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에 갇힌 박주영, 출구가 안 보인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2.0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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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뒤 주전 진입 쉽지 않아…대표팀에서도 부담 느낄 수 있어

박주영
설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지난 1월23일 새벽, 지구 반대편 영국 런던에서는 한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맞대결(아래 사진)이 펼쳐졌다. 원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박지성이 후반 30분 교체 투입된 데 이어 홈팀 아스널의 박주영이 7분 뒤 투입되면서 한국 축구의 두 영웅이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만났다. 결과는 박지성이 결승골 장면에 관여한 맨유의 2-1 승리였다. 박지성은 홈에서 패배한 후배와 조우해 먼저 손을 내밀며 프리미어리거 7년차의 여유를 보여주었다. 박주영 역시 선배와의 만남을 반가워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마주한 엄연한 현실은 팀의 승패에 웃고 울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다.

5개월을 기다린 끝에 EPL 데뷔전 치러

전 소속팀인 프랑스 리그 1의 AS 모나코가 2부 리그로 강등됨에 따라 이적할 새 팀을 찾던 박주영은 당초 리그 내 신흥 강호 릴 OSC 이적을 눈앞에 두었었다. 하지만 이적 시장 막바지에 아스널이 영입전에 뛰어들었고 박주영은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선회했다. 아스널 입단 당시만 해도 장밋빛 희망을 가졌다. 팀의 주장이자 세계 최고의 왼발을 지닌 공격수로 평가받는 로빈 판 페르시와의 경쟁은 어렵지만 그 다음 옵션으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판 페르시가 부상이 잦은 선수라는 점도 감안되었다. 녹록하지 않은 경쟁이지만 지난 3년간 프랑스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지속적인 상승세를 믿었다. 그에게 주어진 등번호는 주전급을 의미하는 9번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주전 진입의 장벽은 훨씬 높았다. 판 페르시는 올 시즌 경기당 1골에 가까운 득점력을 자랑하며 대부분의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체력 안배를 위해 판 페르시를 빼도 아르센 벵거 감독은 모로코 국가대표 마루앙 샤막과 18세 특급 유망주 옥스레이드 챔벌레인을 우선 순번에 두었다. 박주영은 처음 선발 출전 기회를 얻은 칼링컵 32강전에서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지만 챔피언스리그, FA컵에서는 침묵했다. 12월이 되어도 정규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하지 못하자 곳곳에서 위기설을 언급했다. 영국 언론은 박주영을 “벵거 감독이 존재를 잊은 선수이다”라고 폄하했다.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자 벵거 감독은 과거 팀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티에리 앙리를 임대 영입했다. 박주영은 판 페르시, 앙리, 샤막, 챔벌레인에 밀려 팀의 제5 공격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2군 무대인 리저브리그에서 선발 출전한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려왔다.

리저브리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박주영은 1군 호출을 받았다. 샤막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인해 차출되고 앙리가 근육 부상을 입으며 엔트리에서 빠진 탓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르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박주영의 투입은 애초에 더 빠를 수 있었다. 벵거 감독은 팀이 0-1로 뒤지고 측면 공격수 시오 월컷이 다리 근육 경련을 일으킨 후반 20분 박주영의 교체 투입을 지시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판 페르시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다시 몸을 풀어야 했다. 결국 박주영에게 데뷔전에서 주어진 시간은 추가 시간을 포함해 12분, 그가 남긴 기록은 패스 4회가 끝이었다.

박주영의 위기=대표팀의 위기?

현재 아스널에서 박주영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갇혀 있다. 리그 데뷔전은 나름으로 의미가 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한 선수와 부상 중인 앙리가 돌아오면 다시 배제될 운명이다. 박주영의 이런 상황은 오는 2월29일 쿠웨이트와의 중요한 일전을 앞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박지성이 은퇴한 뒤 대표팀의 아이콘이 된 박주영의 활약은 2011년 대표팀 성적과 비례했다.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게 만든 계기가 된 일본전, 레바논전 패배는 박주영이 부진하거나 뛰지 못한 경기였다. 아스널 이적 후 출전 시간이 줄어든 박주영의 실전 감각에 대한 의문은 조광래 감독을 자멸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최강희 감독 ⓒ 시사저널 박은숙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도 그 부분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감독은 기존의 원톱이 아닌 투톱 전술로 대표팀을 이끌 계획이다. 한국을 상대로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쓰는 아시아권 팀의 성향상 투톱으로 전방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최강희 감독이 구상 중인 최적의 투톱 조합은 이동국과 박주영이다. 이동국은 전북 감독 시절 최강희 감독이 가장 신뢰했던 선수이고, 박주영은 현재 한국 공격수 중 가장 우수한 능력을 지녔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언론에서는 현재의 경기력을 대표팀 선발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최강희 감독이 박주영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최강희 감독은 심각한 상황이 아닌 이상은 선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만큼 경기 감각과는 별도로 박주영의 기본 능력은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 전부가 신뢰하는 수준이라는 얘기이다.

대신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이 짊어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이다.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주장직을 맡은 박주영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느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나이와 경력상으로 선후배 간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선배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강희 감독은 “과거 홍명보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주장에게 특별한 역할을 주문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 박주영이 주장직을 이어가든, 새롭게 선발한 베테랑에게 넘겨주든 주장을 맡음으로 인해 받게 될 스트레스를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경기에 전념해도 박주영이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강희 감독은 1월 말 유럽으로 건너가 선수들을 체크할 계획이다. 그 사이 박주영과의 만남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면담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최강희호 내에서 박주영의 입지가 파란불인 것만은 아니다. 이동국이라는 확실한 공격 옵션이 최강희 감독의 든든한 신뢰 속에 부활을 노리고 있다. 2011년 J리그 최고의 공격수였던 이근호와 프리미어리그 진출 첫해 중요한 골을 넣으며 감각을 유지 중인 지동원 그리고 높은 득점력을 가진 장신 스트라이커라는 메리트를 지닌 김신욱 등이 언제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아스널에서 잃은 경기 감각과 체력이라는 요소가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인 대표팀 소집 기간 동안 회복되지 않는다면 최강희 감독도 박주영을 대신할 카드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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