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일하고 싶은 자, 견고한 ‘정년’의 벽 넘을 수 있을까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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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50~60대가 많은 요즘, 55세에 은퇴하는 것은 인력 자원의 낭비라며 적정 정년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의학 및 스포츠과학이 발달하면서 스포츠 선수들의 은퇴 시기도 늦춰지고 있는 이&

ⓒ 시사저널 전영기
최근 30대 중반의 축구 선수 안정환과 40대 초반의 야구 선수 이종범의 은퇴가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라는 점에서 은퇴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과거에 비해 확실히 늘어난 선수 수명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대다수 스포츠는 격렬한 근육 사용과 신체 접촉을 수반하기 때문에 신체의 능력이 극대화되었을 때를 정점으로 본다. 그래서 20세기에는 대다수 직업 스포츠인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시기는 20대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30대에도 전성기를 누리는 스포츠 스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의학 및 스포츠과학의 발달과 함께 사람 몸을 관리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선수 수명을 늘려준 것이다.

‘선수의 몸 관리’라는 집약적인 첨단 기술의 발전 덕에 일반인의 건강 관리라는 ‘범용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급격하게 산업화에 성공한 우리 사회도 ‘건강한 젊은 노인’의 급증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1950년대 말~1960년대 중반 출생자들이 은퇴를 시작했지만 이들을 맞이할 연금 등의 사회적인 안전망도 부족한 데다, 이들은 계속 일하기를 원하지만 사회에서는 60세 이전의 은퇴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의 노인 기준이었던 ‘60세·환갑’에 어떤 의미 부여도 하지 못한 채 강요된 은퇴에 당황하고 있다. 60세가 되던 지난해 7급 공무원에서 은퇴한 박성환씨(가명)는 퇴직 뒤 석 달 동안 놀다가 아파트 경비로 취직했다. 그는 “24시간 맞교대라 일이 고되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직까지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다. 무작정 연금만 바라보고 살기도 팍팍하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직업의 세계에서 ‘환갑=60’이라는 숫자 경계선은 아직도 중요하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그 나이에서 경제 활동의 확인 사살을 당하기 때문이다. 정년이 가장 너그러운 하급 공무원의 정년도 60세이고, 일반 사기업의 경우 평균 정년 퇴직 연령은 55~58세 사이이다. 대기업의 경우 50대 초반에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직에 오르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임원’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는 진담 같은 농담이 통하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올해 대기업 S사에서 임원 승진을 한 김 아무개씨(51)도 “내년부터는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욕심 같아서는 5년 정도는 더 있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라고 속내를 전했다.

선진국, 사회적 합의 따라 정년 연장

일반 직장인의 대다수는 자신이 ‘조기 강판’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의 ‘2011년 근로자의 퇴직연금에 대한 인식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을 기준으로 근로자들이 예상하는 평균 은퇴 연령은 58.6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7년 조사에서 56.3세로 나타낸 것에 비해서는 약간 늘어난 수치이다. 하지만 근로자들이 희망하는 은퇴 연령은 2007년 조사에서 평균 63세였다. 사람들이 대부분 더 일할 수 있음에도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보다 고령화 시대에 먼저 접어든 선진국에서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년 연장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향후 25년 동안 정년을 68세로 늘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고, 독일은 67세 정년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5년 더 긴 65세 정년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기업에 이어 공무원도 60세 정년 퇴직 후 희망자에 대해 65세까지 100% 재고용을 의무화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65세까지 재고용 의무화를 결정한 것은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이 현재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60세에 퇴직했다가는 5년 동안 외부 현금 없이 생존해야 하는 ‘연금 공백기’를 맞이하기에 그 불일치를 막으려고 재고용 의무화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일본보다 준비가 한참 안 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조기 고갈을 우려해 2013년부터 5년마다 1년씩 연금 지급 개시를 늦춰 1969년생은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연금 수령은 65세로 미뤄놓았지만 대다수 직장인은 60세 이전에 직장에서 밀려난다. 그 사이의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나 국회에서 ‘60세 정년’을 법으로 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60세 정년 의무화’는 이번 19대 국회의원 회기 내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공약으로 ‘정년 60세 의무화’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임금 피크제나 정년 연장 등 기업의 ‘자율적인 정년 연장’을 독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2006년 도입된 임금 피크제가 지난해부터 가속도가 붙고 있다. 포스코나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은 물론 유한양행·매일유업·㈜동양고속운수·하나투어 같은 중견 기업에서도 임금 피크제와 정년 연장을 시행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주는 대신 임금을 깍는 임금 피크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2년 연장하는 대신 56세부터 임금을 20% 깎는다. 매일유업은 정년의 연장이 아닌 재고용을 통해 2년간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임금은 피크 임금에서 30%를 깎아 주고 있다. 정년을 가장 파격적으로 늘린 회사는 하나투어이다.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년을 55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대신 51세부터 근로 시간과 임금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회사의 부담과 근로자의 일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올해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LIG손해보험의 경우 정년을 57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은 54세부터 깎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깎이는 임금 총액과 2년 동안 더 받을 수 있는 임금 총액을 비교해보아야겠지만 직장인 의료보험 등 4대 보험의 우산을 계속 쓸 수 있고 자녀 학자금 지원 등 복지 혜택을 2년간 더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임금 피크제는 55세의 가장에게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대졸 사무직의 경우에는 정년 연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임원의 경우 정년 연장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일부 회사에서는 정년 연장을 생산직이나 비관리직에 한해 적용시키고 있기도 하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년 연장을 실시하고 있는 포스코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대졸 사무직도 사실상 58세까지는 정년이 보장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사회적 합의이다. 특히 기업에서는 비용 부담을 들어 법제화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50대가 일터에서 물러나지 않는 바람에 20대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반대도 덧붙여진다. 때문에 국회에서 실제 법제화되기까지는 재계와 노동계의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28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제1차 고령사회 인력 정책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최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정년을 연장해 고령 인력의 공급을 늘린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청년 실업을 심화시키거나, 노동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분사와 계약직 확산 등 고용의 유동성을 확대하는 것을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해온 재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부이다.   

일단 자율적으로 임금 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 쪽의 반응은 좋다. 지난해부터 전 근로자를 대상으로 임금 피크제와 정년 연장제를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는 보통 매해 3백~4백명의 정년 퇴직자가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정년 퇴직자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정년 연장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포스코 쪽에서는 “56세인 정년을 58세로 연장하고 결격 사유가 없으면 2년 더 재고용을 하는데, 직원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라고 밝혔다.

임금 피크제 도입하는 기업 급증하는 추세

고용노동부의 임금 피크제 담당 박진수 주무관은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는 사업장 수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만 3천명 정도가 혜택을 받았다. 사업장 수로는 중소기업이 많고, 혜택을 보는 근로자 수를 따지면 대기업이 더 많다. 올해는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방안을 도입하려 한다. 중소기업에서 임금 피크제가 활성화되도록 하기 위해 임금 피크제 지원 요건도 많이 완화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나지 않을까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스포츠의학 수석연구원인 윤성원 박사는 “일반인의 경우 체력 조건보다는 건강 관리가 더 중요하다. 요즘은 관리를 잘해 건강 척도가 40~50대와 별 차이 없는 60대도 많다”라고 전했다. 그는 “특별한 신체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운동선수의 전성기는 신체 능력이 최고조에 오른 20대가 절정기이다. 프로스포츠 선수는 30대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이는 관리를 통해 몸 기능을 최대한 유지시키고 경험과 노련미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45세, 여성은 55세가 넘으면 갱년기라고 보지만 그 이후에도 관리를 통해서 얼마든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윤박사는 “갱년기에 들어가면 건강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내장 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 여성은 폐경기 이후 우울증이나 불안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비만해지거나 살도 빠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일반 직업인에게는 특별한 체력이 필요하지 않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이 장수한다’는 말이 맞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건강을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건강을 지킨 사람은 일할 수 있다. 요즘은 건강한 50~60대가 많다. 이들이 55세에 은퇴하는 것은 인력 자원의 낭비이다. 적정 정년 연령을 높여야 할 때가 왔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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