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빼고 상상력 채운 참신한 사극이 뜨는 이유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2.0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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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추리 등 장르적 재미 추구해…달라진 대중의 시각도 한몫

MBC 드라마 ⓒ MBC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 <해피투게더> 상황극의 끄트머리에 붙여지는 이 구호는 이제 사극에도 똑같이 붙여질 법하다. “사극은 사극일 뿐, (역사로) 오해하지 말자!”라는 구도이다. 사극(史劇)은 말 그대로 역사(史)와 극(劇)이 붙여진 것이다. 과거 사극은 사(史), 즉 역사의 재현에 무게 중심을 두었지만 차츰 그 중심이 뒤로 이동되더니 이제는 온전한 하나의 극(劇)이 되어가고 있다. 확실한 징후를 보이고 있는 사극이 바로 <해를 품은 달>이다.

사극이 50%의 시청률을 내던 시절은 사극이 막 정통 사극에서 퓨전 사극이라는 틀로 진화하던 시기였다. <대장금> 같은 사극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역사를 휘발시키고 대신 상상력을 채워넣은 당대의 사극이 준 참신함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고 이제 사극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역사와 완전히 떨어질 수 없었던 상상력은 또 다른 틀이 되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식상해졌다. 시청률 50%는 옛말이 되었고 30%조차 도달하는 사극이 어려워진 것은 새로움을 주어야 할 상상력이 자꾸만 비슷한 설정과 상황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장르에 천착하면서 역사적인 내용은 드라마의 문화적인 배경 역할

사극은 좀 더 과감한 변화를, 장르에서 빌어왔다. <추노>는 대중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고전을 가져와 장르적 재미에 천착했던 <일지매>나 <쾌도 홍길동> 같은 작품이 있었지만, <추노>는 고전이라는 안전한 이야기 장치를 빌어오지 않고도 온전히 사극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했다. 역사는 더 뒤로 물러났고 상상력은 더 전면에 배치되었다.

이즈음 주목되던 것이 팩션소설의 대중적인 성공이다. <바람의 화원>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팩션소설은 이른바 팩션 사극으로 만들어지면서 사극의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가 되었다. <바람의 화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으로 설정된 신윤복과 김홍도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낸 듯한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들의 풍속화가 하나의 모티브가 되고 그 풍속화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극의 실험이었다. <성균관 스캔들>은 성균관이라는 금남의 지역에 들어간 남장 여자와 유생 간의 청춘 멜로라는 파격을 사극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작품들에서 역사는 왕조사가 아니라 대중의 삶이 담겨진 문화사에 가깝다. 사극이 좀 더 장르적인 틀 속으로 들어오면서 역사는 점점 문화적인 배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바람의 화원>을 쓴 이정명 작가의 작품인 <뿌리 깊은 나무>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쓴 정은궐 작가의 작품인 <해를 품은 달>이 각각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사극으로 만들어져 그 수그러들었던 불씨를 되살렸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만큼 이제 사극은 더는 역사적 사실의 틀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정은궐 작가의 일련의 작품은 청춘 멜로와 사극을 연결시키면서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즉, 이 두 장르는 모두 각각 침체기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청춘 멜로가 갖는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비현실적 느낌은 사극을 만나 그 무게감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극 특유의 강한 극성은 멜로조차 그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다. <성균관 스캔들>이 성균관이라는 금남의 지역에서 남장 여자라는 아슬아슬한 청춘 멜로를 실험했다면, <해를 품은 달>은 그 공간을 궁궐로 강화시키고, 세자와의 로맨스를 통해 삶과 죽음이 왔다갔다하는 극성 높은 청춘 멜로를 그려냈다.

이정명 작가의 <뿌리 깊은 나무>는 사극이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태평성대 시절의 이야기를 어떻게 사극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다. 사실 세종 시대는 태평성대였기 때문에 사극처럼 극적 대립이 필요한 장르에 쉽지 않은 소재이다. 하지만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역사 바깥에서의 극적 상황을 집어넣자 이 작품은 전혀 다른 긴장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원작을 드라마로 재해석한 김영현·박상연 작가는 이 원작을 보고 나서 비로소 세종 시대를 사극으로 다룰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파격적인 실험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이 있지만 확실히 사극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달라졌다. 정통 사극의 시대는 왕의 시점으로 읽히는 역사를 강요받던 권위주의의 시대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푸코가 미시사를 가져와 본래 역사가 가진 권위를 해체시켰던 것처럼, 역사란 사실 권력자의 기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계층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셈이다.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가 사극의 새로운 스토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좀 더 극대화되고 심지어 장르화된 것이 <바람의 화원>부터 <해를 품은 달>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극의 계보이다. 그러니 이제 사극을 보며 역사를 운운하지는 말자. 사극은 드라마일 뿐이니.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박상연 작가 인터뷰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떻게 작업하게 된 것인가?

(김) 세종 같은 태평성대 시절을 사극으로 극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원작에서처럼 집현전 연쇄 살인 사건이나 세종의 내면으로 들어간다면 이 극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박) 한글 때문에 살인이 벌어진다는 원작의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사극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 같다. <뿌리 깊은 나무>도 대중이 현재의 소통의 이야기로 읽었는데, 어떻게 의도한 것인가?

(김)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글자를 다루는 내용이고 뉴미디어 시대라서 이야기가 제법 나오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고 누구에게 해당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네티즌은 이제 드라마를 가지고 논다. 이 중에서 최고의 ‘소설’은 ‘밀본은 MB’라는 부분이다.

(박) 밀본과 세종이 말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사실 서로 롤을 맡아서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이기 때문에 현대적 뉘앙스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밀본 정기준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특히 토론을 많이 했다. 몇 가지 유의미한 논리가 나왔다. 한글이 나치 괴벨스의 라디오라는 논리가 있었고, 이외수 작가가 말한 ‘돌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글에 맞아 죽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는 데서 나온 논리도 있었다. 그만큼 세종 시대를 다루지만 작품에는 다양한 시대의 논리가 들어 있었다는 얘기이다.

사극만이 가진 경쟁력, 강점은 무엇인가?

(김) 외국 애들은 못한다.(웃음) 사극의 매력은 인물 모두에게 극성과 서사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극은 전원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를 <로열패밀리>에서 한번 시도해보려고는 했다. 사극은 갈등이 세다. 목을 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극성도 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만이 가진 독특한 역사적 지점에 다양한 상상력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강점이자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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