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부처 세종시 이전, ‘기러기 기자’ 양산하나
  • 원성윤│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12.02.2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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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 기자들도 올해 이삿짐 꾸려야 할 처지…언론사들, 아파트 임대료 지원 등 ‘당근’ 제시할 듯

지난 1월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언론사 초청 세종시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세종시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원기자. 원기자 같으면 세종시 갈 수 있겠어요?”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중앙 일간지의 한 기자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정부 기관들의 세종시 이전이 올해부터 본격화되면서 세종시로 이삿짐을 꾸려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물리적인 어려움이 예상되어 세종시에 거처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정부 부처 첫 이동은 국무총리실부터 시작한다. 총리실은 오는 9월 중순부터 옮기기 시작해 국무총리가 새 공관으로 입주하는 12월까지 이전을 완료한다.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다섯 개 부처는 11월 말부터 2~3주에 걸쳐 이전을 시작해 연말까지 마친다. 2014년까지 중앙 행정 기관 16곳과 소속 기관 20곳을 연차적으로 세종시로 옮길 예정이다. 방송사, 중앙 일간지 등에서 적게는 4~5명, 많게는 10명 정도의 인원이 이동해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세종시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도 움직이고 있다. 행복도시건설청은 지난 1월 기자실 배치 계획 등을 포함한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를 주도한 도시기획과 정래화 사무관은 “행복도시 소개, 청사 내 브리핑룸과 기자실 배치 계획, 언론기관 입주 가능 위치 및 토지 공급 계획 등에 대해 소개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종시로 오는 언론사가 많을 경우 단지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토지를 싸게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들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 계획은 없어

그러나 이같은 방안에 호응하는 언론사는 적은 편이다. 방송사와 일부 대형 신문 위주로 토지 공급에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대다수 신문사는 비용 부담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의 한 관계자는 “최근 행복도시건설청에서 언론사들에게 건물을 짓는 문제 같은 입주 문의가 왔으나 내부적으로는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라 어려울 것 같다. 정부에서 프레스센터를 지어서 임대하는 경우 임대료를 지불하고 입주하고, 기자실에서 기사를 송고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언론사들은 기자들에게 부담은 되지만 출퇴근도 가능한 만큼 수요 조사를 하고, 이주하는 기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강진구 노조위원장은 “‘근무지 이전에 대해 본인 의사를 존중한다’는 문구를 ‘노조와 본인 동의하에 이전한다’는 쪽으로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피스텔 월세 비용이나 격지 수당 등 기본적인 비용 보전은 회사측에서 부담해야 기자들이 움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오피스텔을 임대해 취재본부를 꾸리는 방안을 잠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충재 편집국장은 “대체로 기자실에 상주해 기사를 쓰고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취재본부가 별도로 필요한지는 좀 더 논의해보아야 한다. 연고가 있는 기자들이 지원할 것으로 보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경제 신문 기자는 “정책 관련 부처들이 주로 이전하는 만큼 회사에서는 세종시에 내려가는 기자들을 위해 별도의 부서를 만들 예정이고 아파트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의 1단계 이전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올해 말 세종시 인구는 1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기간까지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는 첫 마을의 아파트 6천 가구에 불과하고, 각 언론사가 소유하거나 임대한 아파트는 현재 없다. 2014년 6월까지 1천6백61가구 규모의 공무원 임대아파트가 차례로 건립되지만 기자들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 계획은 없다.

부처들의 서울 출장소 건립 방안 제시되기도

공무원들은 세종시에 계속 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평균 2~3년 단위로 출입처가 바뀌는 기자들이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현실감이 먼 이야기이다. 상가나 학원 등 편의시설이 완비되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가족들은 서울에 두고 결국 ‘귀양살이’식으로 기자 혼자 세종시에 가서 근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일선 기자들의 하소연이다. 중앙 일간지의 한 기자는 “일단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세종시에 지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학교와 학원 등도 부족해 서울에 거처를 둔 기러기 기자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나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언론 단체에서 정부측에 기자들의 숙소 지원 등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신문사들의 경영난이 계속되고 있는데 개별 언론사들이 비용을 부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세종시 이전과 유사한 사례로 참여정부의 지방 분권화 정책으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문제들도 있다. 한 중앙 일간지 문화부의 영화 담당 기자는 부산으로의 이전이 예정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사례를 들었다. 이 기자는 “영화 심의를 담당하는 영진위가 부산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영화 필름들이 부산으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유출될 위험이 있어 영화 배급사 관계자들이 영진위의 부산 이전을 우려하고 있다. 제작자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처들의 서울 출장소 건립 방안이 세종시 이전에 따른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무원들과 직접 만나 취재를 해야 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이같은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서울 출장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브리핑 수준에 불과해 마냥 서울에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세종시 이전에 따라 기자들의 대거 이동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향후 각 언론사들은 적지 않은 충돌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고, 회사에서는 이들 기자의 유출을 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양자 간의 ‘줄다리기’는 올해 하반기를 넘어서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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