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독주’가 달갑지 않은 까닭
  • 문형민│뉴스핌 증권부 기자 ()
  • 승인 2012.04.10 0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스피 상승률 두 배 기록’ 등으로 간접투자 수익률 왜곡시켜…주식형 펀드의 성과도 ‘좌지우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43기 정기 주주총회 모습. ⓒ 뉴시스

대기업 부장인 김 아무개씨(48)는 자신이 가입한 주식형 펀드 수익률을 확인하고 적잖이 실망했다. 올해 들어 주가가 많이 올라 상당한 수익이 났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펀드를 해약해 가족들과 꽃놀이 여행을 가려던 계획도 다시 고려해보아야 할 처지이다. 김부장이 가입한 펀드는 가치주펀드이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11% 하락하는 동안에도 손실을 보지 않았던 펀드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코스피지수가 12% 상승하는 동안 4%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주식형 펀드의 성과에 실망하는 투자자는 김부장만이 아니다.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4월4일을 기준으로 운용 규모 10억원 이상 주식형 펀드 2천1백71개의 올해 평균 수익률은 11.68%였다. 이것은 코스피지수 상승률에 못 미치는 성적표이다. 수익률 상위에 있는 펀드의 수익률은 30%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절반 이상은 코스피 상승률을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이다. 이처럼 주식형  펀드의 성과가 들쭉날쭉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잘나가는’ 삼성전자 때문이다. 최근 증권업계에서는 ‘주식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가 아닌 주식으로 나뉜다’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의 독주가 이슈이다.

삼성전자 주가, 1백35만원까지 기록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 4월4일 장중 한때 사상 최고가인 1백35만원까지 뛰어올랐다. 지난해 미국 신용등급 하락과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로 코스피가 붕괴될 당시 67만원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해 7개월여 만에 두 배로 상승했다. 올해 들어서도 삼성전자는 코스피 상승률의 두 배가 넘는 28%가 올랐다. 삼성전자가 초강세를 이어가는 배경은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24조원가량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16조2천4백97억원에 비해 48%나 늘어나는 액수이다.

미국 애플과 세계 1위 자리 경쟁을 벌일 정도로 스마트폰에서 선전하는 데다 전체 시장의 46%를 차지하는 D램에서도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세계 메모리반도체 3위 기업인 일본 엘피다가 지난 2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도 삼성전자에게는 호재이다. 엘피다의 매각과 구조조정으로 D램 공급 물량이 감소해 D램 가격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타이완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DDR2 1Gb(128Mx8) 800MHz 제품 가격은 1.19달러에서 1.31달러까지 올랐다. 오승훈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5조1천억원에 달할 것이다. 연간 영업이익도 지난해 말 예상치에 비해 3조원 이상 상향된 24조원에 육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증권사들은 앞다투어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2백만원으로 제시했고, 국내 대형 증권사들도 1백60만~1백70만원으로 높였다. 최도연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판매 호조와 모바일 D램, 낸드(NAND),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아몰레드(AMOLED) 등의 부문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춰 선순환 구조가 강화되었다. 삼성전자의 안정적 수익 창출은 지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강한 상승세와 장밋빛 전망에도 다수의 투자자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만 오르다 보니 시장 참여자 간 체감 온도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삼성전자를 제외한 코스피지수를 산정한 결과 1916으로 추정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코스피지수보다 100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증권사 PB센터 관계자는 “코스피 2000 시대가 열렸지만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투자자들의 증시 체감 지수는 여전히 낮다. 중·소형주들을 보유하고 있는 많은 투자자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를 얼마나 편입했나에 따라 ‘희비’

주주총회장에 입장하는 삼성전자 주주들. ⓒ 연합뉴스
매일 수익률 게임을 벌여야 하는 펀드매니저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제도상으로 펀드에 한 종목을 최대 10%까지만 담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예외로 시가총액 비중까지 담을 수 있지만 삼성전자의 수익률을 100% 따라가기는 힘들다. 최근 삼성전자의 주가 급등으로 유가 증권시장 내 시가총액 비중은 16.5%(보통주 기준)에 달한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를 얼마나 펀드에 편입했는가에 따라 수익률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상장지수 펀드(ETF)는 한 종목을 최대 30%까지 담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삼성그룹주’ ETF 또는 ‘IT 반도체’ ETF는 연초 이후 18~19%의 성과를 거두어 수익률 상위권을 차지했다. 물론 이들 또한 삼성전자 상승률과는 격차가 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의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맞지만 단기적으로 많이 올라 사기가 부담스럽다”라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깨져도 삼성전자를 사고 깨져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수익률이 저조할 경우 담당 펀드매니저는 투자자와 회사 경영진에 해명을 해야 한다. 이때 삼성전자의 비중이 낮으면 더 많은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지난 1~2월 삼성전자 주식 3천5백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순매도 금액 1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3월 이후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

한편,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경계론도 머리를 들고 있다. 지난해 투자자문사의 자문형 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이 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다. 그러다 증시가 급락세로 돌아서자 이는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던 것처럼 삼성전자로의 과도한 쏠림은 주가 조정 때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