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검증받는 ‘킬러본색 경영’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1.12.2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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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기아차에서의 성공 재현에 안간힘…i30·i40의 유럽 시장 안착에 달려

ⓒ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갈수록 불안해지는 유럽 시장을 통해 ‘정의선표’ 경영 모델을 검증받고 있다. 정부회장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유럽 전략형 모델인 i30와 i40를 잇달아 내놓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딜러를 인수해 판매 법인으로 전환했다. 현지 법인의 판매 실적은 하루 단위로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회장 역시 자동차 전시회나 신차 발표회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직접 무대에 올라 발표회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시장점유율 마의 3% 달성

유럽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지난 2008년까지 현대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8%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2%대를 돌파했다. 올해에는 ‘마의 3%’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지난 2008년 터진 금융 위기 여파로 유럽의 자동차 판매 시장이 4년 연속 쇠퇴하는 흐름이다. 내년까지는 불안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기아차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11년 유럽의 자동차 판매는 2010년보다 0.9% 감소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불안한 유럽 시장을 정부회장이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면 확실하게 경영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정부회장은 이미 기아차에서 ‘킬러 본색’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다. 기아차가 만성 적자에 허덕일 때였다. 그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수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전면부에 ‘호랑이 코’ 그릴을 도입해 패밀리룩을 완성시켰다. 브랜드 역시 K시리즈로 일원화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포르테를 시작으로 K5, K7, 스포티지, 소울 등 히트작이 잇달아 쏟아졌다. 실적 역시 합격점을 받았다. 2008년 기아차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2조원대를 돌파했다. 한때 ‘형님 격’인 현대차의 승용차 내수 판매량을 넘어서기도 했다. 같은 기간 기아차의 주가는 다섯 배 이상 상승했다. 

현대차로 옮겨와서도 이같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i시리즈’를 통해 현대차의 패밀리룩을 완성했다. 육각형 모양의 헥사고날 그릴은 현대차의 상징이 되었다. 마케팅 전략 역시 공격적으로 변했다. 일본이나 유럽 차량과의 비교 시승을 통해 현대차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아차 마케팅을 총괄하던 김충호 사장(당시 국내영업본부장)을 최근 현대차로 데려왔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아차의 성공 모델이 디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차별화된 마케팅을 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사장은 기아차의 마케팅을 총괄했다는 점에서 정부회장과 코드가 잘 맞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갈수록 하락하는 내수 시장 점유율도 숙제

2011년 9월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모터쇼에 관계자들과 함께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맨 왼쪽). ⓒ 현대자동차
일각에서는 정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정부회장이 현대차에서 도입한 전략이 상당 부분 기아차에서 시행되었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기아차 성공 전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아차 내부에서는 현재 정부회장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기아차는 2011년에 포르테 후속 모델인 K3와 오피러스 후속인 K9을 출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출시가 연기되었다. 기아차 내부에서는 “정의선 체제가 안착할 수 있도록 그룹 차원에서 현대차의 뒤를 봐주고 있다”라고 수군거린다. 일부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차를 파느냐”라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그룹의 한 관계자는 “신차 효과가 지속되는 시기는 2년 안팎이다. 현대차는 이미 아반떼의 후속 모델을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 출시된 포르테 후속작(K3)은 내년 이후로 연기되었다. 현대차와 싸울 경쟁 차가 없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불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귀띔했다.

지난 2010년 현대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5.2%나 하락했다. 최근 10여 년 만에 최저치였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사상 최초로 5.2%를 달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1년 역시 마찬가지다. 9월 이후 3개월 연속 내수 판매량이 줄어들었다. 감소 폭 역시 최근 1년여 만에 가장 컸을 정도로 내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011년의 경우 산타페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신차 발표 계획이 없다. 유럽이나 남미 등 신시장 공략 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회장의 구상은 연말 인사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지주회사 격인 현대모비스의 사장을 교체했다. 해외 법인장들도 대거 교체했다. 연말 인사에서 정의선측 인사들이 전면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정부회장은 현재 주요 계열사의 지분이 전무한 상황이다. 기아차 1.87%가 전부이다. 미약한 지분을 대체할 방어막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회장이 지분 25%를 보유한 엠코의 역할설이 계속해서 시장에 회자되고 있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측이 보유한 현대엠코 지분이 35%에 이른다. 얼마 전 인수한 현대건설과의 합병을 통해 경영권 승계 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측은 그동안 “엠코와 현대건설을 별도로 운영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정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 역시 아직은 이르다”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부회장이 유럽 시장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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