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맞붙는 ‘국적’ 다른 <밀레니엄>들
  • 이지강│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1.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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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베스트셀러 영화화…‘스웨덴판’이 국내 지각 개봉하면서 ‘할리우드판’과 동시 개봉해 화제

할리우드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편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관객을 찾는다. 스웨덴 작품 <밀레니엄 제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1월5일, 할리우드 대작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일주일 뒤인 1월12일 개봉하는 것이다. 2009년에 제작된 스웨덴판 <밀레니엄>이 국내에서 뒤늦게 지각 개봉하면서 2011 할리우드 신작과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그동안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제작된 화제작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두 작품이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스웨덴 작품의 홍보 관계자는 “할리우드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된 것은 의도된 일이 아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그쪽 관계자와 협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국내 관객으로서는 전세계를 흥분시킨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두 나라의 작품을 동시에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두 작품은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기자 출신인 작가가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작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는 2005년 스웨덴에서 출간된 이후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신념이 투철한 <밀레니엄>의 기자 미카엘 블룸키스트와 용 문신을 한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다가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내용이다. 치밀한 구성과 충격적인 결말로 인기를 얻었다. 이 연작 소설은 스웨덴에서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수치인 3백50만부가 팔렸고, 미국 9백만부, 영국 7백만부, 프랑스 3백30만부 등 전세계 46개국의 독자 6천만명을 열광시켰다. 총 10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원작자인 스티그 라르손이 3부를 탈고한 직후 사망하면서 미완성 3부작으로 남게 되었다.

스웨덴산 최고 베스트셀러는 자연스럽게 자국에서 영화화되었다. 스웨덴판 <밀레니엄> 시리즈는 2009년 1부에서 3부까지 모두 제작된 후 순차적으로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사 관계자는 이번에 개봉하는 1편의 흥행 결과에 따라 2, 3편의 개봉 시기와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판 <밀레니엄> 시리즈의 성공으로 주연을 맡은 스웨덴의 두 배우 미카엘 뉘키비스트와 노미 라파스는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시기가 맞물려 있을 뿐 규모나 관심도 면에서는 큰 차이

스웨덴판 ⓒ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스웨덴판 <밀레니엄> 시리즈 1편이 일주일 먼저 개봉하지만 아무래도 관심의 무게 중심은 할리우드판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 쏠려 있다. 첩보 스릴러에 잘 어울리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은 데다 젊은 거장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데뷔작인 <세븐>부터 <파이트 클럽> <조디악>에 이르기까지 스릴러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스릴러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재능에 더해,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해 긴 상영 시간에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연출력까지 보여준 데이비드 핀처는 <밀레니엄> 시리즈 연출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라 할 만하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다. 크리스마스 주간에 미국에서 먼저 개봉되었는데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흥미로운 사건과 치밀한 전개, 예측 불허의 결말 등 원작 소설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살려 스크린에 재현해냈다는 평가이다. 다만 연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 탓인지 박스오피스에서는 4위로 저조한 데뷔 성적을 기록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난 뒤 개봉하는 국내에서는 암울한 작품 속 분위기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비영어권 국가에서 만들어진 원작을 가진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이 가진 숙명은 극복해야 할 숙제이다. 그동안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우리 영화를 리메이크한 <레이크하우스>(<시월애>)와 <안나와 알렉스 : 두 자매 이야기>(<장화, 홍련>)만 보더라도 그렇다. 간혹 작품성을 인정받은 리메이크 작품이 나오더라도 원작의 굴레를 벗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할리우드판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엄밀히 말해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원작 소설이 비슷한 시기에 두 곳에서 영화화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국내 개봉에서도 시기가 맞물려 있을 뿐 규모나 관심도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여타 리메이크 작품에 비해 먼저 만들어진 스웨덴판에 대한 부담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같은 이야기를 가진 작품이 함께 극장에 걸린다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이 흥행과 관객 평가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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