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럭스토어에 꽂힌 유통 공룡들
  • 유현희│파이낸셜뉴스 생활과학부 기자 ()
  • 승인 2012.05.0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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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와 GS가 양분한 시장에 신세계도 뛰어들어…범삼성가 경쟁 구도의 한 축으로 보는 시각도

왼쪽은 CJ올리브영 매장. 오른쪽은 GS왓슨스 매장.

드럭스토어 시장이 뜨겁다. 유통 공룡인 CJ와 GS에 이어 신세계까지 드럭스토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8년간 CJ와 GS가 양분해왔던 시장은 신세계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홈쇼핑업계의 맞수이기도 한 CJ와 GS는 2004년부터 드럭스토어 시장에서 격돌하고 있다. GS가 1위를 지키고 있는 홈쇼핑과 달리 드럭스토어 시장에서는 CJ가 시장 규모의 3분의 2를 독식하고 있다. 결국 신세계의 드럭스토어 시장 진출은 범(汎) 삼성가 간의 경쟁 구도 형성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건강 기능 식품과 생활용품, 화장품을 한 매장에서 판매하는 드럭스토어 시장은 1999년 CJ올리브영의 설립과 함께 국내에 등장했다. 이후 2004년 GS리테일이 세계적인 드럭스토어업체인 A.S.왓슨과 제휴를 맺고 GS왓슨스를 설립하며 지난 8년간 CJ와 GS가 투톱 체제를 형성해왔다. 여기에 신세계가 ‘분스’를 론칭하며 경쟁에 합류했다.

중소 화장품업체 판로 개척에 ‘단비’

거대 유통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출하는 시장이지만 아직까지 국내 드럭스토어 시장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드럭스토어 시장 규모는 3천2백60억원이다. 유통 기업들의 분기 매출에도 못 미치는 3천억원대 시장에 이들이 뛰어든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브랜드숍(단일 브랜드 화장품만 판매하는 매장) 중심으로 재편되는 화장품 시장에서 드럭스토어의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 에이블씨앤씨의 ‘미샤’ 등 자체 브랜드 화장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숍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숍의 증가는 중소 화장품 제조사의 유통망 축소를 불러왔다. 화장품 전문점이라고 불리는, 여러 브랜드 제품을 함께 취급하는 매장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판로가 줄어들면서 매출액 5백억원 미만의 중소 화장품 기업들은 기로에 서게 된다. 자체 브랜드숍을 론칭하거나, 온라인몰 입점을 택한다 해도 이전 전문점 납품 때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의견이다. 이들에게 드럭스토어는 블루오션이다. 브랜드숍을 론칭하는 것보다 리스크는 줄이고 매장 임대료도 들지 않는 드럭스토어 입점은 판로에 목마른 이들에게 단비와 같다. 10조원에 달하는 화장품 시장에서 이들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가깝다. 시장 규모는 3천억원대에 불과하지만 3조원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 바로 유통 대기업들이 드럭스토어에 뛰어드는 진짜 이유이다. 실제로 2007년 8백68억원에 불과했던 드럭스토어 시장은 지난해 4년 만에 3배 이상 성장하기도 했다.

드럭스토어 시장 3분의 2는 올리브영 매출

지난 4월19일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에 ‘분스’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선점 효과도 대기업이 뛰어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시장에서나 통하는 것이겠지만 드럭스토어에서도 선점 효과는 나타난다. 1999년 가장 먼저 론칭한 CJ올리브영이 지난해 달성한 매출은 2천100억원. 이는 드럭스토어 전체 시장의 3분의 2에 달하는 금액이다. 올리브영은 2005년 2백8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2007년 5백억원으로 끌어올리며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매출로 증명했다.

화장품업계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아모레퍼시픽이 지난 2009년 CJ올리브영에서 철수했음에도 오히려 CJ올리브영은 그 이듬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화장품업계 1위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드럭스토어가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CJ올리브영은 독점 수입 브랜드를 늘리고 가맹 사업 진출을 통해 현재 58개의 가맹점까지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인 왓슨스와 손잡고 GS리테일이 론칭한 GS왓슨스 역시 매출이 급상승 중이다. CJ올리브영보다 5년 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론칭 첫해 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후 2007년 2백20억원, 2009년 4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역시 두 배 정도 성장한 7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로 비교하자면 아직까지 GS는 CJ의 적수가 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현재 GS와 CJ는 독점 수입 브랜드를 확대하면서 제품 차별화에 나섰고, 화장품과 건강 기능 식품 외에 음료수와 생활용품으로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며 드럭스토어가 아닌 뷰티앤헬스 스토어를 표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업계 판도 역시 또 한 번 ‘지각 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CJ와 신세계의 경쟁 구도이다. 세 곳의 드럭스토어 진출을 보는 유통업계의 시각은 분분하다. 대형 마트 규제로 이마트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것을 만회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가장 지배적이지만, 범삼성가의 균열 조짐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삼성가에서 분리된 신세계와 CJ에는 늘 ‘범삼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하듯 신세계와 CJ는 같은 유통업에 몸을 담았지만 경쟁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았다. 신세계의 주력 사업인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는 CJ가 진출하지 않았고, CJ의 영역 역시 신세계가 뛰어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드럭스토어는 CJ와 신세계라는 범삼성가의 유통 그룹이 보이지 않는 불가침 조약이 깨진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 CJ를 의식한 탓인지 신세계는 분스 1호점인 의정부점 개장을 결정하고도 협력사에조차 개장 전까지 브랜드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신세계측은 범삼성가의 대립 구도라는 분석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이다. 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로드숍이 아니라 백화점과 대형 마트 내에 고객 편의를 위한 몰인숍 개념으로 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 드럭스토어와의 마찰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업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CJ올리브영과 결별한 아모레퍼시픽의 입점을 다시 이끌어낸 곳이 드럭스토어 시장이다. 입점한 화장품 브랜드만 80종에 달하는 분스가 과연 백화점 내 한쪽에서만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업계를 중심으로 여전히 팽배한 상황이다. 새로운 시장에서 격돌한 유통 공룡들의 경쟁 구도에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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