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업계 ‘하얀 전쟁’에 ‘국물’은 더 화려해졌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3.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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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삼양·팔도 등 신제품 내면서 ‘제2 라운드 대결’ 예고 / 추격당하는 1위 농심, 올해 10종 추가 계획 밝혀


지난해 ‘하얀 국물’ 전쟁을 치른 라면업계가 2차 색깔 전쟁에 나섰다. 이번 전쟁의 색깔은 더욱 화려해졌다. 농심은 1월 쌀가루 10%를 함유한 ‘후루룩 칼국수’를 내놓았다. 후루룩 칼국수는 하얀 국물이다. 이어 지난해 하얀 국물 전쟁에서 나가사끼 짬뽕으로 홈런을 친 삼양식품이 3월12일 갈색 국물의 ‘돈라면’을 내놓았다. 꼬꼬면으로 하얀 국물 전쟁의 불을 지핀 팔도에서는 3월 중순에 빨간 국물의 ‘남자라면’을 내놓는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하얀 국물 전쟁에서 허를 찔린 농심은 올해 후루룩 칼국수를 포함해 10여 개의 신제품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올 한 해에도 라면 시장이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하얀 전쟁’의 승자는 삼양식품인 듯하다. 지난해까지 라면 시장에서 빅5 브랜드로는 농심의 신라면과 짜파게티, 안성탕면, 너구리, 삼양라면이 꼽혔다. 시장에 변화가 온 것은 지난해 7월 나가사끼 짬뽕, 8월 팔도 꼬꼬면이 나오면서부터다. 롯데마트 자료에 따르면 8월에 꼬꼬면이 판매 순위 6위에 오르더니, 9월에 4위, 10월에 6위, 11월에 3위, 12월에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나가사끼 짬뽕은 9월에 6위, 10월에 4위, 11월에 4위, 12월에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재미있는 점은 올해 들어 꼬꼬면이 1·2월에 6위, 8위로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는 데 반해 나가사끼 짬뽕은 1월에 3위, 2월에 2위까지 치솟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삼양식품은 기존 주황색 봉지의 삼양라면도 3%대의 점유율을 보이며 10위권 안에서 버티고 있다. 삼양식품이 나가사끼 짬뽕과 삼양라면 두 품목만으로 점유율이 14.8%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8월 삼양라면 한 품목이 4.7%의 점유율을 보였던 데 반해 나가사끼 짬뽕이 점유율을 10% 정도 늘려놓은 것이다.

광고처럼 나가사끼 짬뽕이 ‘대세’가 되어…

이런 시장 변동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쪽은 농심이다. 지난 3월2일 농심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공시 서류에 따르면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8백61억원으로 2010년 1천3백80억원에 비해 37.6%나 줄어들었다. 색깔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라면 시장 점유율은 전년(71.5%)과 전분기(68.1%)에 비해 하락한 62~63% 정도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농심의 점유율이 하락한 이유로 “경쟁사에 비해 신제품 출시가 늦었다”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또 4분기 매출액은 전년과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이 57.1%나 줄어들고, 세전 이익은 49.4%로 감소한 이유에 대해 “라면 점유율 하락, 원가 부담 지속, 판매 장려금 증가로 인해 매출액이 정체되고 수익성이 하락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식품업계에서 1위 업체가 바뀌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독점력이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장 1위 업체의 주가는 훨훨 날지만 2등 이하는 주목을 받지 못한다. 요즘 농심의 주가는 23만원대, 삼양식품의 주가는 3만원대이다. 최근 애널리스트들의 농심 목표 주가는 하향 추세이다. 반면 지난해 여름 삼양식품의 주가는 1만원대에서 거의 3배가 올랐다. 시장에서 그만큼 삼양식품의 공세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신호일 것이다.

삼양식품은 흰 국물 전쟁에서 역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삼양의 간판인 주황색 봉지의 삼양라면은 봉지면과 용기면을 더해 월 1백10억원어치 정도가 팔렸다. 나가사끼 짬뽕이 삼양라면을 추월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나가사끼 짬뽕은 봉지면과 용기면을 더해 1백30억원어치가 팔렸다고 한다. 나가사끼 짬뽕은 올 1월과 2월에도 매출세가 줄지 않고 더 강해졌다. 지난 2월 봉지면이 2천100만개, 용기면이 4백50만개 팔려 1백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삼양식품의 간판으로 자리를 잡았다.

삼양은 여세를 몰아 ‘돈라면’을 내놓았다. 성공작이었던 나가사끼 짬뽕처럼 돼지뼈 육수가 베이스이다. 여기에 마늘 슬라이스 플레이크와 별첨 소스인 로스팅 마늘 조미유를 첨가해 알싸한 맛을 포인트로 내세웠다. 나가사끼 짬뽕이 청양고추의 매운맛이었다면 돈라면은 마늘의 매운맛인 셈이다. 삼양식품은 출시 홍보 자료에서 “연간 4백50억~5백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삼양식품의 최남석 홍보실장은 “결국은 맛으로 승부가 판가름 난다. 연예인을 앞세운 광고나 마케팅 효과로는 맛을 앞서가지 못한다. 돈라면도 사전 소비자 테스트에서 맛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라고 주장했다.

꼬꼬면 돌풍으로 웃음꽃이 활짝 폈던 팔도에서는 12월부터 꼬꼬면의 성장세가 주춤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꼬꼬면이 위력을 떨치자 한국야쿠르트는 올해 초 라면사업부와 음료사업부를 묶어 ㈜팔도로 분사시켰다. 팔도의 임민욱 홍보팀장은 최근의 꼬꼬면 하락세에 대해 “꼬꼬면은 라인 증설 등의 문제로 지난해 판촉 행사를 하지 못했다. 최근 증설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꼬꼬면도 3월1일부터 판촉 행사를 시작해 판매량이 1백80% 정도 늘어났다”라고 전했다. 꼬꼬면은 지난해 12월 월 2천만개를 판매했는데 올해 1월과 2월에 1천5백만개 수준으로 떨어졌다. 팔도는 대응 카드로 기존 라면 시장의 주류 코드인 ‘빨간색 소고기 국물’에 도전장을 냈다. 소고기 베이스에 돼지고기와 닭고기 국물을 가미한 맵고 시원한 ‘남자라면’을 3월 중에 출시한다. 이번 제품도 꼬꼬면처럼 개그맨 이경규씨와 관련이 깊다. “이경규씨가 맵고 화끈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남자와 어울린다며 남자라면이라는 이름을 추천했다”라는 것이다. 남자라면의 가격은 1천원인 꼬꼬면보다 싸고 신라면과 비슷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도 PB 상품 내놓으며 경쟁 나서

여기에 이마트나 보광훼미리마트 등에서도 하얀 국물의 자체 PB상품을 내놓으며 가세하고 있다. 라면업계의 최강자 농심은 올해 무려 10종의 새 제품을 내놓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새 제품의 등장은 업체 입장에서는 판매 관리비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익이 줄어드는 것이다. 후발 업체는 1위 업체를 잡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오는 것이 상례이다. 선도 업체는 후발 업체의 공세를 막아내야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농심이 이번 색깔 전쟁에서 시장 점유율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1위 자리까지 흔들릴지는 미지수이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농심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진 것은 맞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확률적으로 본업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회사가 점유율을 높게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의 투자가 제품으로 이어지면 농심의 점유율이 다시 올라갈 것이다. 신라면 블랙도 제품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사회적인 변수가 끼어들어가면서 판매가 중단된 것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슈퍼마켓에서 최근 벌어진 가장 큰 쇼는 하이트와 오비의 전쟁이었다. 1990년대 중반 시장 점유율 30%대였던 크라운맥주는 철옹성 같았던 동양맥주의 1위 자리를 ‘하이트맥주’로 구멍을 낸 뒤 1위 자리에 올랐다. 동양맥주는 계속 신제품을 내며 하이트의 공세에 맞섰지만 비용만 증가시켰을 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거짓말 같은 역전극이 3년여 만에 벌어졌다. 20여 년 가까이 요지부동으로 농심 독주 체제를 이루었던 라면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색깔 전쟁은 마침내 판도 변화로 이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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