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차이가 한·일 프로야구를 가른다
  • 정철우│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2.04.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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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그에서 부진했던 한국 선수들, 국내 리그 돌아와 ‘승승장구’…양국 수준 비교 논쟁 재점화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승엽과 김태균, 이범호 등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한·일 리그 차이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야구계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바로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수준 차이는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야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나 올림픽에서 일본을 연파하며 국민적 자긍심을 높였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일본 야구계도 이제는 한국 야구의 발전상과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 연수를 다녀온 지도자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톱 클래스 선수의 기량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이 100% 옳은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국제 대회에서는 분명히 뒤질 것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본에 진출한 우리 선수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범호의 사례가 가장 극단적이다. 이범호는 지난 2010년 일본 소프트뱅크에 입단했다. 그해 이범호의 성적은 타율 2할2푼6리, 4홈런, 8타점. 3루수로서 수비 문제가 제기되며 고작 48경기에 출장했을 뿐이다. 그러나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KIA 유니폼을 입은 이범호는 1백1경기에 출장해 17개의 홈런과 77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타율도 3할2리로 올랐다. 시즌 막판, 햄스트링 부상이 아니었다면 리그 최고의 해결사로 최고의 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이범호가 소프트뱅크 내부의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라는 설도 있었다. 이범호를 영입한 측이 파워게임에서 밀리며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여준 실력 정도였다면 아무리 미워도 그를 먼저 썼을 것이다.

같은 해 일본에 진출한 김태균은 21개의 홈런과 92개의 타점으로 리그 정상권 성적을 냈다. 그러나 2할6푼8리에 그친 타율과 후반기의 장타력 실종은 그의 설자리를 점차 좁아들게 만들었다. (2012시즌 초반 김태균의 타율은 5할에 육박하고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일본에 진출한 한국 타자 중 첫해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3할 타자도 이승엽이 지난 2006년 기록한 것이 유일하다.

야구 천재라고 불렸던 이종범도, 최고의 배드볼 히터(나쁜 공도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타자)라던 이병규도 결국 일본에서는 3할 타자가 되지 못했다.

‘단순히 기량이 모자라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외국인 선수가, 특히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빠르게 적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진출했던 선수 대다수는 첫해 부진에 대해 “자만했기 때문이다”라는 자체 분석을 하고 있다. 한국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여유를 만들고, 그 작은 여유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 진출한 한국 선수, 자만·부담·부상으로 무너져

김태균
많은 돈을 받고 간 용병으로서의 말 못할 고민도 클 것이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투수라면 무조건 10승. 타자라면 3할에 20홈런이 기본이다. 초반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외로움은 극대화된다. 특히 타자 용병은 늘 홈런에 대한 부담을 지고 갈 수밖에 없다. 안타는 빗맞았을 때도 나올 수 있지만, 홈런은 모든 조건이 완벽할 때 나오는 것이다. 한국 타자들이 투수에 비해 일본에서 성공하는 비율이 떨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한국 선수라는 특수성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소이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 시절 요미우리 에이스였던 우에하라와의 대결에서 3타수 무안타(2삼진)를 당한 바 있다. 당시 지바 롯데 코치였던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은 “이승엽을 반드시 잡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투구였다. 그러나 이승엽에게 너무 힘을 쏟다 보니 다른 타자에게는 안타를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를 자초했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국이나 중남미권 선수와 달리 아시아권 선수는 일본 문화에 적응하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 선수의 경우 일반적인 외국인 선수와는 다른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 그 괴리는 생각보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이종범과 이승엽 등은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이종범은 한창 잘나가던 첫해, 가와지리의 볼에 골절상을 당한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승엽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2006년 이후 손가락 부상 탓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둘 모두 부상을 참고 빠르게 복귀했다가 문제가 더 커진 바 있다.

넓은 저변과 기본기가 만든 차이가 리그의 실력 차이로

이승엽
그러나 외부적 요인만으로 이들의 부진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리그의 수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일본 야구가 우리 야구보다 잘 던지고 잘 친다, 혹은 일본 선수의 수준이 더 높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김태균은 지바 롯데 시절에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은 야구를 하는 데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야구는 정말 힘들다. 매일 등판하는 투수의 기량이 일정하다. 어디 한 군데 만만한 곳이 없다. 페이스가 좋을 때는 상관없지만, 슬럼프 때는 탈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일본 야구의 무서운 면이 거기에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1, 2, 3선발과 4, 5선발의 기량 차이가 큰 편이다. 1, 2번은 일본 투수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기량 차이가 리그의 수준 차이를 만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김태균은 “모든 투수가 볼 끝이 좋고 확실한 주무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제구력이 좋다. 만만하게 가운데 몰리는 경우가 드물다. 레벨 차이는 있어도 실제 부딪혔을 때 차이를 느끼기 힘든 이유이다”라고 설명했다.

타자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슬럼프에 빠져 있어도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투수를 상대로 안타 한두 개라도 쳐두면 심리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만큼 부진한 기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수준급 투수와 상대하게 되면 심리적 위축감이 부진의 장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결국 저변의 차이가 수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2개 대회 연속 WBC 대표팀을 이끈 김인식 전 감독은 “대표팀끼리 붙으면 우리도 해볼 만하다. 하지만 일본은 저런 대표팀을 2, 3개 더 만들 수 있고 미국은 5개도 가능하다. 그 차이가 결국 리그의 실력 차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본기 역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연수 중인 장종훈 코치는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 2군은 끊임없이 선수에게 기본기를 강조한다. 공 잡는 법과 송구, 중계 플레이에 대한 훈련을 계속 반복한다. 방망이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수비 하나만은 기가 막힌 선수가 즐비하다. 이런 선수가 경기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저변의 문제이다. 현재 소프트뱅크 3군은 한국 퓨처스리그(2군 리그)에 참가해 번외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들은 빼어나지는 않지만 안정된 기본기를 바탕으로 연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우리 야구는 기본을 갖추기보다는 당장 실전용 기술을 익히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다 보니 반쪽 선수들이 대거 양성되고, 기본에서는 자꾸 멀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난 2010년 한화 이글스 종합 코치를 역임한 다카시로 오릭스 수비 코치는 한·일 양국의 성 축성 방식으로 두 나라 야구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성을 보면 큰 돌을 붙여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성은 비슷한 듯 다르다. 일본 성 역시 큰 돌을 쓰지만 그 사이는 작은 돌들을 넣어 막아두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큼직한 흐름에서는 양국이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은 부분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일본 야구이다. 크게 보면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야구도 좀 더 세밀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범호
한국 야구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프로야구가 활성화된 한·미·일 3국 중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오릭스에서 연수를 받은 노석기 LG 전력분석팀 과장은 “일본 야구의 수준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약점도 있다. 야구가 정체되어 있다. 관중 수도 늘 비슷하다. 우리처럼 비약적으로 늘어나며 성장하는 일은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 장점을 잘 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관중 증가세가 답보 상태여서 좌석 점유율도 60%대로, 우리나라의 70%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 야구가 외연 확대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구장을 늘리고 구단도 새롭게 창단해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저변도 확대할 수 있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살아나며 해체 릴레이를 벌이던 중학 야구에 창단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구단이 늘어나야 저변도 늘어난다.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커져야 학부모가 야구도 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찬스가 올지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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