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혁명’ 1년, 멀어져 간 봄날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2.0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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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축출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안 돼…튀니지 국민 대다수는 극빈 속에서 신음


2012년 1월13일은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을 붕괴시킴으로써 ‘아랍의 봄’을 유발한 중동 민주화 봉기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튀니지 국민들은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과일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를 추모하는 조촐한 행사를 정부 청사 앞에서 열었다. 아랍의 봄으로 지난 1년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세 나라에서 독재 정권이 무너졌고 예멘과 시리아에서도 정권 붕괴가 임박한 상태이다. 독재를 추방한 대가는 전례 없는 유혈이었다. 대략 3만명 내지 3만5천명의 시위대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사태가 여기까지 왔으면 중동에서 따스한 봄소식이 들릴 만하다. 그러나 축제의 조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숨과 좌절, 심지어 봉기에 대한 환멸이 넘친다. 지난 1년 사이에 아랍 독재자들의 운명도 다양하게 갈렸다.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주해 기소는 면했으나 본국 송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민주적 선거가 실시되어 의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극빈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가난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봉기가 무슨 소용이냐는 탄식이 도처에서 들린다.

‘아랍의 봄’의 시발점이 된 튀니지의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한 지 1년이 되는 지난해 12월17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대규모 추모 집회가 열렸다. ⓒ AP연합

이집트, 민주 의회 개원해도 실권은 군부에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본국에서 체포되어 법정에서 교수형이 구형되었다. 이집트에서도 선거를 통해 탄생한 의회가 개원했지만 무바라크 치하에서 권력을 행사한 군부가 실권을 잡고 민주 세력과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군부는 권력 이양 약속을 수차례 어기면서 장기 집권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봉기 1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으나 혁명을 축하하는 이슬람과 군부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개혁파 간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군부는 6월까지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군부 잔당을 축출하기 위한 제2의 혁명 얘기도 나온다. 

리비아의 국가원수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9개월의 내전 끝에 지난해 10월 반군에 잡혀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이 민주주의를 잉태하지는 못했다. 통치 능력이 없는 임시정부가 정국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좌왕우왕하고 있는 가운데 일단의 카다피 충성 분자들이 최근 지방 도시를 점령하고 카다피 정권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은 시위대 3만여 명을 죽이면서까지 버티고 있다. 나라는 거의 내전 상태로 들어갔다. 아랍연맹 감시단이 들어가 유혈 사태 종식을 시도했으나 감시단 입국 후 사망자는 더 늘어났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리비아식으로 유엔 결의에 의한 개입을 통해 유혈 사태를 종식시킬 계획을 하고 있으나 시리아에 대한 무기 판매에 눈이 먼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리아 사태가 조속히 종식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사망자를 내는 비극이 예상된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불처벌을 조건으로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는 형식으로 하야하기로, 걸프국가협력기구와 합의했다. 그러나 그의 진의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해 정권 교체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그 밖에 알제리, 레바논, 요르단, 모리셔스, 수단, 오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반정 시위가 일어났으나 열기가 식어 거의 진정된 상태이다.

아랍의 봄 열기가 겨우 1년 만에 식어가는 의외의 사태에 대해 이색적인 분석이 나왔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아랍 문제 교수인 라시드 할리디와 에드워드 사이드는 중동 사태를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진단한 서방 언론의 분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두 교수에 따르면, 아랍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바라지 않았다. 폴란드식 혁명이나 터키 모델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무슬림이 주류를 이루는 아랍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따라서 튀니지의 부아지지 자살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국민을 천대(賤待)하는 폭정에 대한 저항이 봉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독재 정권을 타도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맛보았다. 부아지지는 자신의 생계 수단인 노점 좌판을 경찰이 압수할 때 ‘천대받았다’라는 모멸감을 느꼈다. 서방 언론은 과거 아랍 뉴스를 보도할 때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했다. 아랍인들은 이런 보도에 자존심을 구겼다. 서방 언론에 등장하는 아랍인들은 주로 턱수염을 기른 ‘테러리스트’나 기피 인물로 표현되곤 했다. 두 교수의 결론은, 아랍인들이 자신들도 ‘인간’임을 선언하게 되었고 이것이 아랍의 ‘각성(awakening)’으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21세기의 ‘대전환’으로 기록될 만하다.

‘아랍의 봄’에 관한 몇 가지 인식의 오류

이집트 시위자들이 지난해 2월14일 카이로의 의회 앞에서 일자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연합
아랍에 관한 저술로 많은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작가 리처드 미니터는 잡지 <포브스>에 실린 기고문에서 아랍의 봄에 관한 다섯 가지 오류를 지적했다. 독재에 대한 저항, 인터넷 혁명, 실업에 대한 불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무슬림의 혁명 주도가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가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은 일부 관점에서 콜로비아 대학 교수들의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이 분석은 실업이 봉기의 원인이었다는 대목에서 특히 관심을 끈다. 아랍에서 실업률이 비교적 낮은 튀니지에서 제일 먼저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업률 9.7%의 이집트, 9.9%의 알제리, 13.4%의 요르단의 경우 서유럽이나 북미의 실업률과 비슷하다. 지부티의 실업률은 59%로 아랍에서 가장 높다. 그래도 봉기는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봉기로 이어졌다는 데 대한 반론 또한 이채롭다. 아랍인들에게 독재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 개념이 아니라, 무정부 상태로 인식된다. 그 상태에서 국민은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로 천대받는다는 얘기이다. 아랍인들이 그토록 민주주의를 갈망했다면 지금쯤 한두 나라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민주 국가의 모습은 묘연하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알제리, 바레인, 리비아, 예멘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일각에서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혁명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 혁명을 주도하고 선거에서 압승했지만 권력을 탐하지는 않았다. 다만 군부와 결탁하고 있다는 의심은 받고 있다.

아랍의 봄은 동구 혁명과도 다르다. 동구에서는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저항이 혁명을 초래했다. 아랍에서는 이념 때문이 아니라 궁핍하게 사는 국민을 돌보지 않는 부패 정권의 반인륜성이 뇌관을 건드렸다. 동구에서는 2차 대전 이전 상황으로 회기하려는 욕구가 작용했으나 아랍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닌 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점에서 다르다. 

콜롬비아 대학의 두 교수는 아랍의 봄 배후에 아랍을 이용하고 착취한 동서 강대국들에 대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분노는 열강들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무력감과 맞물려 열강들과 결탁한 독재 정권 타도로 분출되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랍의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구실을 붙여 이집트와 튀니지에 도합 8천만 달러의 원조를 약속하고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이를 암시한다.

결론적으로 아랍의 봄은 민주화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혁명으로 아랍에 민주 정부가 들어설 가망성은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그렇다고 이 혁명이 무위로 끝난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혁명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작가 미니터는 혁명 1년이 지난 오늘의 아랍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지의 미래’(unknown future)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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