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지도자’인가, ‘준비된 지도자’인가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2.01.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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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후계 과정과 관련한 미스터리·쟁점 분석 / 2009년부터 군·공안 장악…2010년 7월엔 60% 이상 권력 행사

2010년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삼남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1년 12월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북한 권력의 제1인자로 부상한 김정은의 실체를 둘러싸고 여전히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자신의 셋째아들 김정은 쪽으로 후계 결정을 굳힌 것은 2008년 11월경이고, 2009년 1월에 김정은이 북한에서 후계자로 결정되었음에도 실질적으로 제2인자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수습(修習)’ 단계에서 권력을 승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열린북한통신’과 같은 대북 전문 언론 매체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된 것은 이미 2007년 1월이며, 이때부터 권력 승계 수업을 받아 2010년에는 사실상 북한 내에서 김정은의 파워가 김정일의 파워를 능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김정은을 둘러싸고 ‘수습 지도자론’과 ‘준비된 지도자론’이라는 전혀 상반된 두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이 두 주장의 실체를 살펴보는 것은 김정은을 여전히 둘러싸고 있는 여러 베일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수습 지도자론’을 주장하는 측은 김정일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후계 세습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이 평소 ‘세습을 하면 국제 사회의 웃음거리가 된다’라며 주변 고위 간부들의 후계 내정 건의를 외면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회복되면서 2008년 11월 장성택과 함께 김정은 쪽으로 후계 결정을 굳혔다고 주장한다.

반면 ‘준비된 지도자론’을 주장하는 측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은 2007년 1월이며 당시 이를 알았던 인물들은 장성택, 현철해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 총비서의 서기실 몇 명을 포함한 김정일의 최측근들뿐이었다고 주장한다. 2009년 5~6월경에 북한군 내에서 학습 자료로 사용된 대외비 문건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의 위대성 교양 자료>(이하 <김정은 교양 자료>)는 “의미 깊은 2006년 12월24일,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증서와 기장이 기여된 자리에서 주체의 선군 혁명 위업을 빛나게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같은 언급은 김정은이 이때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2007년 발언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할 때 김정은이 2008년 말에 갑자기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주장보다는 2006년 말 또는 2007년 초에 후계자로 내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김정은의 군부 및 공안 기관 장악과 관련해, ‘수습 지도자론’은 2011년 들어 김정일이 후계자 김정은에게 ‘제한적 권한’만을 주던 기존 태도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의 업무를 관장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에 따르면 김정은은 2009년이나 2010년까지만 해도 군대와 공안 기관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준비된 지도자론’은 김정은이 2009년 2월경부터 군 총정치국을 통해 군부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 북한의 군부를 위시해 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보안 기관의 보고 라인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후계자 내정 시기는 2006년 말~2007년 초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국가우표발행국에서 발행했다고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상을 모신 우표’. ⓒ AP 연합
현재 군대에 대한 김정은의 명령 지휘 체계 수립과 관련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리영호 총참모장이 평양방어사령관에 임명된 것과 김정은의 군부 엘리트 장악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김원홍 전 보위사령관이 군 총정치국 조직 담당 부국장에 임명된 시점은 모두 2009년 2월이었다. 그리고 북한 내부 자료인 <김정은 교양 자료>에 따르면 이미 2009년 상반기부터 김정은의 ‘영군 체계(군대에 대한 영도 체계)’ 수립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김정은이 국가안전보위부장직에 임명된 것은 2009년 3~4월경이므로, 김정은의 군과 공안 기관 장악은 2011년이 아니라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습 지도자론’은 “김정은은 그동안 ‘탈북 방지 조처’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정책적 의견을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습’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12월17일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후계 수업을 받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에 ‘홀로서기’의 혹독한 운명을 헤쳐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준비된 지도자론’은 북한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당대표자회가 개최되기 전인 2010년 7월경 “북한 권력의 중심이 김정은에게 쏠리기 시작하여 (당시) 권력은 ‘김정일 : 김정은 : 장성택(김경희) + 기타(김영춘과 오극렬 등) = 30 : 60 : 5 + 5’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2011년 8월에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과 김정일의 권력을 비교해볼 때 각각 70%와 30%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같은 주장들은 필자가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한 정보들과 대체로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수습 지도자론’과 ‘김정은=준비된 지도자론’ 간에 존재하는 쟁점을 비교해보았을 때 ‘김정은=수습 지도자론’은 김정은의 후계 체계 구축 과정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와 제한된 정보에 기초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대외비 문건, 고위 탈북자 증언, 각종 고급 정보들에 기초해볼 때 북한에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2006년 말 또는 2007년 초이며, 2009년 1월부터는 후계자로 내부에서 공식 결정되어 김정일과 김정은이 3년간 북한을 공동 통치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김정일 생시에 이미 김정은이 권력의 상당 부분을 넘겨받은 사실, 김정은의 강한 권력 의지와 카리스마, 김일성 사후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경험, 외부 세계에서의 북한 급변 사태 논의와 김정은 체제의 조기 안착을 통한 북한 파워 엘리트들의 기득권 유지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김정은이 비록 완벽하게 준비된 지도자는 아닐지라도 이미 김정일 생시에, 특히 군대와 공안 기관과 당의 권력을 상당 부분 물려받았으므로 단순히 선입견과 불충분한 정보에만 의존해 그를 ‘애송이’나 ‘수습 대장’으로 간단히 평가 절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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