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으로 굳힌 ‘낙하산’ 줄 끊어낼까
  • 채은하│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2.03.12 18: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송 3사 노조 공동 파업, 총선과 맞물려 주목…특정 정당 떠나 정권의 언론 장악 막는 개혁 요구

지난 3월5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KBS, MBC, YTN 등 방송 3사 파업 출정식에서 방송사 노조원들이 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MBC에 이어 KBS와 YTN 등 방송 3사가 사상 초유의 공동 파업에 돌입했다. 여기에 SBS 노조도 방송 3사의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등 파업의 물결이 방송계를 뒤덮으면서, 다가오는 4·11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 1월30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MBC 노조에 더해 KBS 새노조가 3월6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으며, YTN 노조도 8일 파업에 돌입했다. 사장 연임에 반대하는 연합뉴스도 7일부터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종편이나 미디어렙 문제를 두고 전국언론노조 차원에서 총파업을 벌인 적은 있으나 세 방송사가 동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 방송사 모두 각각의 현안이 걸려 있는 만큼 참여 규모도 크고 결집도가 높아, 전국언론노조 차원의 총파업보다 오히려 그 여파나 강도는 더 세다.

4·11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이들 방송사의 파업이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파업의 이슈 자체가 이명박 정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방송사가 내세우는 목표는 ‘낙하산 사장 퇴출, 해직 언론인 복직, 공정 방송 쟁취’이고, 이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때부터 줄곧 문제가 제기되어온 키워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던진 ‘낙하산 인사’와 ‘언론 장악’이라는 문제가 정권 말기가 되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청와대는 역풍 우려하는지 침묵으로 일관

이를 잘 보여주는 정황이 방송 3사의 파업에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이다. 정부 차원의 발언이라고는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파업 중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방송사 내부 문제여서 섣부른 개입이 독립성,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 이것은 과거 언론노조의 파업에 대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나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 노동부 등이 나서 “불법 파업이다”라고 규정하면서 강경하게 대응했던 것과는 차이가 크다. 잇단 비리 의혹과 새누리당의 공천 파문 등 정권 말기의 레임덕으로 청와대 내부의 정무 라인이 무너져 대응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가 정권의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부터 시작된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설 경우 역풍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MBC·KBS·YTN 등에 각각 김재철·김인규·배석규 사장이 취임할 당시 각 사별로 벌어졌던 ‘낙하산 인사 반대’ 파업 때와는 방송에 대한 여론이 다르다. 당시만 해도 ‘공정방송 훼손’은 하나의 우려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각 방송사에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부당한 인사 조치와 프로그램 폐지, 뉴스의 연성화 현상이 벌어졌고, 급기야 노조측에서 오히려 “그동안의 방송을 반성합니다. 파업이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 장악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많이 공격받았던 ‘민주주의 퇴행’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데, 올해 총·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전면에 제기된 것이다.

“방송사 사장 선임 구조 바뀌어야” 한목소리

민주당을 비롯한 각 야당도 이명박 정부를 겨누는 파업의 열기에 올라탔다. 야당은 이계철 방통위원장 내정자 청문회 등에서 언론 장악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한편, 논평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방송사들의 파업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3월7일 기자회견을 열고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될 경우 이명박 정부하에서 자행된 방송 장악, 언론 장악 시도에 종합적인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열겠다” “잘못된 미디어 관련법, 미디어렙법에 대해 19대 국회에서 즉각적인 개정 작업에 착수하겠다”라고 밝혔다. 언론 장악 문제를 총선 이슈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킨 것이다.

여론 중에는 ‘하필 총선을 앞두고 파업에 돌입하느냐’라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사측도 이 점을 공략하고 있다. 사측은 이들 노조의 파업을 ‘정치 파업’으로 규정해 비난하고 있다. MBC 사측은 “이번 파업은 정치 파업으로 정당성이 결여되었다”라며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KBS 사측은 “파업 목적이 정치 파업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명분이 없다. 공영방송이 국민을 볼모로 정치 투쟁을 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난했다. 이에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파업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이명박 정부이고, 정부가 내려 보낸 현 사측, 즉 ‘낙하산 사장’들인데 이들이 오히려 ‘정치 파업’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이들 낙하산 사장으로 인해 그동안 쌓인 병폐가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 이번 파업이다. 우리의 진정성을 왜곡해서 그간 자신들이 저질러온 과오를 감추려 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MBC의 경우 노사 모두 ‘극한 충돌’의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귀결을 미리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총선 정국과 맞물리는 이번 파업에서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과연 이번 파업이 ‘낙하산 사장’의 구조적인 변화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이다. 그동안 KBS와 MBC YTN 등의 사장이 역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뒤바뀌는 병폐의 고리를 끊어, 방송사가 정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MBC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임하는 방송문화진흥회가 MBC 사장을 뽑고, KBS의 경우 여당 추천 이사가 다수를 이루는 KBS 이사회가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여서 방송사 경영진이 정권의 입김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YTN 역시 최대 주주가 공기업인 한전KDN이라 정권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언론 장악의 문제는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계속 남아 있게 된다. 이강택 위원장은 “언론 장악은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외치는 ‘사장 퇴진’은 하나의 상징이다. 올해 선거를 거치며 총체적인 변화와 개혁을 요구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