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정권 근접 경호 나선 러시아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2.0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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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결의안 저지하겠다며 항공모함까지 파견…미국 입장도 강경해 충돌 빚을까 우려

10개월째 접어든 시리아 사태에 심각한 변수가 생겼다. 알 아사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크렘린은 지난 1월 항공모함을 시리아의 타르투스 항에 파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아랍연맹이 마련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국제 사회에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어떤 경우에도 아사드 정권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조치가 ‘금지선’을 넘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강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시리아의 유혈 사태를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군의 양민 학살이 전국적으로 자행되고 있고 시위대가 점거한 건물들은 탱크와 대포를 동원한 포격으로 무차별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유엔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반정 시위에서 지난 1월 현재 5천4백여 명의 시위대가 피살되었다고 밝혔다. 아랍연맹도 아사드를 퇴출시키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중재안을 곧 유엔 안보리에 제출할 예정이다. 미국·영국·프랑스의 외무장관들은 유엔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러시아에 대한 외교 압력을 가중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태도를 바꿀 조짐은 없다.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는 옛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국 관계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깔려 있다. 역사적 유대, 경제적 이해, 지정학적 고려가 뒤섞여 있다. 최근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무기 판매 규모는 40억 달러에 이른다. 경제적 인프라, 에너지, 관광 분야에는 러시아 자금 2백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에 집착하는 배경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로서는 정통적으로 강력한 동맹인 아사드 정권을 잃을 경우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포기하는 셈이 된다. 또한 대부분 서방 노선을 따르고 있는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러시아 편을 드는 아사드마저 사라질 경우 그 파장이 이란과 러시아 국내에까지 미칠까 걱정한다.

지난 1월27일 예맨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한 여성이 아랍 5개국의 국기를 그려넣은 손가락을 펼쳐 보이고 있다. ⓒ AP연합

이란 문제와 맞물려 미국 - 러시아 관계 악화

러시아는 코카사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자체 이슬람 문제를 안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 그 여파로 아브하즈와 체첸 같은 곳에서 분리 독립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도 걱정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자국과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있는 아사드를 지지함으로써 현지 반정 세력에게 강력한 암시를 주려고 한다. 부동항인 타르투스도 러시아에는 중요하다. 러시아의 주력 해군인 지중해 함대의 기지로 활용되는 이 항구를 상실하면 러시아는 수세기에 걸친 글로벌 야망에 상처를 입는다. 러시아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도 같은 배경에서였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져 이란에 대한 서방의 압력이 가중되는 것도 러시아에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시리아와 이란까지 서방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러시아는 중동과 걸프 지역에서 전략적 근거를 모두 잃게 된다.

시리아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 또한 강경하다. 시리아 유혈 사태를 막지 못할 경우 미국은 ‘무능 국가’로 비친다. 미국이 연간 13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면서 지탱해온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을 수용한 것은 중동 아랍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따라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시리아의 정권 교체를 관철한다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이다. 

시리아 사태가 악화되면서 가뜩이나 냉랭했던 미국-러시아 관계는 더욱 살벌해졌다.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간에 잠시나마 조성되었던 양국 관계 ‘재설정(reset)’ 분위기는 최근 격렬한 상호 비방으로 대체되었다. 여기에 최근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로 부임한 마이클 맥폴이 러시아의 야당 인사들과 접촉한 사건이 화를 키웠다. 러시아 당국은 맥폴 대사가 마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맥폴 대사는 러시아 문제 전문가로 오바마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그가 최근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방송에 출연하거나 재야 인사들과 접촉한 처신도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외세’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정 시위를 고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런 일이 계속될 경우 매우 큰 전쟁으로 이어져 해당 지역 국가들은 물론 중동 이외 지역 국가들에도 화를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사드도 반정 시위에 ‘외세’가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두 사람이 언급한 외세는 미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가 혼란을 틈타 시리아에 보낼 무기를 선적하고 있다는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수전 라이스의 발언도 문제 삼았다. 그는 국제법에 금지되지 않은 상품을 교역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특히 핵 개발을 핑계로 이란을 무력으로 공격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란에 대한 일련의 제재가 종국에는 이란 내 불만 세력을 자극해 혁명을 유도하고 이 틈을 타서 이란을 공격해 핵시설을 타격하려는 술책이라는 것이다.

아사드 정권에 대한 러시아의 파격적 지지와 상궤를 벗어난 대미 비난전은 올 3월로 예정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와도 무관하지 않다. 푸틴은 이 선거에서 당선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푸틴은 강력한 대외 노선, 특히 미국에 적대적인 노선을 표명함으로써 국내에서 지지표를 규합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재선 준비를 하고 있는 오바마 역시 러시아의 강경 자세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입장이다.

시리아 사태는 이란의 핵 개발 문제와 맞물리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유럽연합(EU)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란의 위협에 대한 응징 조치로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며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이란 석유를 수입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란은 이에 맞서 대EU 석유 수출을 먼저 금지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한편 시리아 반군은 수도 다마스커스 외곽까지 진출함으로써 아사드 정권의 최후를 재촉하고 있다. 아사드는 정예 보안군을 투입해 반군 거점을 거의 탈환했으나 많은 군사 전문가는 정권의 종말이 임박한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 중국에 협조 강조했지만…

지난 1월3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시리아 제재와 관련해 질의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 AP연합
러시아가 요즘 들어 아사드에 대한 지지를 유독  강조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사태에 대한 유엔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러시아는 중국의 협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공개적으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아사드 정권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천명한 러시아의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리비아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러시아와 공조한 전례가 있지만 이번에도 시리아에 관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미지수이다. 중국은 아사드 정권의 퇴진 문제에도 논평을 삼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설사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아사드가 하야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굳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제적 이미지를 망칠 필요가 있느냐는 판단 때문에 중국이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일사불란한 공조를 과시했던 러시아와 중국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온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시리아 사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이 때문에 시리아와 이란을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 간 협력 체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추측이 나온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동에서 패권을 독식하려는 러시아의 획책이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이다. 시리아 또는 이란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는 여러 측면에서 이해가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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