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뺨치는 학교 무법자 ‘일진회’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1.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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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에서 조직되어 괴롭힘·폭행 주도…한 반에 절반 이상이 일진인 경우도

학교폭력예방센터와 학교폭력피해자가족연대 회원 등이 12월29일 정부중앙청사 안내실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 자살한 대구 중학생의 유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진회가 없는 학교에서 편안하게 다니고 싶다.” ㄱ중학교 1학년 이 아무개군(14)의 소원이다. 이군은 지난 1년 동안 일진회에 속한 학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과 폭행 피해를 당했다. 그래서인지 ‘일진회’라는 말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일진회는 학교 폭력 단체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전국의 많은 중·고등학교에는 ‘일진회’가 조직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싸움을 잘하는 학생을 ‘일진’이라고 부른다. 조직의 대장인 셈이다. 일진회는 단순한 교내 서클에서 성인 조폭을 능가하는 ‘폭력 집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동료 학생들을 괴롭히고 금품을 갈취하는 것은 고전에 속한다.

그런데도 학교의 대처는 소극적이다. 교사들도 일진회를 무서워하는 현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일진회’는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이군은 기자에게 “우리 반 25명 중 15명이 일진회이다”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실제 이군의 일기에도 ‘서클’(일진)이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이군 사건, 경찰 특별수사팀에서 조사

이군은 “나를 폭행한 애들 중에 김○○이 대장이다. 주동자 일곱 명이 내 별명을 부르고, 나를 괴롭히면 나머지 일진회 애들도 한통속이 되어 왕따를 시켰다”라고 말했다. 이군의 일기에도 김군을 주축으로 한 가해 학생들의 이름이 곳곳에서 나온다. 학생들의 명령 체계를 도표로 그려넣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군 사건도 자칫 묻힐 뻔했다. 부모의 적극적인 신고가 아니었으면 폭행 사실을 까맣게 모를 뻔했다. 지난해 12월9일 이군의 아버지는 서울지방경찰청, 강서경찰서, 서울시교육청,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ㄱ중학교의 집단 폭행을 조사해달라”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같은 달 15일 강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형사들이 이군의 집으로 찾아와 진정 경위를 파악했다. 일각에서는 이군 부모의 고소를 통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경찰은 진정서가 접수되자 인지수사를 했다. 처음에는 학교 문제를 담당하는 여성청소년계에서 수사에 들어갔으나, 1월부터 특별수사팀으로 넘어갔다.

최근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가 되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가 저지른 학교 폭력도 상황이 심각하다면 적극 수사에 나서겠다”라며 학교 폭력 근절 의지를 밝혔다. 조청장의 지침에 따라 강서경찰서는 강력팀이 주축이 된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전면 수사에 들어갔다. 그만큼 이군 폭행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폭력 원인 찾아 해소하려는 노력 보여야”

서울 영등포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 연합뉴스
강서경찰서는 1월4일 오후에 이군을 부모와 동행시켜 경찰서로 불러 조사를 벌였다. 이군의 부모는 일기장과 진술서 등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군의 심리 상태는 조사를 받기에 무리가 따랐다. 결국 경찰은 이군을 귀가시키고, 다음 날 오후 집으로 찾아가 5시간여 동안 방문 조사를 실시했다. 수사팀은 이번 주에 가해 학생들을 부모와 함께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학교에 가해 학생들의 출석 요구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 피해자인 이군과 부모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군의 부모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가해 학생들은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고, 이를 방관한 학교 관계자들도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 다시는 이군과 같은 학교 폭력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학교 폭력의 원인은 경쟁 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학교와 성적이 주는 스트레스가 많다. 그런데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약자를 찾아 해소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가해 학생들에게 (폭행 이유를) 물어보면 ‘장난 삼아 했다’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또 학교에서 보면 우월감이나 존재감이 드러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집단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피해 학생이 반항하거나 대응하지 않으면 (폭행) 강도가 더 세지기도 한다. 또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ㄱ중학교는 다른 곳과는 여러 특수성이 있다. 교사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라고 강조했다.

김교육의원은 “학교에 익명으로 하는 ‘폭력 신고함’ 등을 설치해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스트레스도 풀어주고, 폭력의 원인을 찾아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담임교사와 과목 담당 교사 그리고 상담교사 등이 체계적으로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학교나 교육청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내 딸도 일진 학생들에게 집단 폭행 당했다”

“내 딸도 일진 애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다.” 지난 1월6일 오전 기자에게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충남 천안에 거주하는 조 아무개씨였다. 조씨의 딸은 지난해 천안에 있는 한 여고에 들어갔다. 그런데 1학년 다른 반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에서 그룹으로 몰려다니는 일진회라고 했다.

조씨는 “애가 얼마나 맞았는지 고막에서 피가 나고, 바닥에 꿇어앉히고 배와 등을 차서 신발 자국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전치 3주의 진단이 나왔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폭행에 가담한 다섯 명의 학생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씨에 따르면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취하하겠다고 했는데, ‘한 대만 때렸다’라는 등 반성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취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가해 학생 중 한 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를 받았고, 또 한 명은 훈방 조치, 나머지 세 명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조씨의 딸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조씨는 “우리 딸아이가 가해 학생들에게 ‘걸레’라고 하거나 ‘성관계 하는 것을 봤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 반 애들로부터 연명장도 받았다. 경찰에서 연명장에 서명한 학생들과 대질 신문을 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임교사가 ‘교권’을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 딸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라며 억울해했다.

조씨는 “학교측의 축소·은폐, 경찰의 부실·편파 수사로 인해 우리 딸은 두 번 피해를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조씨의 딸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큰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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