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연기로 시대의 영웅을 깨워내다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2.2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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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시대 호령한 대처 전 영국 총리 그려낸 <철의 여인>, 미스터리 구성과 메릴 스트립의 호연 돋보여

ⓒ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마가렛 대처. 영국의 전 총리이자 한 시대를 이끈, 그리하여 역사의 얼굴을 바꾸었다고 평가받는 인물. 남성의 시대를 횡단한 놀라운 여성 정치인이자 노동의 세기에 종지부를 찍은 신자유주의의 얼굴. 이 논란의 인물을 스크린 위에 옮긴 것은 <맘마미아!>로 데뷔한 여성 감독 필리다 로이드. 그리고 그녀의 데뷔작을 함께한, 두말하면 미안한 대배우 메릴 스트립이 마가렛 대처로 현신했다. 영화 <철의 여인>이다.

영화에서 죽은 남편의 환영에 시달리는 만년의 대처는 삶의 주요한 순간을 회고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카메라는 야심만만한 옥스퍼드 졸업생에서 한 나라를 통치하는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 대처가 살아낸 과거의 순간들, 그리고 총리직에서 사임한 후 혼란스러워진 대처의 현재를 쉴 새 없이 오간다. 대처의 감흥과 정치적 지위 변화에 따라 의상의 색깔, 머리 스타일, 영상의 톤과 카메라 앵글이 바뀌고, 순간의 기억들이 교차되면서 역사의 한 장면들이 재구성된다.

마지막까지 홀로 선 여성의 강인함 그대로 담아내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순간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만년의 대처를 온전치 못한 기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많은 순간을 추리영화의 단서를 던지듯 파편적으로 관객 앞에 제시한다. 이 미스터리한 구성이 낳은 드라마적 긴장은 상당하다.

대처의 삶은 영화 <철의 여인>을 통해 남성의 시대를 호령한 여성 영웅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균형을 위해 당대의 기록 필름과 평가들이 삽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화가 전하는 대처의 얼굴은 마지막까지 홀로 선 여성의 강인함 그 자체이다. 때문에 정파적·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면 영화, 아니 대처가 강조하는 어떤 이야기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배우에 집중한다면 그러한 불편을 조금 덜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처의 연설 파일을 들으며 숨소리까지 연구했다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남편의 환영과 이별한 뒤, 스스로 찻잔을 닦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는 스트립의 헛헛한 표정과 굽은 등은 홍차의 뒷맛처럼, 그 순간 흐르던 바흐의 음악처럼 씁쓸하면서도 짙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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