허가를 현 정부에서 가장 잘못한 언론 정책으로 꼽기도 합니다. 지금도 언론노조에서는 종편이 ‘태어나서는 안 될 괴물’이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종편 방송은 ‘정파성 논란’이라는 또 하나의 함정을 잠재하고 있습니다. 방송 주체들이 대부분 대표적인 보수 언론사인 탓에 나오는 우려입니다. 콘텐츠 전문가들 중에는 보수 언론이 이끄는 종편에서 혁신적인 콘텐츠 생산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창의적이고 전복적인 사고에서 양질의 콘텐츠가 나올 수 있는 것인데, 정파성에 갇힌 그들에게서 그런 사고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지요.

어쨌든 방송은 시작되었습니다. 한번 흐른 전파를 이제 되담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마당에서는, 종편 방송이 부디 ‘또 다른 왜곡’이 아닌 ‘또 다른 진실’을, ‘또 다른 선정성’이 아닌 ‘또 다른 진정성’을 보여주기를 간곡히 부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광대한 언론 제국을 소유하고 이탈리아를 끝내 궁지로 몰고 간 베를루스코니의 악령이 우리나라에는 제발 발을 들여놓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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