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파업 화산’ 대폭발하는가
  • 채은하│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2.03.05 23: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C 파업 이어 KBS·YTN 등 연대 파업 초읽기…보도의 공정성·독립성 훼손에 대한 반성 깔려

지난 2월24일 MBC 노조 파업 이후 처음으로 여의도 사옥에 모습을 드러낸 김재철 사장(맨 앞 가운데)이 확대간부회의를 마치고 농성 현장을 지나 사장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송계가 사상 초유의 연대 파업 가능성이 구체화되면서, 대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MBC 총파업이 30일을 넘기고 있는 가운데, KBS 새노조는 3월6일 파업에 돌입하고, YTN 노조는 총파업 투표를 가결시켰다. YTN 노조의 총파업 돌입 시점과 방법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방송사 노조 연대 파업이 벌어질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진 셈이다. 이들 세 노조는 이미 ‘공정 방송 복원, 낙하산 사장 퇴출, 해고자 복직을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 세 방송사에서는 이명박 정부 내내 ‘낙하산 사장’ 논란이나 방송 독립성 훼손, 해고를 비롯한 각종 징계 사태 등으로 파업이나 사장 출근 저지 투쟁, 노조 집행부 단식 등 싸움이 적지 않게 벌어져왔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임기에 벌어진 이번 파업은 이때까지 제기된 각종 문제가 더욱 악화되면서 벌어진, 낙하산 사장 체제의 ‘파국’을 보여준다.

‘사장 퇴진’ 요구에 사측은 ‘해고’로 대응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이 파업 30일째를 넘기고 있는 MBC이다. MBC 파업은 말 그대로 ‘강(强) 대 강(强)’ 충돌 양상이다. MBC 노조는 ‘전면 인사 쇄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MBC 정상화’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종결 파업을 강행할 것임을 내세우고 있다. 한 달 가까이 MBC 사옥에 나타나지 않았던 김재철 사장은 2월29일 박성호 기자회장을 전격적으로 해고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 밖에도 MBC는 보직을 사퇴하고 노조에 재가입해 총파업에 동참한 최일구·김세용 앵커를 비롯한 간부 여덟 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한 상태라 이들에 대한 징계 수위도 주목된다.

김사장이 초강경 대응을 서두르는 것은 업무 복귀 명령을 내렸음에도 오히려 간부급 사원의 파업 동참이 늘어나는 등 파업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최근에는 MBC 노조가 명품 매장, 특급호텔, 귀금속 등 연간 2억원에 달하는 사장의 법인카드 내역과 함께 ‘파업 기간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사모님과 단둘이 호텔 음식점에 자주 왔다’라는 등의 취재 내용을 공개해 적잖은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이 해고와 정직 등의 징계로 파업을 중단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2010년 MBC 노조가 집행부의 결단으로 39일간의 파업을 중단했을 때와는 상황이 상당히 달라진 탓이다. 당시 MBC 노조는 상당한 홍역을 치렀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또, 당시 MBC 파업이 천안함 사건과 지방선거 이슈에 묻혀 여론화되지 못한 점도 컸다. 그러나 지금은 KBS와 YTN 등에서도 각각 파업에 나서고 있고, 연합뉴스 역시 박정찬 사장의 연임에 반대하며 연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두 공영방송과 국가 기간 통신사 등 이른바 정부 영향 아래 있는 언론들이 총체적으로 나서는 상황이어서 향후 4·11 총선 국면과도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KBS도 총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KBS기자회는 3월2일부터 제작 거부에, KBS 새노조는 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KBS는 지난 2010년 7월 공정 방송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안 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엄경철 전 새노조 위원장과 이내규 전 부위원장에게 정직 6개월 등 전임 집행부 13명에게 무더기 중징계를 내렸다. 또, 김인규 사장이 불신임 투표 결과 스스로 물러난 고대영 보도본부장 후임으로 이화섭 부산총국장을 임명한 것을 취소하라는 내용도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이다.

공통적으로 ‘낙하산 사장’ 체제에 분노

지난 3월2일 제작 거부에 들어간 KBS 기자들이 여의도 신관 사옥 입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KBS 새노조 제공
YTN 노조 역시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배석규 사장 연임 반대’ 파업인 만큼 오는 3월9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이전에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YTN 노조에는 ‘연임 반대’ 외에도 해직자 복직, 임단협 등의 문제도 걸려 있다. 연합뉴스 노조 역시 박정찬 현 사장의 연임 반대를 내걸고 연가 투쟁 등을 벌여왔으나 뉴스통신진흥회는 2월29일 박사장의 연임을 확정했다. 앞서 노조는 “연합뉴스의 공정성과 독립성, 사내 민주화를 거스르는 인물을 사장으로 선임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울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각 언론사 노조의 투쟁에는 공통적으로 낙하산 사장 아래에서의 인사 전횡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이 만드는 언론 보도가 공정성과 독립성 등 언론의 본분을 잃었다는 반성이 깔려 있다. MBC 노조는 MB 내곡동 사저 축소 의혹 보도, 총리실 민간인 사찰 관련 보도, 김윤옥 여사 금품 로비 연루 의혹 등 보도 불공정 사례 36건을 공개했고, KBS 새노조도 이른바 ‘관제 특집’으로 변한 자사 프로그램들을 비평했다. YTN 내에서도 “정상적인 취재 시스템과 자기 검열 탓에 ‘특종’이 없다” “우리는 ‘면피 전문 기자’가 되어가고 있다”라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이들 방송사의 기자들 가운데에는 방송 기자로서 정체성의 위기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기자는 “요즘 방송 뉴스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른바 ‘공영방송’인 KBS나 MBC 방송 뉴스보다, 오히려 상업 방송인 SBS의 보도가 나은 경우가 많다. 요즘 <나꼼수>나 <뉴스타파> 등의 팟캐스트가 뜨는 것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방송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은 MBC와 KBS, YTN이 모두 파업 대열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아래에서 일어난 언론 장악이 지난 4년간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진작 이랬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정권의 언론 장악에 대해서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자성이고 자정 활동으로 봐달라”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