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다리 앞의 박근혜 운명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12.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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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의원 몰락으로 MB와의 루트 상실…위기냐 기회냐는 향후 선택에 따라 갈릴 듯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지난 11월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김성조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상왕(上王)’ 이상득(SD) 한나라당 의원의 몰락은 여권의 대권 판도 또한 뒤흔들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졌고,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이 불거졌다. 한나라당을 향한 민심은 갈수록 싸늘해졌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쇄신파와 친박계는 홍준표 대표 체제를 끌어내렸다. 박근혜 전 대표가 결국 구원 투수로 나섰다. 재창당 논란을 둘러싼 친박계와 쇄신파의 갈등은 일단 임시 처방으로나마 봉합되었다. ‘박근혜호(號)’의 출범이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대형 악재가 발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국회 부의장을 지낸 이상득 의원의 측근 비리가 터져 나왔다.

정치권에 확산된 ‘박근혜-이상득 밀약설’

친박계는 말이 없다. SD의 총선 불출마에 대해서만 ‘개인적인 악재’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왕의 몰락’에 따른 박 전 대표와 이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는 애써 모른 척한다. 박 전 대표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SD의 측근 비리는 분명 박 전 대표에게도 악재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 한때 ‘박-SD 밀약설’이 나돌았지만, 박 전 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 사실과 다를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거나 뒷거래하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그는 “향후 이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박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니겠느냐”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정치권에 확산된 ‘박-SD 밀약설’은 거의 정설로 통했다. 진짜 ‘밀약’이 있었는지 여부는 미스터리이다. 하지만 최소한 양측 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계속 유지된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SD에 대한 친박계의 침묵 역시 그 연장선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SD와 친박계는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친박계는 이재오 의원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하면서도 SD만은 공격하지 않았다. SD 역시 친박계를 절대 자극하지 않았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장관을 맡기도 했다. 최의원 발탁에는 SD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 전 대표와 SD의 ‘정치적 충돌’은 딱 한 번 있었다. 충돌이라기보다 박 전 대표의 일방적 비판이었다. 지난 2009년 4월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 때 친박계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수성 후보가 “이상득 의원이 후보 사퇴를 종용했다”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이 사건을 놓고 “우리 정치의 수치이다”라고 쏘아붙였다. 친박계도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는 분이 그럴 수 있느냐”라고 흥분했다. SD는 “사실과 다르다”라고 해명했을 뿐, 별다르게 반박하지는 않았다.

경주 재선거를 제외하면 박 전 대표측과 SD는 항상 좋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로의 필요성에 대해 이심전심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SD는 이재오 의원과 함께 ‘살아 있는 권력’인 이대통령에게 직접 통할 수 있는 루트이다. 이재오 의원이 반박(反朴) 세력의 중심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박 전 대표측에서는 SD가 유일한 루트라고 볼 수 있다. SD도 ‘미래 권력’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를 배척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보험’을 들어놓아야 할 입장이다. 동생인 이대통령의 임기 후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와의 우호적 관계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SD와 박 전 대표의 밀약설이 나온 배경이다. ‘밀약설’은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SD가 박 전 대표를 밀어주고, 박 전 대표는 이대통령의 임기 후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임기 후 보장의 대상에는 SD도 ‘당연히’ 들어가는 것으로 추측된다. SD는 보좌관이 구속되기 전만 해도 내년 총선 출마에 강한 의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DJ 지킨 盧는 승리, YS 버린 昌은 패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2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내 쇄신파 의원들을 만나 당 쇄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쨌든 SD의 ‘추락’은 이제 박 전 대표에게는 이대통령과 연결되는 루트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대통령과의 중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영남지역의 한 중진 언론인은 “박 전 대표는 이제 이대통령과 협력하든, 그를 밟고 가든 자유롭게 되었다. 이대통령과 통하는 루트가 사라진 것은 일정 부분 손실이지만, 오히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개혁을 하기에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SD가 스스로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인적 쇄신이나 공천 개혁을 진행하기에도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박 전 대표의 선택이 더욱 주목을 받는 시점이다.

이미 정책 분야에서의 이대통령과 ‘선 긋기’는 예상된 부분이었다. 민심 이반의 책임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다는 인식이 계파를 떠나 대다수 의원에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적 결단이다. 이대통령과 척을 지고 가는 것이 반드시 유리하기만 할 것인지는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 친이계의 한 인사는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을 밟고 가는 것은 모두 합의하에 이루어졌다. 2002년 DJ(김대중) 정부 말기에 각종 권력형 비리가 터졌을 때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는 각을 세우지 않으면서 DJ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시 노후보가 DJ와 대립했다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느냐. 반대로 1997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섣불리 YS(김영삼)에게 등을 돌렸다가 낙선의 쓴맛을 보았다”라며 “MB(이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1년이 남아있다. ‘살아 있는 권력’은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로서는 야권을 상대하기도 벅찬 형편이다. 박 전 대표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SD계’로 분류된 의원들이 한나라당과 MB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면 가능한 시나리오이지만, MB에 대한 당의 반발 기류가 강해 현실화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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