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LA 다저스의 새 주인 될 수 있을까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2.02.0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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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 시장의 큰손’으로 발돋움하더니 메이저리그까지 넘봐…미국 프로야구계도 큰 관심

LA 다저스 전 구단주 피터 오말리(왼쪽)와 보브 그라지아노 전 사장(오른쪽). ⓒ 로이터 제공
자금난에 허덕이며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미국 메이저리그(MLB) 명문 구단 LA 다저스가 끝내 매물로 나왔다. MLB 구단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생경한 장면이 아니다. 그러나 MLB 구단 매각이 지금처럼 언론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 특히나 한국 언론의 관심이 높다. 이유가 있다. 한국의 이랜드그룹이 다저스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야구계는 아시아 기업의 명문 구단 인수 참여에 거부감을 나타내면서도 탄탄한 자본력을 갖춘 이랜드가 다저스의 경영 정상화를 이끌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다.

다저스 인수에 뛰어든 이랜드는 패션·쇼핑·외식·레저 등 20여 개 계열사에 70여 개 브랜드를 소유한 중견 회사이다. 지난 1980년 서울대 졸업생 박성수씨가 이화여대 앞에 ‘잉글랜드’라는 보세 옷가게를 차린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박씨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잉글랜드’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발전시켰고, 1986년 이랜드를 창업하며 사세를 넓혔다. 1993년 매출 5천억원을 달성한 이후에는 꾸준히 사업 영역을 넓혀 현재는 매출 10조원을 눈앞에 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올 들어 이랜드는 사이판의 유명 리조트 ‘PIC 사이판’과 ‘팜 스키리조트’에 대한 인수 계약을 맺고, 여행사 ‘투어몰’을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여기다 쌍용건설 인수에 나설 뿐만 아니라 프라임저축은행 인수에도 뛰어드는 등 M&A(인수·합병) 시장의 큰손으로 발돋움했다. 재계에서 “이랜드의 식욕이 언제쯤 멈출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랜드는 재계의 우려에도 몸집을 더 확장해나갔다. 이번에는 프로스포츠가 사냥감이었다. 1월31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다저스의 전 구단주 피터 오말리가 이랜드와 손을 잡고 다저스 인수에 나섰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오말리가 인수 대상자로 최종 결정되면 이랜드의 박회장이 최대 투자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저스의 아시아 파트 관계자는 “최근 이랜드가 오말리 전 구단주의 컨소시엄에 참가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랜드가 다저스 예상 인수 가액 15억 달러(1조6천9백20억원)의 4분의 1이 넘는 5천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안다. 이랜드는 단순 투자자가 아닌 구단 경영자가 되려는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오말리 다저스 전 구단주와 컨소시엄으로 주목

이랜드의 다저스 인수전 참여는 국내 재계와 야구계에는 충격이었다. 지금껏 이랜드가 M&A를 추진한 대상은 자신들의 주력 업종인 레저·의류·쇼핑 분야였다. 인수 기업도 국내 기업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다저스는 프로야구단으로 이랜드의 사업 영역과는 공통 분모가 없다. 거기다 지금까지 이랜드는 중국 시장 공략에 열을 올렸을 뿐 미국 시장 진출에는 소극적이었다.

전직 한국야구위원회(KBO) 고위 관계자는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 기업과 접촉해 현대 인수를 요청한 적이 있다. 당시 이랜드도 접촉 후보였지만, 원체 스포츠에 무관심해 말도 꺼내지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이랜드는 매출 10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나, 1998년 이랜드 축구팀을 해체한 이후 별다른 스포츠단을 운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저스는 매물로 나온 것일까. 또 이랜드는 왜 다저스 인수전에 뛰어든 것일까. 대체 오말리와는 어떻게 끈이 닿았던 것일까. 과연 이랜드는 다저스의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다저스의 현 구단주는 부동산 재벌 프랭크 매코트이다. 매코트는 2004년 폭스그룹에 4억3천만 달러를 주고 다저스를 샀다. 당시 매코트는 현금이 없어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과 MLB 사무국, 원주인 폭스그룹으로부터 4억3천만 달러를 빌렸다. 결국 이 돈이 다저스 인수금이 되었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다저스를 인수한 매코트는 “다저스를 최고 명문 구단으로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치와 허영으로 다저스를 파멸로 이끌었다. 매코트는 다저스를 인수하자마자 LA에 2천만 달러짜리 저택을 지었고, 집 안에 1천4백만 달러를 들여 올림픽 규격의 초호화 수영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저스에 좋은 기를 불어넣을 것이다”라며 수십만 달러를 들여 러시아의 초능력자를 다저스타디움에 초청하고서 기를 불어넣는 이벤트를 펼쳤다.

문제는 1억 달러가 넘는 이 돈이 모두 매코트가 다저스를 담보로 은행에서 꾼 차입금이라는 데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매코트는 다저스 부사장이던 아내와 이혼 소송을 벌이며 심각한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매코트는 지난해 7월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법원이 파산 보호 신청을 받아들이면 당분간 채무 변제 없이 구단을 운영할 수 있고, 구단 경영권을 뺏기지 않은 상황에서 구단 매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법원은 ‘다저스가 부채보다 구단 가치액이 높아 구단 매각 시 충분히 회생 가능하다’며 매코트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매코트는 다저스의 새 주인을 물색했고, 인수 희망 기업도 줄을 이었다.

다저스 인수 유력 후보군은 세 그룹이다. 조 토레 전 다저스 감독과 부동산 개발업자 릭 카루소가 손을 잡은 컨소시엄, 미국 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의 전설적 선수였던 매직 존슨과 투자 전문가 마크 월터가 연대한 컨소시엄, 오말리 전 다저스 구단주와 이랜드 그룹이 힘을 합친 컨소시엄이다.

이 가운데 오말리와 이랜드 컨소시엄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랜드가 미국에서는 지명도 자체가 없는 생소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랜드의 관계자는 “기업 인수는 인수 기업의 지명도가 아니라 내실이 관건이다. 다저스 인수 참여는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거친 끝에 내린 결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다저스 인수가 이랜드의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재계의 예상에 대해 “다저스 공동 소유주라는 대외적 위치가 우리의 주력 업종인 패션과 레저 분야에서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이랜드는 다저스를 인수하면 다저스타디움을 직접 경영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A 다저스 홈구장. ⓒ AP 연합

‘오말리의 양아들’ 박찬호가 중간 다리 역할

오말리와 이랜드의 결합에는 박찬호(한화)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랜드측도 “다저스 인수 참여를 계획하면서 자문을 받기 위해 박찬호와 만난 것은 사실이다.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말리와 편안하고도 진지한 만남을 할 수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오말리는 평소 박찬호를 자신의 ‘양아들’로 소개할 정도로 신뢰가 두텁다.

그렇다면 이랜드 컨소시엄의 다저스 인수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미국 현지에서는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매직 존슨 컨소시엄이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꼽힌다. 존슨은 투자 전문 회사와 억만장자 친구 패트릭 순 쉬웅을 등에 업고 다저스 인수를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하지만 경영 전문가들의 예상은 다르다.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매킨지의 한 컨설턴트는 “다저스의 예에서 보듯 개인 투자가는 원체 변수가 많고, 구단 경영에 문외한이라 구단의 항구적 운영에 부적합하다. MLB도 이를 잘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코트의 다저스 파행 운영에 자극받은 MLB가 한국과 일본처럼 기업 구단주를 희망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매출 10조원을 바라보는 이랜드야말로 최적의 후보이다”라고 평가했다.

최대 15억 달러가 소요될 다저스 입찰 경쟁에서 승리한 컨소시엄은 다저스를 제외한 메이저리그 29개 구단주들의 투표에서 최종 인수자로 승인되어야 한다. 구단주들 사이에서도 역시 ‘이번에는 매코트 같은 개인 투자자는 안 된다’라는 의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이랜드의 다저스 인수는 예상 외로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현지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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