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용 신차’가 해외로 새고 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19: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반인까지 동원해 1백84대 ‘밀수출’해온 일당 검거…점조직으로 움직이며 불법·탈세 저질러

한·미 FTA가 발효된 지 하루 지난 3월16일 평택항 제3 부두의 기아자동차 수출 전용 부두에 자동차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내수용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다. 훔친 차나 중고차를 수출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신차를 수출한다. 일부 중고차 수출업자에 국한되지 않고 브로커와 일반인까지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불법, 편법, 탈세가 행해진다.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서 힘들게 쌓은 국산 차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실추될 수 있는 문제점까지 대두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해외 시장 질서 문란…국산 차 이미지 실추

몇 년 전만 해도 국산 자동차의 수출 판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수출하는 방식과 제3의 무역업체가 외국에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즉, 직수출이든 병행 수출이든 한국산 자동차를 많이 수출하면 미덕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부 수출업자들이 중고차가 아닌 신차를 수출하면서, 외국 현지에 있는 공식 판매 대리점들이 한국의 자동차 제조사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기본 사양의 쏘나타는 2천5백만원, 최고 옵션을 단 쏘나타가 2천만원이라면 소비자의 선택은 자명하다. 정식 수입된 차량이든 병행 수입된 것이든 소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같은 신차라면 싸고 고급 사양인 차를 고르게 마련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같은 모델이라도 수출용과 내수용 차량은 사양(옵션)에서 차이가 있다. 내수용 차의 사양이 다양하다. 같은 차인데, 더 고급스러운 사양의 차가 외국에서 싸게 거래되면 현지에 공식적으로 수출한 국산 차는 팔리지 않는다. 무분별한 신차 수출은 해외 시장 질서를 문란하게 만든다. 내수용 신차를 수출하는 것은 골치 아픈 문제이기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내수용 신차의 수출을 금지했다. 외국의 공식 대리점에 대한 보호 차원이기도 하지만 국산 차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이다. 신차를 수출하는 몇몇 업체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관리하기 시작했고, 한 개인이 6개월 이내에 구매할 수 있는 차량 대수를 한 대로 제한했다. 회사는 영업직원들에게 차를 살 사람의 신분을 확인한 후 차를 판매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그러나 내수용 신차는 여전히 외국으로 빼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19일 국산 차 1백84대(시가 50억원 상당)를 베트남, 필리핀 등지로 밀수출한 일당이 세관과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2010년 10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차량을 훔치거나 신차를 사들여 외국 수입업자에게 팔아넘긴 혐의로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차를 할부로 구매하도록 유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차량을 수집했다. 이성현 인천본부세관 조사계장은 “의심스러운 차량의 차대번호, 등록원부를 확인해보니 내수용 신차였다. 과거에는 중고차 수출이 많았지만, 지금은 신차 밀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차량 밀수출 범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차량 수출업체에 대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내수 가격의 1.5~2.5배로 거래

내수용 신차가 어떻게 수출용으로 둔갑할까? 그 배경에는 치밀한 계획이 똬리를 틀고 있다. 여러 명이 모여 밀수출 계획을 짜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인다. 정식으로 등록한 중고차 수출업자가 있고, 여기에 물건(차량)을 대주는 조직이 여럿 있다. 모집책, 자금 관리책, 운송책, 통관책 등이 외국에서 수입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수시로 조직을 구성해 활동한다.

모집책은 전단, 명함, 휴대전화 문자 등을 통해 일반인을 모집한다. 수출 차량 딜러 또는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모집한 일반인을 신차 구입에 투입한다. 현대차 영업직원은 “그들은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에 명함을 뿌린다. 신차를 구입하면 고액의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 꼬임에 빠진다”라고 귀띔했다.

한 수출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보았다. 업체 직원은 “차량 판매영업소에서 신차를 계약해오면 한 대당 1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사례비를 준다. 물론 차량 구입에 드는 계약금이나 보험료는 우리가 책임진다. 차 구입 후 한 달 이내에 명의 이전만 해주면 된다”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꺼림칙하면 하지 마라. 할 사람은 많다. 이미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신차를 사고 명의 이전하는 것이 무슨 불법인가. 우리는 정식으로 등록한 자동차 수출업체이다”라고 안심시켰다.

이들은 주민등록등본과 운전면허증 사본을 요구한다. 신차를 구입할 사람을 선별하기 위해서다.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하고 신용불량자도 가능하지만, 주민등록 말소자, 휴대전화가 끊어질 예정인 사람,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통장 개설이 불가능한 사람은 피한다. 신차 구입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다. 신원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위해 미리 개설해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은 후에는 신차를 사는 요령을 교육한다. 차를 사는 데에 무슨 교육이 필요할까 싶지만 자칫 영업직원이 수출하려는 의도를 알아채면 차 판매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차 구입법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면 대 면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전화 통화로만 지시한다.

교육 내용은 구체적이다. 우선 은행 통장을 개설하고 체크카드를 만들라고 한다. 통장은 차량 구입에 필요한 계약금을 주고받는 용도이다. 체크카드는 계약금을 지불하는 수단이다. 현금 뭉치를 들고 차를 사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입할 차량의 모델·사양·색상까지 주문한다. 외국 현지 사정에 따라 유행하는 차량이 달라지는데, 요즘은 스타렉스와 싼타페 등이 인기이다.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차량도 다르다. 유럽과 중동에서는 투싼·스포티지와 같은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러시아에서는 제네시스와 같은 고급 세단,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스타렉스와 포터 등 소형 상용차가 인기 있다. 신용이 좋은 사람에게는 최고급 사양의 차를 사게 하고, 신용불량자에게는 중간급 옵션 차를 사라고 주문한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이 고급 사양의 차를 사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 영업직원과의 대화 방법까지 일러준다. 예를 들어, 차량을 구입하는 이유를 물어오면 건설 공사 일을 하는데 인부나 밥을 실어날라야 한다고 대답하라고 알려준다. 또 영업사원이 신분 확인을 요구하면 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의 재직증명서나 사업자등록증을 마련해준다. 차값은 깎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만큼을 부수입으로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값을 깎으려는 소비자의 자연스런 심리를 영업사원의 의심을 피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일반인은 체크카드로 계약금을 치르고, 할부금은 할부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신차 구입을 마무리한다.

며칠 후 차량이 출고되면, 일반인은 이 사실을 수출업자에게 알린다. 수출업자는 영업사원으로부터 보험사를 소개받으라고 지시한다. 역시 의심을 피하는 방법이다. 보험사 견적서를 받아 수출업자에게 넘겨주면, 수출업자가 보험에 가입한 후 보험증서와 차량 취득·등록 비용을 일반인에게 준다. 일반인은 해당 기관에서 차를 등록한다. 이후 한 달 이내에 운송책이 차를 인수해간다. 일반인이 수출업자에게 명의 이전을 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중고차를 사고파는 셈이다. 일반인은 차를 넘겨주고 사례비를 받는 것으로 신차 구입은 일단락된다.

이렇게 해서 수출업자의 손에 들어온 신차는 통관 절차를 거친다. 차를 수출하려면 차량등록말소증을 세관에 제출해야 한다. 대출 할부금이 있는 차량은 등록 말소가 되지 않는다. 통관책은 폐차장이나 폐업한 렌터카에서 정상적으로 등록이 말소된 차량의 서류를 대신 세관에 제출한다. 실제로는 신차를 빼돌리는 것이지만, 서류상으로는 하자가 없는 셈이다. 굴착기와 같은 중장비도 외국으로 빼돌리는데, 이때 세관에 건설기계등록말소증을 제출해야 하지만 이 서류가 필요 없는 굴착기 부품으로 세관에 신고하기도 한다. 세관에서 일일이 수출 화물용 컨테이너를 열어보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수법이다.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수출업자 윤 아무개씨는 “송품장, 차량등록말소증을 팩스로 세관에 보내면 30분 이내에 수출 면허(신고필증)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세관의 신고필증을 발급받음과 동시에 내수용 신차가 수출용 차로 둔갑한다. 통관책이 신고필증을 선사(선박)에 넘기면, 내수용 차는 배에 실려 수출길에 오른다. 외국의 수입업자는 국내 수출업자에게 대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팔려나간 신차는 외국 현지에서 내수 가격보다 1.5~2.5배 비싸게 거래된다. 예를 들어 투싼 신차를 러시아에 팔면 99만5천 루블(3천7백여 만원)로 국내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1천만원 이상 비싸다. 수출업체는 국내 시장과 외국 시장의 시세 차익을 보면서도 현지 환율에 따른 환차익까지 챙긴다. 서류상으로는 중고차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관세 부담도 없다. 수출업자는 한 대당 3백만~5백만원의 이익을 남긴다.

판매원·금융사·제조사 모두 피해 입어

이들 조직은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수시로 사무실을 옮기거나 회사명을 바꾼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무실을 임대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신분을 숨긴다. 또, 드러난 행태만으로는 불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아서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충남경찰서의 한 형사는 “첩보를 받고 수사를 해도 물증이 없어 수사에 애를 먹는다. 그만큼 수법이 교묘해졌다. 최근 덜미를 잡은 조직도 경찰과 세관이 공동으로 1년 동안이나 추적했다”라고 말했다.

수출업자가 차값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서 할부금 대출을 받지 않는 사례도 있다. 이 차는 출고된 지 한 달도 안 되지만 정식으로 등록된 후 말소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차는 서류를 조작하지 않아도 중고차로 취급되어 수출될 수 있다. 세관이 의심스러운 차량의 차대번호와 등록원부 등을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대차의 한 영업직원은 “내수용 신차가 수출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판매사원이 차를 팔 때, 수출용으로 둔갑할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영업사원은 한 대라도 더 팔아야 수당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판 차가 수출된 사실이 드러나면, 수당과 실적을 회수당한다. 진술서와 경위서를 쓰고, 감봉 등의 징계도 받는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차를 팔고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업사원들 사이에는 차를 사려는 소비자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공무원, 교사, 은행원 등으로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근거가 없는 사람이 구입한 차가 수출된 사례가 있다. 심지어 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나 차를 팔았는데 그 차가 수출되어 20년 지기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수출업자인 줄 알고도 차를 판 것이 아니냐는 회사 동료의 의심은 영업직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이다.

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도 자신의 신분을 여과 없이 증명해야 하는 등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최근 신차를 사려고 영업소를 들렀다는 한 소비자는 “차 한 대 사려고 하는데, 직업이 뭐냐, 돈을 얼마나 버느냐, 집은 어디인데 왜 여기서 차를 사려고 하느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기분이 나빠졌다”라고 말했다.

할부금을 대출해준 금융사도 피해를 본다. 수출업자가 신차를 받으면서 할부금 대출을 떠안지 않으면 고스란히 차를 구매해준 일반인이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또 할부금 대출까지 수출업자가 인수받았더라도 잠적해버리면 찾을 도리가 없다. 한 영업사원은 “한번 출고된 차는 중고차가 되므로 신차 수출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자동차 제조사가 막는다고 해서 신차 수출이 줄어들겠는가.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가령 내수용 신차를 1년 또는 2년 이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업사원, 소비자, 금융사, 자동차 제조사 등이 보는 피해를 없앨 수 없다”라고 말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추출한 중고차는 28만9천여 대이다. 이 중에 신차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