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 삼형제, 앞서거니 뒤서거니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5.0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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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벤츠·아우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 ‘추월’…신차 인기몰이하며 50% 이상 점유


잘나가던 일본차들이 2009년 들어 몰락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한때 국내 시장 점유율 1위까지 올랐던 혼다와 렉서스가 5~6위권으로 밀려났다. 누군가의 악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재가 된다. 일본차가 삐걱거리자 독일차 삼형제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가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의 질주에는 거침이 없다.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을 보면 이 세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박은서 차장은 “최근 국내 수입차 시장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가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는 20여 개가 넘는 수입차 브랜드가 들어와 있다. 그중에서 오랜 시간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오며 내수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브랜드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뿐이다. 독일 프리미엄 삼총사는 한때 반짝했던 일본차들과 달리 오랫동안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왔다. 국내 시장에서 이들은 오묘한 위치에 있다. 성능이나 가격, 브랜드 위상 등은 누가 우위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지만 개성이 뚜렷해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다. 세 브랜드가 라이벌 같으면서도 라이벌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내수 시장에서 각자 맡은 배역을 충실히 이행하며 다양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BMW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항공기 엔진을 생산했다. ‘강함’과 ‘단단함’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온 BMW는 약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강한 차’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뒷좌석에 앉아 조용히 창밖 풍경을 즐기는 최고경영자(CEO)보다, 스스로 차를 몰고 도로를 매섭게 질주하고 싶어 하는 드라이버들이 주로 찾는다. 일부 슈퍼카 브랜드를 제외하면 ‘달리는 맛’ 부문에서 BMW를 따라올 차는 없다. 이 때문인지 선호하는 연령대도 낮다. 브랜드별로 선호하는 연령 분포를 살펴보면, 메르세데스벤츠는 30대부터 60대까지 고른 분포를 보이는 반면 BMW는 30~40대가 월등히 많고 50~60대로 갈수록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BMW 관계자는 “BMW의 운전석에서는 보닛(차량 앞덮개)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자에게 질주하는 역동성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BMW가 추구하는 철학이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BMW는 2009년부터 수입차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09년 15% 안팎이었던 점유율은 2010년 18%, 지난해에는 22%를 기록했다. 뒤따라오는 수입차와의 격차도 점차 넓히고 있다. 올 1분기에는 한국GM과 르노삼성을 제치고 국내 시장 판매액 2위를 기록했다. 수입차 브랜드가 국내 시장 판매 2위를 기록한 것은 BMW가 처음이다. BMW의 국내 시장 선전은 주력 모델인 뉴5 시리즈가 이끌었다. 2010년 출시된 528i와 520d는 같은 해 국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메르세데스벤츠의 E300을 위협했다. 디젤 모델인 520d는 출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BMW의 복덩이로 여겨지고 있다. 520d는 1백84마력에 39.8kg 토크의 힘을 내면서도 연비가 ℓ당 20km에 달한다. ℓ당 20km의 연비는 국내 차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수준이다. 520d의 성능은 고유가 시대를 맞아 더욱 빛을 발휘하며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수입차가 되었다. 올해 1분기에는 2천16대가 팔려나가며 1천62대 판매된 메르세데스벤츠 E300을 크게 앞섰다.

BMW, 중·소형 모델로 젊은 층 공략 성공

BMW는 520d 히트에 힘입어 올해 초 320d 모델을 추가로 내놓았다. 5 시리즈에 적용했던 ‘20d’ 디젤 엔진을 3시리즈에 장착한 이 모델은 2년 터울 형님인 520d를 이을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320d는 올해 배정받은 5천대 중 벌써 2천5백대 이상이 팔려나갔다. BMW의 성공 비결은 국내 수입차 시장의 변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존 수입차 시장에서는 대형 수입차 판매가 많았으나 최근 들어 젊은 층이 즐겨 탈 만한 중·소형 모델의 인기가 올라갔다. 이같은 흐름은 벤츠에 비해 비교적 중·소형 모델을 주력으로 하는 BMW에 더없는 호재가 되고 있다. 여기에 휘발유가 ℓ당 2천원을 훌쩍 넘는 고유가 시대까지 겹치면서 2천cc 디젤 엔진 부문 1인자인 BMW의 성장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수입차 시장의 변화는 메르세데스벤츠에게는 달갑지 않다. BMW에 비해 고급스럽고 점잖은 이미지의 메르세데스벤츠는 그동안 3천cc 이상 대형 모델들을 주력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츠의 역사가 곧 자동차의 역사이다’라는 문구는 공염불이 아니었다.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진화해온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부터 국내 시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국내 젊은 드라이버를 겨냥해 2천cc급인 뉴C클래스를 출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벤츠가 갖고 있는 1백26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다소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난해 부분 변경해 새로 출시된 C200 모델은 벤츠도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모델이다”라고 전했다. 4년 만에 출시된 뉴C클래스는 그동안 메르세데스벤츠가 고수해오던 품격보다는 경쾌함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C클래스는 등장부터 기존 벤츠와는 달랐다. 지난해 워커힐에서 열린 뉴C클래스 발표회는 마치 클럽 파티를 연상케 했다. 화려한 불빛이 행사장을 수놓았고 행사에 참석한 하랄트 베렌트 사장은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신차 출시회에서 의례적으로 진행되던 차량 소개도 없었다. 베렌트 사장은 간단한 소개와 ‘파티를 즐겨라’라는 말로 뉴C클래스의 출시를 알렸다. 벤츠가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난 4월 출시된 3천만원대 디젤 모델 뉴B클래스의 등장 또한 벤츠가 젊은 층을 위해 문턱을 낮추기 시작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연비가 15.7k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속으로 된 스포츠 페달 등을 구비해 경쾌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벤츠는 BMW와 더불어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수입차이다. 30~40대가 주 소비층인 BMW와 달리 50~60대에서도 고루 선호하는 편이다. 1위 BMW와 근소한 차이로 수입차 점유율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2등 브랜드’라는 인식을 희석시킨다. 오히려 고품격 명품 이미지는 BMW 이상이다. 세 꼭지 별 모양으로 이루어진 벤츠 엠블럼은 품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고품격 브랜드답게 초대형 세단이 인기이다. 벤츠를 대표하는 초대형 라인인 S클래스 모델은 동급인 BMW7 모델을 앞선다. 그러나 현재 벤츠의 국내 시장 질주를 이끄는 모델은 역시 E300이다. 지난 2009년 출시된 ‘뉴E클래스’ 모델인 E300은 E클래스의 9세대 풀체인지 모델이다. 풀체인지 모델은 차량 전반적으로 변화를 이룬, 말 그대로 ‘완전한 신차’를 의미한다. 출시되자마자 무섭게 팔려나가며 2010년과 지난해 국내 수입차 판매량 1위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올 1분기 판매량에서 BMW 520d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벤츠로서는 내수 판매를 이끌 차세대 견인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출시 행사장에 전시된 메르세데스벤츠 뉴C클래스.

아우디, 최근 성장세로는 ‘최고 속도’ 달려

아우디는 지난해 시장 점유율 9.8%로 국내 시장 수입차 브랜드 중 4위를 기록했다. 22%를 기록한 BMW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장 점유율만 놓고 보면 벤츠와 BMW에 비견하기 힘들다. 그러나 BMW의 강인함과 벤츠의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갖춰 국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아우디는 올해 시작이 좋다. 올 1분기 국내 판매 3천4백4대를 기록했다. BMW나 벤츠의 판매 대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해 동기보다 무려 41.9% 증가한 수치이다. 최근 성장세만 놓고 보면 세 개 브랜드 중 최고이다. 아우디는 지난해 1만3백45대를 판매하며 30.6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1만5천대 판매, 5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우디의 선전에는 주력 모델인 A6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출시된 7세대 A6는 올 1분기 1천3백43대가 팔려나가며 지난해 동기에 비해 70% 성장했다. 최근에는 업그레이드 모델인 ‘A6 3.0 LED 패키지 모델’을 출시하며 성장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수입차 소비군으로 떠오르는 젊은 층을 겨냥한 움직임도 보인다. 아우디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인 뉴Q3를 출시할 예정이다. BMW X1과 비슷한 크기로 젊은 층의 수요를 끌어들일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개인 사업가 양흥용씨(60)는 4년 전 아우디 A8을 구매했다. 당시 벤츠 S500, BMW 750, 아우디 A8을 놓고 고민하던 양씨는 국내 시장 1, 2위인 BMW나 벤츠가 아닌 아우디를 선택했다. 그는 “세 가지 브랜드를 놓고 조사한 결과 독일에서의 가격과 한국에서의 가격 차이가 가장 적은 모델이 아우디 A8이었다. 또 개인적으로 스키를 자주 타러 다니는데 콰트로(4륜) 모델이라는 점이 끌렸다. 음향에 민감한 내 귀를 만족시키는 음향 시스템도 만족감을 주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벤츠나 BMW는 국내 가격과 독일 현지에서의 가격 차이가 크다. 하지만 아우디는 같은 옵션을 기준으로 독일에서의 가격과 국내 가격에 차이가 없다. 오히려 독일 현지 가격보다 50% 수준으로 저렴한 모델도 있다. A6 3.0 TDI 4륜 모델은 국내 가격이 6천8백80만원인 반면 독일과 일본에서는 1억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동일 옵션 기준). 아우디코리아의 한동률 차장은 “벤츠와 BMW가 양분하고 있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가격을 크게 낮췄다. 본사에서도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을 올리기 위한 선택이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에 명차를 타려는 국내 소비자들이 점차 아우디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 모델에 걸쳐 적용되는 4륜 기능 또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우디를 구입하는 국내 소비자 중 80% 이상이 4륜 모델을 선택한다. 전세계 평균이 40%가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소비자들이 4륜 기능을 크게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 특유의 변화무쌍한 기후 탓이다. 아우디 코리아 관계자는 “아우디는 벤츠, BMW에 비해서는 국내 시장의 후발 주자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부문에서는 벤츠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점차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지난해보다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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