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에서 주저앉은 ‘패장’들의 다음 행보는?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4.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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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홍준표·권영세·정동영 등, 칩거 대신 대선 국면에서 나름의 역할 찾아나설 듯

왼쪽부터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홍사덕·홍준표·권영세·심대평·정동영·천정배 후보.

전국 70여 곳에서 초박빙의 접전이 펼쳐졌던 4·11 총선에서 낙마한 거물급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다. 예전에 낙선한 이후 크게 낙담하며 대부분 ‘조용히’ 지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이들의 정치 행보가 상당히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8개월 후에 12월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대선에 앞서 당장은 여야 공히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하고, 7월께에는 대선 후보 당내 경선도 치러야 한다. 비록 금배지를 달지는 못했지만, 앞으로의 대형 정치 일정 속에서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낙선 이후에도 정치 거물들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지는 까닭이 그것이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서 출사표를 던졌던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는 최다선인 7선의 꿈을 접어야 했다. 야권의 대선 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호남 지역구에서 옮겨온 정세균 민주당 후보에게 5천여 표 차이로 패한 탓이다. 자신의 텃밭인 대구를 떠나 종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국회 입성에는 실패했다. 당 안팎에서는 “친박계(친박근혜계)의 좌장 격인 홍후보가 향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작업에 전념할 것이다”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심대평, 대표직 사퇴 후 거취 고심 중

‘서울 동북부 라인을 지켜달라’는 당의 특명을 받고 전략 공천된 관록의 4선 의원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는 서울 동대문 을에서 민병두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6천8백여 표 차이로 크게 패했다. 동대문 을에서만 4선을 했고, 당 대표까지 지낸 그는 트위터를 통해 “30년 공직 생활을 마감합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비아냥 받지 않고 공약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홍의원은 당장 정계에서 은퇴하기보다는 대선 국면에서 모종의 역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의 신주류로 공천 실무를 주도했던 3선의 권영세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서울 영등포 을에서 MBC 앵커 출신인 정치 새내기 신경민 민주당 후보에게 5.2%포인트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당초 권총장은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민주당이 신후보를 전략 공천하면서 총선 막판까지 혼전을 벌여야 했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이방호 사무총장이 낙마한 데 이어 이번에도 권총장이 낙선하자, 당 일각에서는 “‘사무총장 저주’가 걸렸다”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권총장의 한 측근은 “권총장에 대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신임이 각별하기 때문에 향후 대선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로서는 박위원장의 의중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조만간 두 사람이 만나 권총장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처음 선거구로 결정된 정부 직할의 특별자치시인 세종시에서 충청권의 자존심을 걸고 민주당 이해찬 후보와 맞붙은 자유선진당 심대평 후보도 6천5백여 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 역시 다섯 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회창 전 대표와의 당내 분란이 커지면서 충청권 민심도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심후보는 투표 결과가 나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당 대표직을 전격 사퇴했다. 그는 “국민들께 신뢰받고 선택받을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해 당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심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사적인 공천을 했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향후에도 재기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자유선진당의 한 당직자는 “심 전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한 후 자신의 거취 문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6선에 성공한 이인제 후보의 ‘역할론’이 부상하는 한편 새누리당과의 통합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FTA 저격수’를 자임하며 ‘여당의 아성’인 서울 강남 을에 출사표를 던졌던 정동영 민주당 후보도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한·미 FTA 협상을 이끌며 ‘FTA 검투사’로 불린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와 ‘한·미 FTA 대전’을 치렀으나, 20.2%포인트의 큰 표 차이로 ‘강남 3구’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했다. 정후보의 한 측근은 “아직까지 거취 문제가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런데 새로운 당 지도부 구성 과정에서 당권에 도전할 것인지, 대선에 재출마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천정배, 제2 지역구 송파 을에서 ‘와신상담’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천정배 민주당 후보도 ‘강남 벨트’의 하나인 서울 송파 을에 출마했으나 유일호 새누리당 후보에게 3.9%포인트 차이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낙선 이후 “전통적으로 야당 강세 지역이었던 경기 안산 단원 갑에서 4선을 했던 그가 자신의 텃밭에서 출마했다면 무난히 당선되었을 것이다”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안산을 떠나 고행 길에 올랐다. 게다가 19대 국회 입성도 좌절됨에 따라 또 다른 정치 행보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천후보의 한 측근은 “낙선한 후에도 송파 을 지역의 행사를 꼼꼼히 챙기고 있다. (총선 이틀 후인) 4월13일 오전에는 ‘가락시장 임대 상인 상권 수호 결의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제2의 지역구’인 송파 을에 둥지를 틀고 와신상담하겠다는 천후보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낙선자는 아니지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은 김무성 의원과 관련해서도 관측이 무성하다. 김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접고 공천에 불복해 출마하려는 이들에 대한 설득에 나섬으로써 새누리당의 연쇄 탈당 행렬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그와 박근혜 위원장의 향후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지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차기 당 대표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대선 국면에서 부산 지역 선거 대책과 관련해 김의원의 활동 공간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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