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안철수와 민주당
  • 이철희│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
  • 승인 2012.04.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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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패한 민주당, ‘안철수 효과’에 더 전전긍긍…“입당 요구 앞서 당부터 추스려라” 지적 많아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총선 패배를 책임지고 사퇴한 가운데 문성근 최고위원(맨 왼쪽)이 대표 대행을 맡아 지난 4월20일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못났다. 총선에서 분명히 졌음에도, 아니라고 우기는 민주통합당이 그렇다. ‘100일 가뭄’이라 해도 대부분 어느 지역에서는 조금이나마 비가 내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뭄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일부 희망을 발견할 대목이 있더라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이것은 더도, 덜도 아닌 팩트(fact)이다. 와신(臥薪)이든 상담(嘗膽)이든 패배를 처절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다음의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안 졌다고 우기는 것은 참 못난 모습이다.

한심하다. 민주당은 지기도 힘든 선거에서 졌다. 그런데도 패배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느긋하다. 선거 패배 때문이 아니라, 대표가 마치 신상 문제로 사퇴한 것처럼 안일하다. 한명숙 대표가 사퇴하자 권한대행으로 갈지, 비상대책위로 갈지를 놓고 며칠 승강이를 벌였다. 그러다가 내놓은 답이 ‘3주 권한대행’에 ‘한 달 비대위’라는 절충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욱 못나고 한심한 것은 지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더러 당장 민주당으로 들어오라고 강박하는 것이다. 웃긴다. 장삼이사(張三李四)도 알고, 필부필부(匹夫匹婦)도 아는 사실이 있다. 지금 안원장이 민주당에 들어가면 금방 고사당하고 만다는 점이다. “단기필마로 민주당에 들어가서 무슨 수로 후보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나”라는 반문이 이어진다. 그런 마당에 지금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꼼수라는 것이다. 들어오면 좋고, 안 들어오면 진정성이나 헌신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안철수 원장이 이번 총선에서 진영 논리를 거부하면서 독자적으로 움직인 것은 민주당에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민주당이 그렇지 않아도 공천이다 뭐다 해서 미움을 받던 터에 ‘예쁜’ 안철수가 밖에서만 움직이니 민주당에게 마음을 주기란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민주당이 속상한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들어오라고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당분간 안철수라는 이름은 놓아두어라”

민주당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김한길 당선인(외쪽)과 박지원 당선인. ⓒ 연합뉴스
지금 ‘안철수 현상’은 개인 안철수의 인기가 아니다. 하나의 상징이다. 따라서 향후 민주당이 고민할 것은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안원장이 지금 덜컥 민주당으로 들어가면 안철수 현상은 포말처럼 흩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안원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여전히 상당수가 그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의 지지 기반에는 무당파·부동층의 비중이 적지 않다. 이런 판이니 안원장이 지금 민주당에 들어간다고 해도 안철수 현상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니 민주당의 입장에서도 그런 모양새는 실익이 없는 셈이다.

순전히 민주당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민주당이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당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무너진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당대회를 밋밋하게 치르지 말고 대중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그간 실종되었던 혁신의 동력이 생겨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선 후보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 하면 누구라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 필적할 수준의 지지율을 보이기 힘들기 때문에 손해라는 것이다.

또 하나, 민주당은 그동안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 등을 외쳤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를 쟁점화하지 못했다. 그럴 의지도 없었고, 그만한 능력도 없었다. 선거에서 당이 지향하는 바를 꺼내놓고 검증받아야 나중에 힘 있게 밀고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그 어떤 정책도 이슈화해서 여야의 차이를 드러내는 쟁점으로 만들지 못했다. 역대 최악의 무능으로 비판받는 요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민주당이 주력해야 할 것은 이런 정책에 대한 토론이고, 이를 향후 대선 국면까지 주 쟁점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총선 직후 어젠다 세팅에서 실패하면 민주당의 대선 전망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은 당분간 ‘안철수’라는 이름 석자를 내버려두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안원장이 장 바깥에서 넓게 움직이면서 ‘박근혜 대세론’을 견제하고, 부동층이나 무당층 그리고 중도를 담아내는 큰 그릇으로 역할을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은 따로 가는 것이 ‘윈윈’ 전략

이번 총선 결과에서 여야 간 대선 후보 경쟁을 시뮬레이션해보면 ‘50 대 50’이다. 여권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거의 48~49를 차지했다. 반면에 야권은 안철수 원장이 약 3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 나머지를 놓고 여러 후보가 각축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안원장을 당 안에 가두려 할 것이 아니라 당을 혁신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만 민주당 내 ‘잠룡’들이 나머지 20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아니라, 30이나 40을 넘어, 50~60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상승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서둘러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면 판을 키우지 못한 채 과열과 비방만 난무하게 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야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원장에게 가능한 대권 시나리오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박원순’ 모델이다. 민주당이 대선 후보를 뽑고 나면, 그 정당 후보와 ‘시민 후보’ 안철수 원장이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통합진보당 후보가 참가할 수도 있으나, 큰 변수는 아니다. 마지막 하나는 시민 후보 콘셉트로 나서되, 3자 대결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완주하는 것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3자 대결에서 안원장이 이길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것은 민주당 경선에 참가하는 것과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경우이다. 어느 경우이든 민주당 내에서 ‘안철수’를 호명하고, 그를 지지할 세력이 만들어져야 승부를 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원장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안에서 경쟁하기보다는 밖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원장으로서는 시급하게 민주당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셈이다.

즉, 민주당에서 선의를 가지고 안원장에게 입당을 권유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뜻이 된다. 안원장은 ‘만병통치약’도, 무조건 이기는 절대 강자도 아니다. 그를 대선 후보로 내세워도 지금 이대로는 이길 수 없으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민주당이 약하고, 안철수 후보도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당은 야당대로, 안원장은 안원장대로 약점을 보완하고 강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서로 윈윈 전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의 고질병은 한 방에 난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차근차근 착실하게 가야 한다. 급할수록 쉬어 가라고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빨리빨리’가 아니라 만만디 정신이다”라는 한 재야 원로의 충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대목이다. 당이라는 배가 튼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선장이라도 비바람, 눈보라, 파도를 이겨내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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