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EU 외교, 모두 애쉬튼 탓?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2.2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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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대외관계국 설립 1년, 외교력 발휘 못했다는 평가받아…“외무장관이 무능하고 리더십도 부족”

지난 2월10일 캐서린 애쉬튼 EU 외무장관(가운데)이 멕시코의 갈릴레오 길릴레이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Xinhua

유럽 의회를 제외한 EU의 핵심 기관들이 모여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유로크랏(EU 관료를 칭함)들에게 요즘 두 가지 골칫거리가 있다. 첫째, 남부 유럽 회원국들의 재정 위기로 인해 불안해진 유로화 문제이다. 둘째, 유럽연합(EU)의 외무부에 해당되는 부서인 유럽대외관계국(EEAS ; 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의 빈약한 존재감이다. 설립된 지 1년이 지났지만 EU의 경제적 위상에 버금가는 외교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그 총체적 문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유럽대외관계국의 수장 캐서린 애쉬튼에게로 향하고 있다.

지난 1월 <유로피안 보이스(European Voice)>라는 간행물에는 보기 드물게 애쉬튼 외무장관을 격하게 비난하는 글이 실렸다. 문제의 글을 쓴 포겔은 다음과 같이 강하게 애쉬튼 장관을 질타했다. ‘EEAS 설립 당시 나는 EEAS가 앞으로 1, 2년 뒤에 실적에 의해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EU의 외교·안보 정책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에 의해서 평가받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EEAS는 계속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EEAS의 가장 큰 문제는 애쉬튼에게 그 책임을 맡긴 것이다.”

유로피안 보이스는 애쉬튼 장관에 대한 비난을 이렇게 이어간다. ‘애쉬튼이 EU 외교 정책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졌다. 1월 말로 창립 1주년을 맞은 EEAS는 혼돈과 혼란 상태이다. 1천5백여 명의 직원이 유럽연합 집행이사회를 비롯한 주요 기관에서 EEAS로 전보 발령되었지만,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모르는 직원도 많다. 동기 부여가 안 된 직원들은 사기가 저하되었고, 결국 EEAS 안에 있는 한, 조직의 혼란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외교의 많은 부분에서 정책 지침조차 없어”

포겔에 따르면, 잘 정비된 관료 체계에 경험이 없는 외무장관이 있거나 정비되지 않은 관료 체계에 경험이 많은 외무장관이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애쉬튼의 EEAS 수장 임명은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루벤 가톨릭 대학의 국제법과 EU학과 교수인 얀 부터스는 “EEAS는 현재까지 어떤 변화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EU 외교의 많은 부분에서 정책 지침조차 없는 실정이다”라고 EEAS의 위상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1년 전 애쉬튼이 EU외무장관직을 맡기 전에 비록 외교 정책에 경험이 전무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업무를 파악해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애쉬튼의 리더십은 온 데 간 데 없고, 외교 수장으로서의 권위도 부족하다. 이러한 애쉬튼의 결점이 결국 EU의 외교 정책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것이 애쉬튼을 부정적으로 보는 브뤼셀 외교가의 시각이다. 애쉬튼의 더 큰 결점은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이 없다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믿고 일을 맡기는 데 무능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또한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애쉬튼이 신설된 EU 외무장관 격인 외교·안보 정책 대표 자리에 임명 되었을 때 프랑스 유로크랏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다. EU 내 외교 분야의 고위직 인사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애쉬튼 장관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람들은 EU 관계자들이 아니라 미국인들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애쉬튼 장관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개인적으로 강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쉬튼 장관은 미국의 국익에 직결된 이란 문제에 대해 EEAS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한다고 한다. 결국, 1백37개국에 EU 대표부를 두고 있는 조직에 걸맞게 글로벌 스케일이 필요한 EEAS를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인 것이다.

지난 1월 보다 못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와 다른 EU 여덟 개국 외무장관은 애쉬튼 장관에게 어떻게 EEAS를 운영해야 하는지를 조언하는 글을 서면으로 보냈다. 서면의 골자는, EEAS는 반드시 유럽연합 집행이사회와의 공조 관계를 향상시켜야 하고 회원국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 EU 대사들은 브뤼셀에서 이루어지는 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회원국의 외무장관들이 월례 모임을 더 효율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1년간 일관되지 않은 EEAS의 입장 때문에 국제연합(UN)에서 발언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외에 있는 EU 대표부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EU 대사들은 재정 문제에 대한 통일적인 시스템이 없어 행정적인 업무에 매달리느라 과부하가 걸려 있는 상태라고 한다.

네 명의 독재자를 몰아낸 아랍에 부는 재스민 혁명에 대해서 애쉬튼 장관이 취한 이니셔티브라는 것은 고작 EU 병사들을 리비아에 파병해서 인도적인 일을 처리하도록 하려는 엉뚱한 계획이었다. 결국 이 계획도 실현되지 않고 애쉬튼 장관은 유엔의 담당부서에 넘기고 말았다.

애쉬튼 장관에게 일격을 가한 또 다른 인물은 애쉬튼의 전임자인 솔라나(Solana) 밑에서 일했던 오스트리아 외교관 스페판 레네이다. 레네의 분석은 ‘EEAS를 강화하는 방법’이라는 외교적으로 포장된 제목을 붙였지만, 현 EEAS 상황은 조직이 허술했던 솔라나 시절보다도 좋지 못하다는 결론이다.

조직적 취약점·한계도 혼란 부추겨

애쉬튼의 리더십 문제를 제외하고 EEAS가 창설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조직적 취약점도 있다. EEAS는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을 이끌기 위한 기구로 탄생했다. 그 이유는 외무장관들의 정책적 역할이 각국 총리와 대통령에 의해 뒷전에 밀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브뤼셀의 EU 시스템에서 재무장관들이 가장 대접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EEAS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장애가 되어왔다.

27개 회원국의 외교 정책에서 우선순위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동유럽권의 EU 회원국들은 동유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근 국가들과 파트너십에 중점을 두려고 하고, 남유럽 회원국들은 북아프리카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반면 EU의 주도 국가들은 아랍과 이스라엘 분쟁에서 역할을 기대하는 등 회원국 간에 이해관계가 분산되어 있는 것도 EEAS의 역할 분담에 장애 요소이다.

또한 외교 정책의 성공이라는 것이 눈에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국제회의의 횟수와 원조 등은 가시화되는 것이지만, 외교 정책의 결과는 산출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외교 정책은 공학이 아니라 예술의 한 형태이다(Foreign policy is a form of art, not engineering.)’라는 말을 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외교 수장인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경우를 보자.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켰는가?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시켰는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해결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떤 것도 그렇다고 답할 부분이 없는 것이 미국 국무장관의 입장이고 역할의 한계이다.

애쉬튼 장관에 대해서는 자신의 출신 국가인 영국 정부가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영국 정부가, EU가 독자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다 보니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인물을 배출했더라도 모국에서 후원해주지 않으면 영향력이 감소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애쉬튼 장관 스스로가 영국 내에서 영향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자국에서 힘을 못 쓰는 인물이 국외에서 힘을 쓸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애쉬튼은 EU의 외교 수장을 맡기에는 어울리는 않는 나라 출신인 셈이다. 

따라서 애쉬튼 장관의 후임자는 강한 유럽을 만들고자 하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애쉬튼 장관이 사임한다면, 후임자의 세 가지 최적 요소는 외교 경험, 리더십 그리고 친화력이 될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없다는 것이 애쉬튼 장관이 그동안 줄기차게 지적받아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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