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때리기’에 놀란 기업들 국회 ‘첩보 대작전’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2.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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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권에서 ‘민심 잡기용’으로 대기업 규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거나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정치권과 대기업들 간의 ‘샅바 싸움’이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들어 대기업 관계자들의 국회 출입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쪽은 삼성과 SK이다. 5~8명이 국회로 나가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국회에 출입하는 대기업 관계자들은  자신의 기업과 관련된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을 갈 때 여비를 챙겨주는 ‘기브 앤 테이크’도 잊지 않는다.

ⓒ 시사저널 유장훈

대한민국 입법기관인 국회는 ‘정보의 화수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생산되는 곳이다. 국회 13개 상임위원회는 청와대를 비롯해 각 행정 부처 등 소관 부처와 기관 등을 대상으로 해마다 대대적인 국정감사를 벌인다. 또한 저축은행 사태 등 긴급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관련 정보와 자료 등이 집결되기도 한다. 특히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여야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는 곳이어서 상대 진영을 흠집 내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혼재되어 있다.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 정부 기관이나 언론사뿐만 아니라 대기업 등에게도 국회는 가장 중요한 ‘출입처’가 된다. 국회 안팎에서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정보 수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회 정보를 수집하는 이들은 다양하다. 중앙 행정 부처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이 국회 및 정치권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국회 정문을 드나든다. 또한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등 사정 당국 기관원들에게도 국회는 감시의 대상이자, 정보 수집의 창고이다. 하지만 이들 사정기관원은 자신들의 국회 출입이 자칫 ‘정치 사찰’로 비칠 것을 우려해 신분 노출을 상당히 꺼리는 경향이 있다.

국회를 드나드는 정보 수집자 가운데는 대기업 관계자도 상당수 섞여 있는데, 최근 들어 이들의 국회 출입 횟수가 더 빈번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에서 ‘민심 잡기용’으로 대기업 규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거나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출자 총액 제한 제도나 법인세 증세,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등에 대한 정치권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사전에 이를 파악하려는 대기업들이 상당히 예민해졌고, 정보 담당자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이른바 정치권과 재계의 ‘샅바 싸움’이 본격화된 것이다.

‘목요 모임’ 통해 서로 정보 교환하기도

특히 대기업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총선과 대선이 겹쳐진 해인 탓에 대기업들의 안테나도 여의도 정가에 맞춰져 있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대기업의 임원은 “제 아무리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올해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대기업 정책도 바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올해는 정치권 동향, 특히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이냐라는 예측과 분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그렇다 보니 여의도 정치권의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회를 출입하는 대기업 인사들은 누구이며,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 것일까. 또 대기업별로는 어떻게 정보팀을 운용하고 있을까.

우선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동향을 수집하는 대기업 정보 담당자들은 대체로 30대 후반에서 40대의 남성들로, 직급은 과장급에서 부장급까지 해당한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대개 회장 비서실 직속의 대외협력팀 소속이 많다. 이들은 국회에서 자신들의 기업과 관련된 상임위원회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을 주로 접촉한다. 여야의 고위 당직자나 정당 연구소 관계자, 국회 출입기자 등도 이들의 정보원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기업과 관련된 정보와 루머 등을 수집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정치인들의 동향을 수집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기업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기 위한 입법 로비도 추진한다. 

정보원들과 주로 점심 식사 자리나 저녁 술자리에서 만나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로비를 벌인다. 그에 대한 ‘대가’로 해당 의원이나 보좌진 등의 민원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가령, 자신들의 기업과 직접 관련된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을 갈 때 ‘여비’를 챙겨준다든가, ‘핵심 정보원’의 가족을 직접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법칙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를 출입하는 대기업 정보 담당자들에 따르면, 올해가 선거의 해라고 해서 국회 담당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일주일에 한두 번 출입하던 횟수를 서너 번으로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를 출입하는 한 대기업의 부장급 인사는 “지난해 말부터 국회 출입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일도 많아졌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제한된 인원으로 국회를 담당하다 보니 ‘상부상조’하는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언제부터인가 국회 출입 대기업 담당자들끼리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정보 교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요 모임’으로 불리는 이 모임은 매주 목요일 점심 식사 때 국회 인근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자신들이 일주일 동안 수집한 정보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자신만이 수집한 ‘고급 정보’는 이 자리에서 풀어놓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한 재계 인사는 “보통 7~8명 정도가 모이는 목요 모임에서는 자신들의 기업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 동향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 국회 의원회관의 각 층마다 담당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31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30대 대기업 총수들과 오찬 간담회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업별로는 삼성그룹과 SK그룹 등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의 경우 “8층짜리 국회 의원회관의 각 층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7~8명 정도가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방산업체인 삼성테크윈에서 나온 국회 담당자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주로 담당한다. 삼성카드나 삼성생명 등 금융 업종의 경우에는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 등을 소관 기관으로 두고 있는 정무위원회가 주요 출입처이다. 이처럼 삼성은 ‘공식적으로’ 출입하는 이들 외에도 각 계열사별로 별도의 ‘비공식’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의 정보력이 국정원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라는 것은 정치권과 재계에서 공공연하게 나도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에도 삼성에서 가장 먼저 사실을 인지했다는 소문이 불거진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삼성그룹 해외 주재원들이 고유의 업무 이외에 현지인을 통한 ‘휴민트’(인적 정보망)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삼성그룹 전 직원이 정보 보고를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다만 총선이나 대선 등 대형 선거 때는 유권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을 하는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들이 밑바닥 민심을 파악하는데, 제법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그룹도 7~8명 정도가 국회를 제 집 드나들듯 출입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법사위원회가 거액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한 것을 계기로 ㈜SK에서 두 명 정도가 국회를 출입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도 법사위 출입이 많았다”라는 것이 법사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SK텔레콤에서는 5~6명이 국회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문방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보좌진 등을 주로 접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SK텔레콤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추진할 당시에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정무위원회 관계자들을 수시로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이동통신업계의 경우, 법률안의 문구 하나만 바뀌어도 연간 매출액이 몇천억 원씩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국회 동향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에 비해 같은 통신업체인 KT는 국회 담당자가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한 편이다. KT에 근무하고 있는 한나라당 한 재선 의원의 아들이 최근 국회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2006년 검찰의 정몽구 회장 비자금 수사를 기점으로 대외정보팀을 강화했다. 현재는 모두 10명 정도가 대외 정보 수집 업무를 담당하는데, 세 명 정도가 청와대를, 두 명 정도가 국회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LG경제연구소 소속 간부가 혼자서 국회 안팎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한나라당 산하 여의도연구소와 민주통합당의 정책연구원 사람들을 주로 만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대다수 시중 은행도 국회 담당자를 따로 두고 주로 정무위원회 관계자들을 접촉하고 있다.

대다수 국회 출입 대기업 담당자들은 “우리는 ‘갑(고용자)’과 ‘을(피고용자)’ 관계에서 ‘을’에 해당한다”라고 애로를 털어놓는다. 한 담당자는 “우리가 정보 수집 등을 위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쪽이기 때문에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국회를 출입한 지 5년째 된 한 대기업 간부는 “예전에는 대기업에 우호적인 정치권 인사들이 적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여야 모두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면서 옥죄고 있다. 한 정당 연구소 사람에게 법정 근로시간 연장 축소 문제 등 대기업의 애로 사항을 전달했더니 ‘그런 얘기는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 다음 꾸려질 인수위원회에다 얘기하라’는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라며 대기업에 대한 요즘 정치권의 싸늘한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기업 대관(對官)팀의 안테나가 집중된 곳은 국회뿐만이 아니다. 검찰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담 직원까지 배정할 정도이다. 재계의 한 임원은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추가로 기업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담 직원을 배정해 검찰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재계와 검찰에 따르면, 현재 대검 중수부의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 기업집단은 모두 네 곳이다. 효성과 CJ, LG, 한진그룹이다. 내사 수준 역시 상당 부분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는 이미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수집한 기업 내사 자료를 모두 넘겨받았다. 해당 기업의 계좌에서 거액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통보 내용도 확보한 상태이다. 이 자료를 검사에게 배당해 조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검사 한 명당 조사할 기업 한 곳씩을 배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 어떤 기업을 수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귀띔했다.

일부 언론은 최근 대검 중수부가 FIU의 통보 내용을 바탕으로 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검찰의 내사는 FIU 통보 이전부터 차근차근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4월에 총선이 있고, 11월부터는 대선 시즌이 시작된다. 수사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사실상 총선을 앞둔 몇 개월밖에 없다는 점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현 정부 들어 C&그룹과 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했지만, 반응은 신통치가 않다. 중수부는 지난 2010년 10월부터 C&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년4개월만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당시 C&그룹은 이미 대부분의 계열사가 와해된 상태였다. 결국 검찰은 임병석 회장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었다. 수사 초기 거론되었던 1조원대의 비자금은 100억원대로 줄어들면서 ‘타깃 수사’ 혹은 ‘부관참시 수사’라는 비난만 받았다.

1년여 만에 재개된 저축은행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수사 인력 1백33명이 8개월간 3천3백87명을 조사해 9조원대의 비리 사실을 밝혀냈다. 기소된 정·관·재계 인사도 76명에 달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상당한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정·관계 로비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맹탕 수사’라는 뒷말이 나왔다. 대검 중수부는 이번 대기업 수사를 통해 무너진 자존심의 회복을 노리고 있다. 준비 또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기업에서 대검 중수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은 통상적으로 오너 일가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최종적으로 어떤 기업이 낙점되느냐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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