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협회와 ‘왕차관’은 무슨 관계?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2.2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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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들어 급조된 해외자원개발협회, 박영준 전 차관의 자원 외교 행보 적극적으로 지원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 아프리카 협력 사절단이 지난 2010년 11월 짐바브웨를 방문해 장기라이 총리를 면담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빼놓고서 사태가 무마될 수 있겠나.” 검찰 수사에 들어간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과 관련해 자원 개발 업계의 한 고위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감사원의 공식적인 감사에서는 빠졌지만, 검찰에서는 박영준 전 차관 부분을 빼고 수사를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은석 전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가 ‘핵심 인물’로 지목되었지만, 벌써부터 ‘꼬리만 자르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실상 자원 외교를 주도했던 박 전 차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 전 차관의 이름 앞에는 ‘Mr. 아프리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주변에서 그렇게 부르는 데 대해 본인도 좋아했다고 한다. 현 정권의 실세로서 ‘왕비서관’ 또는 ‘왕차관’으로 불렸던 그는 2009년 1월 국무차장(차관급)을 맡으면서 자원 외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특히 ‘자원의 보고’로 알려진 아프리카 지역에 관심이 높았다. 카메룬은 2010년 5월에 다녀왔다. 두 번째 아프리카 방문이었다. 주가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CNK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 획득을 지원하고 온 문제의 출장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2010년 10월에는 13박14일 일정으로 중동 및 아프리카 순방을 다녀왔다. 특히 아프리카를 방문할 때는 매머드급 민·관 합동 대표단을 이끌어 주목을 받았다. 28개 기관 및 업체에서 57명이 참여했다. 전세기도 빌려 탔다. 그 비용을 정부 기관과 참여 기업에서 똑같이 나눠 부담했다고 하지만, 박 전 차관이 정권 실세가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느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차관급 인사의 해외 출장치고 너무 요란했다는 것이다. 그의 위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석유공사 등 70여 개 유력 기업들이 회원사

박 전 차관의 해외 출장이 이렇듯 대규모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한 협회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에 발족된 ‘해외자원개발협회’이다. 이 협회는 고유가에 따른 무역 수지 악화를 막고, 자원 개발 업체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결성되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이 협회가 문을 열자 관련 사업 및 지원을 이미 다른 공기업이나 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조직을 또 하나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자원 외교를 강조한 현 정부가 협회를 급조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 협회의 회원사로는 한국석유공사와 같은 공기업을 비롯해 SK에너지와 같은 대기업 등 70여 개의 에너지·자원 관련 국내 유력 기업들이 총망라해 있다.

해외자원개발협회는 박 전 차관의 자원 외교 행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협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 나갈 때 일정을 지식경제부에서 짜면 실행은 협회에서 맡았다. (협회) 부회장이 동행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 협회의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출신인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맡고 있다. 실질적인 업무는 상근하고 있는 정규창 부회장이 책임져왔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1978년 동력자원부 창립 멤버인 정부회장은, 공직 생활의 3분의 2를 에너지 관련 업무를 맡았던 이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차관과 정부회장은 자원 외교를 추진하면서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한다.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이 친분을 쌓는 데 일조했으리라는 것이 주변의 이야기이다. 박 전 차관은 경북 칠곡이 고향이고, 정부회장은 경북 의성 출신이다. 업계에서는 정부회장이 연임을 하는 데 박 전 차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해외자원개발협회는 박 전 차관이 공을 들인 아프리카와 관련한 일을 많이 했다. 2010년 10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카메룬 투자 포럼’ 행사를 주관한 곳도 이 협회이다. 카메룬의 산업광업기술개발부 차관이 방한해 박 전 차관과 회담을 갖고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 카메룬 차관은 당시 CNK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과 관련해 “조만간 최종 재가가 나면 다이아몬드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밝힌 장본인이다. 협회가 매주 아프리카 정보지를 별도로 발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정보지는 지난해 말까지 총 63회가 나왔다.

협회 관계자 모임에서 박 전 차관 송별회도

유희상 감사원 대변인이 1월26일 감사원에서 CNK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공식적인 협회 조직과는 별개로 협회와 연관성이 깊은 비공식 모임도 결성되었다. 세 차례에 걸친 박 전 차관의 아프리카 출장에 동행한 적이 있는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모임 이름은 ‘에이에프케이엔(AFKN)’으로 ‘Africa Friendship Korea Network’의 약자이다. 일종의 친목 모임인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인다고 한다. 회원으로는 자원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대기업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협회 회원사의 임원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 현재 모임의 회장도 한 대기업의 계열사 사장이 맡고 있다.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담당자들도 한두 명씩 들어가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전 차관도 발기인 모임에 참석했는데, 지식경제부 차관을 그만두기 한 달 전쯤에는 모임에서 송별회를 갖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모임 회원들이 나서서 협회 회원사 차원에서 박 전 차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 열린 박 전 차관의 출판기념회를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다. 박 전 차관은 오는 4월 총선에서 대구 중·남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모임의 한 회원은 “돈을 거두어주었다는 이야기는 박 전 차관을 싫어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이 모임은 아프리카에 같이 갔다 온 인연을 유지하려고 만든 것이다. 박 전 차관이 도움을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업계 내에서는 이번 CNK 사태가 박 전 차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이전부터 김은석 전 대사가 박 전 차관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박 전 차관은 주변의 부탁을 잘 뿌리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조심을 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규창 부회장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원 개발은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이다”라고 강조했다.

CNK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관련해 박 전 차관의 친인척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차관의 CNK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해온 무소속 정태근 의원은 “오덕균 CNK 대표가 보유하던 BW가 권력 실세 주변 인물 두 명에게 취득가 이하로 넘어갔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자원 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박 전 차관에 대해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의 경우 허무맹랑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CNK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시끄러워질 것 같다는 말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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