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출구’에 못질 하는 아프간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1.1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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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자이 정부, 미국에 군 감옥 관할권 넘겨달라고 요구…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 못해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두 전쟁에서 골병이 들었다. 다행히 지난해 말 이라크에서 마지막 미군을 철군함으로써 절반의 짐은 덜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에서 2014년까지 미군을 빼면 지긋지긋한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이 전략이 순조롭게 실현된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기분이 얼마나 홀가분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를 반영하듯 오바마는 며칠 전 지상군을 대폭 줄이고 대신 무인기와 미사일을 주축으로 하는 미군 조직을 개편해 날로 강력해지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한 아시아 중심의 군사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구상은 착수도 하기 전에 복병을 만났다.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난데없는 요구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에 있는 군 감옥의 관할권을 넘겨달라는 것이다. 이 감옥은 1980년대 옛 소련이 건설한 격납고 건물 자리에 6천만 달러를 들여 미국이 건설한 시설이다. 이 감옥에는 주로 탈레반 반군과 일부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수감되어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느닷없이 이 감옥의 관할권을 요구한 것은 이 감옥에서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과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서방의 인권 단체들은 문제의 감옥이 비교적 ‘인간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아프가니스탄 인권운동가들로 구성된 인권 단체도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아 ‘고문’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군을 시작한 지난해 7월14일, 카불 북쪽 바그람 기지에서 귀국하는 병사들이 미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 AP연합

수감 중인 반군들은 연합군의 ‘큰 자산’

그렇다면 카르자이는 왜 관할권 얘기를 꺼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양국 정부 간 불신이 시작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미국은 최근 이 불신을 더 심화시키는 자충수를 두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한 가운데 탈레반과 협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화근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를 보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보다 탈레반을 더 신뢰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미국은 그동안 탈레반을 제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권력을 분담하는 공동 정부 구성을 추진해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탈레반의 인연은 깊다.

1980년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은 탈레반에 무기를 대주면서 대소련 항전을 도왔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다. 9·11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와중에서 권좌에서 추방되기는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정치 세력이다. 미국이 탈레반과 협상해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이런 배경을 고려한 결과이다. 전후 맥락으로 보면 카르자이가 관할권 문제를 이슈화한 것은 향후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출구 전략을 볼모로 삼아 아프가니스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고민은 감옥의 관할권을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약 아프가니스탄의 요구에 굴복한다면 수감자들은 부패한 아프가니스탄 관리들을 매수해 탈출할 위험이 크다. 미국이 감옥을 통제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감자들이 뒷문으로 빠져나간 사례가 이미 있었다. 관할권에 관한 한 아프가니스탄의 태도는 강경하다. 고문 사건을 조사한 아프가니스탄 책임자는 “우리 영토 내의 감옥에 대한 통제권은 우리의 권리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은 관할권 문제가 미국의 출구 전략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바그람 감옥의 역할은 매우 크다. 이 감옥에는 그동안 연합군이 힘겹게 검거한 반군들이 모두 수감되어 있다. 연합군은 이 수감자들을 ‘큰 자산’으로 보고 있다. 이들을 수중에 넣고 있어야 철군 이후의 양국 관계 설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카르자이는 1개월 안에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에서 무슨 대화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은 이래저래 딜레마에 빠졌다. 카르자이가 미국에 대해 분개하거나 생떼를 쓴 적은 자주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완강한 태도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 그는 2014년 이후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철군 일정이 나온 후 아프가니스탄 정부 내에서 강경파가 득세한 것도 미국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태도는 특히 지난 두 달 동안 강경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독일 본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유난히 냉기류가 흘렀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 카르자이는 반군 거점에 대한 연합군의 야간 특공대 작전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반군의 사령관들을 체포하기 위한 이 작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측은 이 작전으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만 많이 피살되었다고 주장했다.

‘작전상 실무 문제’ ‘국가 주권 문제’ 맞서

지난해 12월14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오른쪽)과 리온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 ⓒ AP연합
이뿐만이 아니다. 카르자이는 최근 카타르에서 탈레반 대표들과 회담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거의 무산시키는 행동을 했다. 이 회담의 본질이 아프가니스탄을 소외시키는 음모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관저에서 나온 한 성명은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문제가 ‘외세’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바로 그 직후에 관할권 문제가 나왔다. 이 요구는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카르자이의 대변인은 “일단 결정되었기 때문에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아프가니스탄이 과연 미국의 우방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냉랭했다. 미국은 조만간 아프가니스탄 관리들과 만나 그들의 심경 변화를 탐색할 예정이지만 좋은 소식이 나올 전망은 거의 없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관할권 요구를 미국은 작전상의 실무 문제로 인식하는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국가 주권 문제로 보는 데 있다. 감옥에서의 인권 유린 문제를 조사한 아프가니스탄위원회 대변인은 고문, 굴욕적인 신체 검사, 냉동된 감방에의 수감, 적법 절차의 결여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불평했다. 이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통제하는 구역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 뿐 연합군 담당 구역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관리들은 이 문제를 추궁하자 답변을 회피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할 뿐 구역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 문제를 어느 선까지 밀어붙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또한 그들이 감옥을 제대로 통제할 능력을 갖추었는지도 미지수이다.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교도관들을 훈련시켜왔으나 의도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이 감옥에 대한 관할권을 당초에는 2011년에 넘겨받기로 합의했으나 미국이 약속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아프가니스탄 정부 문서에 따르면 관할권 이전 시기는 명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문제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양국 관리들은 분쟁이 생긴 후 첫 전략회의를 가졌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다음 회의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올해로 10년째이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모두 이 전쟁에 지쳐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관할권 문제는 종전 과정의 통과 의례일 수도 있다. 오바마는 속으로 그렇게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문제만 잘 풀린다면 그의 재선 가도에도 청사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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