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방식으로 살았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 있는 그대로 담았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2.2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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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임준선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개봉 보름여 만에 관객 3백만명을 넘어섰다. 총 제작비 65억원, 순 제작비 45억원인 이 작품의 손익분기점은 2백20만명. 이 기세대로라면 4백만명은 쉽게 넘을 것으로 보여 투자비에 대비해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그의 첫 작품은 자기 돈 5백만원을 들여 2천만원으로 완성한 대학 졸업 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 아무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던 군대 내의 미묘한 세계에 그는 현미경을 들이댔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의 블록버스터급 관객 동원 기준인 1만명을 돌파했고,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았다. 두 번째 작품 <비스티 보이즈>를 통해 남창의 세계로 들어갔던 윤감독은 세 번째 작품 <범죄와의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사회라는 정글로 들어갔다. 20대 안팎 청춘의 사회 입문기에서 생태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 것이다. 그가 택한 무대는 대한민국을 촘촘히 엮어주는 관계의 그물망이다. 혈연(족보)과 학연, 지연. 이 네트워크에서 하위직 세관 공무원 출신 ‘마당발’ 최익현(최민식)은 검사와 조폭을 엮어주며 돈을 벌고 자식을 길러낸다. 영화는 검은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입신양명을 바라보고 사는 ‘경주 최씨 충렬공파’ 시민 최익현과 그가 밥벌이로 엮어나가는 악의 만다라를 무심하게 보여준다.

윤감독은 “영화에서 최익현이 좀 더 비열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영화적으로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익현이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형적인 비리형 공무원이자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미지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것이 본질이냐고 묻자 그는 “우리 아버지들은 이런 방식으로 살았다. 나는 관객들이 아버지의 위치에서 이 사람을 보기를 바란다. 장르적인 비장미를 강조하기 시작하면 그런 장르적 쾌락으로 넘어가게 된다. 최익현의 아들도 그렇게 살지 않나? 슬픈 현실이다. 아버지 시대의 풍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니…”라고 덧붙였다.

덧붙이자면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그의 부친도 경찰 공무원이었다. “나는 영화 만드는 사람이지 판사나 검사는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다. 아버지를 연민을 갖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알 것은 알아야 하지 않나. 나이가 들고 보니 아버지가 경찰 공무원이었는데 정상적인 월급을 받았다면 우리 집이 부산에서 그때 그런 생활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980년대에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고 본다. 자영업을 했건, 뭐를 했건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았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반복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지연과 학연, 혈연으로 엮여 ‘평범한 이들’마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듯 밥벌이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지 않을까.

“조승식 변호사가 6공 당시 범죄와의 전쟁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주고 시나리오 감수도 해주었다. 조폭을 잡아넣으면 중진 의원이 ‘그러지 말라’고 전화를 해오고 안기부에서 조폭들의 파친코 지분 정리도 해주고…. 조변호사로부터 ‘가리지널’ ‘반달’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다.” 가리지널이나 반달은 같은 말로, 조폭 출신이 아니면서 조폭 조직에서 먹고사는 ‘반 건달’을 가리킨다. 영화 속에서 세관 공무원 출신으로 조폭 두목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는 최익현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조변호사는 대검 형사부장을 끝으로 지난 2008년 3월 검찰복을 벗었다.

최익현의 모델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내가 이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 태광실업의 박연차씨이다. 박씨 에피소드도 굉장히 많이 조사했다. 팁을 얼마나 줬고, 발렌타인을 얼마나 즐겨 마셨고…. 그가 즐겨 찾았다는 부산의 로비 장소인 큰 가든에서도 영화를 직접 촬영하고 싶어서 교섭을 했는데 거부당했다. 박회장이 구속된 뒤 영업을 안 한다고 하더라.(웃음) 조사해보니 그가 그렇게 사람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하더라. ‘박연차 돈은 뒤탈이 없다, 안 받을 수가 없다, 무리한 부탁도 안 하고, 여야에 다 돈을 줘서 정치색도 없고, 검찰·경찰 다 먹이고…’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가 ‘지존’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박연차씨가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여기저기 끈도 잘 닿고, 말도 잘 통하고, 적도 없는 이른바 ‘마당발’의 표준 모델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는 아직도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왜 1980년대로 갔을까. “1980년대는 아버지 세대가 활동하던 시기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고…. 기억에 없는 시기였지만 그 시대와 지금 시대의 공기가 닮아 있다. 잘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었던 시기이다. 대중의 무의식에서도 그랬다. 내가 98학번인데 IMF 직전에만 해도 진학할 때 교대나 의대가 최고가 아니었다. 자기 꿈을 찾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교대나 의대가 최고이다. 가치가 역행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이야기의 재미를 전해주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바로 조연들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개봉 뒤 주연 배우 최민식을 재평가하게 했고, 곽도원·김성균 등 무명 조연에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인물에 대한 디테일은 그의 데뷔작에서도 그랬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본 ‘군대 갔다 온 남자’는 대부분 군대 고문관 역할을 하는 ‘지훈 역’에 대해 무릎을 쳤다. 군대에서 겪었던 상황과 인물의 싱크로율(두 개의 다른 것이 하나로 융합되는 비율)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훈 역을 한 사람이 윤감독이다. 꼼꼼한 관찰에 힘입었을 듯한 그런 세밀한 디테일이 대사로 표현되지 못하는 풍성함을 담아낸다. “남자들에게는 군대 트라우마라는 것이 있다. 왜 군대는 트라우마일까. 술 먹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것뿐이지 그 속의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대개는 아버지 세대의 풍습을 군대에서 처음 물려받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서의 악행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군대 동기도 제대하고 1년 뒤 정도면 더는 만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뭔가 찝찝한 게 있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장류 사람과 사람 속 수컷 성체’의 생태계 적응기를 다룬 영화는 <범죄와의 전쟁>까지 오면서 공감대를 더욱 넓히고 있다. “내가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신경한 편이고 잡생각도 많다. 다만 오늘 겪었던 일도 다시 생각하고 복기를 잘하는 편이다”라는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다.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이나, 마틴 스콜세지나 다르덴 형제 감독의 드라이한 세계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으로 보아서는 다음 작품도 ‘소셜 네트워크’를 드라이하게 다룬 작품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드라이한 느낌을 좋아한다. 원래 그것이 내 기질인 듯싶다. 낯간지러운 것을 못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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