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아한 첩보 스릴러…은근한 긴장감 돋보여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2.0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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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첩보 기관 내에 암약하는 이중 첩자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부다페스트로 간 스파이가 살해당한다. 우중충한 도시의 풍경 위로 남자의 핏물이 겹치면 영화가 시작된다. <렛미인>으로 놀라운 첫인상을 남긴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신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다.

영화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영국의 첩보 기관 ‘서커스’를 둘러싼 이중 첩자 색출 작전을 그린다. 부다페스트의 실패 이후 조직에서 밀려났던 스마일리(게리 올드먼)는 바로 그 이중 첩자를 색출해내라는 지시를 받고 돌아와 내사를 시작한다. 조력자가 나서고, 수사가 본격화되면 이야기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첩자는 누구이며, 누구를 믿을 것인가?

카프카의 소설 속 풍경처럼 삭막한 공간에서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흐릿한 날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중 첩자 색출 작전은 차갑고도 모호하다. 영화는 007이 탄생했던 때와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공유하지만, 희한한 신무기도, 화려한 총격전도 없다. 숨 가쁜 추격전도, 변변한 격투 장면도 없다. 그러나 1백27분의 러닝타임 전체를 감싸는 은근한 긴장감은 그 어떤 첩보스릴러도 부럽지 않다.

영화는 스마일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교차되고,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동안 카메라는 춤을 추듯 인물과 사건 사이를 떠돈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제 호흡을 놓치는 법은 없다. 감독은 냉정한 묘사 뒤에 뜨겁고도 격렬한 감정을 감춤으로써 냉전 시대의 공기를 화면 위에 우아하게 되살렸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게리 올드먼, 존 허트,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톰 하디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이어지는 꼼꼼한 앙상블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즐기는 또 다른 관람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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