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유혈 사태는 누가 멎게 할까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1.0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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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의 무차별 총격에도 시위 끊이지 않아…아랍연맹 감시단 입국했지만 활동은 지지부진

지난 12월24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한 사원에서 전날 차량 폭탄 테러 사건으로 사망한 44명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 AP 연합

시리아의 민주화 봉기가 9개월째를 맞았다. 유엔은 지금까지 정부군의 강경 진압으로 5천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했다. 거의 매일 수십 명씩 사망자가 늘어가지만 유혈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는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민중 봉기에서 가장 잔혹한 진압을 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전문가들은 시리아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원인을 권력의 부자 세습에서 찾고 있다. 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에 병사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정권을 승계했다. 그는 2007년에 재선되어 11년째 집권하고 있다. 부자 세습의 약점은 독재로 커버하고 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29년의 장기 집권 끝에 사망을 눈앞에 두고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었다.

아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나 요르단 같은 왕국을 제외하고는 의회 공화국 체제에서 부자 세습을 한 나라로는 시리아가 유일하다. 김일성이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다시 그의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과 유사하다. 북한은 워낙 특이한 독재 체제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쿠데타가 수시로 일어나고 의회 정치 제도를 경험한 시리아 같은 나라에서 부자 세습은 원초적으로 불씨를 잉태한 셈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모습은 부자 세습의 해독을 입증한다. 독재와 정권의 무능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가혹한 탄압으로 억누르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차량 폭탄 테러 벌어져 사상자 속출하기도

시리아의 유혈 사태를 보다 못한 아랍연맹은 최근 아사드 정부와의 협상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모든 지역에서 보안군을 철수하고 유혈 진압을 중단하며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는 내용의 평화안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50여 명으로 구성된 아랍연맹 감시단 1진이 지난 12월26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도착했다.

그러나 감시단의 입국을 전후해 유혈 사태는 더욱 가열되었다. 23일에는 수도에서 두 대의 차량 폭탄이 터져 44명이 죽었다. 정부는 이를 알카에다와 외부 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제 사회는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이어 최대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지방 도시 홈스에서는 정부군이 민간 주택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십 명이 죽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양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아사드는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사실상 권력 기반을 상실한 채 종말을 앞두고 있다. 아랍연맹은 이미 시리아를 회원국에서 제명했다. 미국, 프랑스, 스페인, 불가리아 및 유럽연합(EU)은 시리아 시위대가 조직한 ‘시리아 국가위원회’를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모든 제재를 가했다. 지난해 10월 카다피 정부를 붕괴시킨 리비아도 임시 정부를 승인했다. 정부군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1차 대전 후 오토만 제국이 멸망하고 공화국으로 독립한 시리아는 한때 아랍 최대의 이슬람 국가로 촉망을 받았다. 제법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합헌 정부가 출범한 적도 있었으나 모두 쿠데타로 무너졌다.

1971년 집권한 하페즈는 비상법을 동원해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바트 당 일당 독재를 시작했다. 그의 재임 29년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한 암흑 시대였다. 어느 점에서는 북한의 김일성 수령 체제가 무색할 정도였다.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하페즈는 사후의 체제 안전을 위해 아들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아들은 한술 더 떠서 김정일식 탄압을 계속했다. 민중 봉기를 총칼로 진압하는 잔혹성은 북한에 뒤지지 않는다. 독재 권력, 특히 부자 세습에 의한 독재의 해악을 북한에서 익히 보아온 국제 사회는 시리아가 이를 닮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대의 시위가 일어난 홈스 시에서는 정부군 탱크들이 거리를 누비며 민간인들을 마구 사살하고 있다고 한다. 보안군은 마치 아랍연맹 감시단을 비웃듯 이들의 입국 직전에 시민에 대한 무작위적 사살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웃 아무르 시에서도 비슷한 학살이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12월25일 감시단이 홈스에서 정부 및 시위대 대표들과 만났으나 폭력을 중단시키는 어떤 합의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로이터 통신과 전화로 통화한 한 반정부 인사는 감시단이 시민들의 시체가 안치된 사원을 방문하려 했으나 정부군의 방해로 좌절되었다고 말했다.

감시단은 앞으로 한 달 동안 각지를 돌면서 유혈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동안 시리아 정부군의 협조를 받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아무런 협조도 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실상 내전 상태…한쪽이 죽어야 끝날 듯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1월6일 북부 라카 지역 사원에서 이드 알-아드하 축제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 AP 연합
홈스에서는 정부군의 무차별 총격에도 수천 명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들은 아랍연맹 감시단의 활동에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이다. 사실상 내전 상태로 들어간 유혈 사태를 감시단이 중지시키기에는 때가 늦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감시단의 권위나 의지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들은 진짜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지역은 방문하지 않는다. 그저 마지못해 시늉만 하고 있는 눈치이다. 시리아 관영 사나 통신은 테러리스트들이 홈스 시의 송유관을 폭파했다고 보도했으나 시민들은 정부군이 고의적으로 폭파를 하고는 외세의 소행으로 돌린다고 말했다. 시민 학살이 일어난 여러 도시에서는 식량이 동나고 전기와 수도도 끊겼다. 수많은 주민이 피난길에 올랐다. 정부군에서 이탈한 일부 군인들은 보안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보안군은 교전 현장에 포탄을 퍼부었다. 시위대가 인터넷에 올린 비디오에는 부서진 아파트와 건물에 시체들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12월23일 일어난 차량 폭탄 테러 사건은 시리아 사태를 새로운 차원으로 몰아넣었다. 차량 폭탄은 정보기관 건물을 노렸다. 분석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시리아 소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유혈 사태가 있었으나 차량 폭탄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위는 경비가 삼엄한 수도 다마스쿠스보다는 지방 도시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홈스 시의 차량 폭탄은 알카에다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반군은 믿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으로 기세가 꺾인 알카에다가 자신들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시리아의 혼란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도 아사드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다. 그는 자신의 폭정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모든 소요의 책임을 외국 ‘테러리스트’에 돌리면서 퇴진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탱크, 대포, 기관총까지 동원해 시민을 학살하는 기세로 미루어 카다피 같은 최후도 불사하려는 듯하다. 게다가 아랍연맹 감시단의 활동마저 지지부진해 사태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서방 분석가들은 정부군의 진압 방식이 ‘금지선(red line)’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누가 죽든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비극이 끝날 듯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리아 사태가 종국에는 아랍 민주화 봉기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채 최악의 비극을 연출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아사드 부자가 북한의 세습 기법을 모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한 가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시리아 국민의 80%는 수니파 회교도들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 순치된 북한 인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된 시리아 국민들은 다혈질에다가 열정적이다. 따라서 아사드의 몰락을 볼 때까지 항전할 태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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