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로 빛 보는 일본 장르 소설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2.14 11: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울링> <화차> <완전한 사랑> 등으로 만들어져 한국의 원작 소설들은 순수문학 위주인 것과 대조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2월16일 개봉하는 <하울링>(감독 유하)은 형사가 등장하고 연쇄 살인 사건이 주요 소재이다. 외견상 여느 형사 영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늑대개가 사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설정은 낯설기만 하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쉬 찾아볼 수 없는 소재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일본 노나미 아사의 장르 소설 <얼어붙은 송곳니>를 밑그림 삼아 만들어졌다. 남자 형사 상길의 역할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루는 점 등을 빼면 <하울링>은 원작 소설의 내용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충무로에 일본 장르 소설 바람이 불 조짐이다. <하울링>의 개봉에 이어 일본 인기 추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스릴러 <화차>가 내달 극장을 찾는다. 실종된 약혼자의 정체를 하나씩 알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화차>(감독 변영주)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추리소설이다. 2000년대 중반 <어깨 너머의 연인> 등 말랑말랑한 여성 취향의 일본 대중 소설이 충무로 관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지금은 추리소설을 앞세운 일본 장르 문학이 대세를 이루어가고 있다.

류승범 주연으로 촬영 중인 <완전한 사랑>(감독 방은진)은 일본 장르 소설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저술한 원작 소설 제목은 <용의자 X의 헌신>으로 2008년 이미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천재 수학자가 꾸민 알리바이를 무너뜨려가는 탐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게이고의 또 다른 소설 <백야행>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2009년 국내에서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로 새롭게 제작되었다. 국내 대중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원작들이 새삼 다시 영화화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화 진행 중인 한국 장르 소설은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

ⓒ 필라멘트필쳐스 제공
일본 장르 소설들이 충무로를 잠식하는 반면, 한국 소설 원작 영화는 여전히 순수문학 위주이다. 박범신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은교>(감독 정지우)가 촬영 중이며,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감독 장윤현)가 원작인 영화 <가비>는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훈의 장편소설 <현의 노래>(감독 주경중)는 3D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도 최근 한 영화사에 판권이 넘어가 영화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화화가 진행 중인 한국 장르 소설은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 정도로 둘 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국 장르 소설의 토대가 워낙 약하기에 일본 장르 소설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장르 소설에 대한 충무로의 편애는 오리지널 시나리오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영화계의 고질병을 방증하기도 한다. 영화의 상업적 성취는 스릴러 등 장르 영화에 많이 의존한다. 정밀한 플롯과 상업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시나리오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충무로의 대우가 워낙 좋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관객을 유혹할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자는 독특한 소재와 잘 짜인 이야기를 무기로 내세운 일본 장르 소설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한 영화사 대표는 “일본의 인기 장르 소설은 대부분 일본에서 영상화되어 검증된 콘텐츠라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워낙 이야기 구성이 탄탄해 영화화하기에 쉬운 편이다”라고 말했다.

 

 

<미스터 나이스>는 하워드 막스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이다. 1945년 영국의 광산촌에서 태어난 하워드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한 후 친구들을 통해 마리화나와 LSD를 접한다. 졸업 후 잠시 교사 일도 하지만, 그는 친구의 부탁으로 마리화나 밀수에 손을 댄다.

 그는 IRA(북아일랜드공화국군) 조직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기를 들여오는 경로를 통해 마리화나를 들여온다. 영국의 정보기관(MI6)은 그에게 IRA에 대한 첩보 활동을 제안하지만 협조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공연 장비에 마리화나를 넣어 밀반입하려다 적발된다. 영국 법정에 선 그는 MI6와의 연관성을 이용해 보석으로 풀려나고, 납치자작극을 벌여 도주하면서, MI6와의 연관성을 언론에 흘려 유명세를 탄다. ‘미스터 나이스’라는 이름으로 출국해 미국에 마리화나를 유통시키던 그는 6년 만에 체포된다.

법정에 선 그는 자신이 MI6의 첩보원이며, 마리화나 거래가 임무 수행이었다는 거짓말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마약과의 전쟁’ 선포로 체포되어 징역 25년을 선고받는다. 모범수로 7년 만에 가석방된 그는, 칼럼과 토크쇼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알리고 있다.

 

그의 신념은 무엇일까? 그는 마리화나와 LSD처럼 의존성이 낮은 약물 사용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술이나 담배보다 유해성이 낮은 마리화나를 중독성 강한 마약과 같이 분류해 금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영화에는 “마리화나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주인공의 말과 “개인적으로는 마리화나를 규제하는 법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도 연방법상 불법이므로 법이 바뀌기 전에는 따라야 한다”라는 판사의 판결문이 나온다. 영화가 마리화나 합법화라는 예민한 문제를 던지는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도 하워드 막스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다만, 옥스퍼드 학벌의 인맥이 대단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