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스트레스’에 한숨 깊어진 열도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05.06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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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서일본 대규모 지진 발생 가능성 발표 이후 불안감 고조…국민들 해외 이동도 늘어나

지난 2월3일 도쿄백화점에서 고객과 점원이 지진 대피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 AP 연합

지난 4월1일 후쿠시마 남동쪽 1백4km 해역에서 진도 5.9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인들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지진 보도에 대해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한다. 하지만 지난해 3월11일 후쿠시마 현, 이와테 현, 미야기 현 중심의 동일본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을 경험한 이후 지진과 쓰나미 뉴스에 매우 민감해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18일 도쿄 도 방재회의가 발표한 수도 직하형 ‘도쿄 만 북부 지진’ 가능성과 3월 말의 일본 내각부 산하 전문가 검토회의가 발표한 서일본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도로 불안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일본 열도 내 지진 발생 예상 지역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 직하형 지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지난해 3·11 대지진으로 동일본 지반에 생긴 많은 균열에 태평양의 깊은 해저로부터 해수가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도쿄 동부 지역의 지하에 넓어지는 ‘남관동 가스전’의 메탄이 변형된 지반의 영향을 받아 고열화되어 팽창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수도 직하형 지진이 발생한다면 특히 도쿄 중심부에 있는 시나가와·오타·메구로 세 개 구가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악의 경우 이들 지역은 지진에 따른 화재로 면적의 20~30% 정도가 소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재 위기관리 전문가인 와타나베 미노루 씨는 “스미다 구, 아라가와 구, 다이토 구 등 서민들이 많이 사는 목조 주택 지역이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불이 순식간에 확산되어 소화 작업 자체가 어려울 경우 “1923년에 3만8천명의 사망자를 낸 관동 대지진과 같은 대규모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라고 했다.

큰 피해 예상되는 도쿄 만 주변 집값 하락

3·11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 EPA 연합
수도권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 내 사고, 교통 대란, 치안 혼란 등 총체적인 사회 문제가 예상되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위생 문제이다. 수도관의 파열로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피난처에서 공동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한편 지진 뉴스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집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져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수도 직하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도쿄 만 주변의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수도 직하형 지진 뉴스 못지않게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또 하나는 지난 3월 말 내각부 전문가 회의에서 제기된 도쿄 서쪽 서일본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뉴스이다. 최악의 경우 지난해에 경험한 3·11 동일본 대지진과 비슷한 진도 9의 대형 지진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일본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도쿄 근처인 가나가와 현에서 규슈의 미야자키 현까지 광범위하다.

발표에 따르면 지진도 지진이지만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에서 경험한 것처럼 쓰나미에 따른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홋카이도 방재회의 지진전문위원회에서도 향후 최대 진도 9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지진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진도 3이나 4 정도의 지진 뉴스는 자주 접하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지만, 진도 9와 같은 초대형급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뉴스에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의 특단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지진과 쓰나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구명조끼 구입이 늘어나고 캡슐형 방재 대피 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대지진 경고 발표한 정부에 불만 표출도

지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약 일주일 정도는 황금 연휴(golden week) 기간이었다. 이 기간은 나들이객이 많고 외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하는 관광 시즌이지만,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뉴스로 외국 관광객들의 방문이 줄어들었다. 일본 도요 대학 관광학과 시마가와 교수는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라며 “특히 한국인 관광객이 예상외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원전 사고도 걱정되지만 지진이 더 무섭다고 하더라”라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일본인들 가운데 일본 국내 여행보다는 한국 등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 미나토 구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는 이시야마 사장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이런저런 대지진 뉴스를 발표한 정부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 지금부터 뭔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라고 말했다.

일본인들에게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것은 패배 의식이다.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국민들은 패배감이 짙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이 반전되는 양상도 보였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패배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 특히 고도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50대 사람들에게는 동일본 대지진이 오히려 침체에 빠진 일본을 다시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결의에 찬 모습을 보이게 했었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의 경제 신화를 다시 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원전을 복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단결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바로 수도권 직하형 지진과 서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예측 발표였다. 그렇지 않아도 엔고(高)로 인한 수출 감소, 경기 침체, 수출 적자, 전력난 등으로  불안해하던 일본 국민들은 대형 지진 뉴스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시가와 현 가나자와 시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 사업가는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는 자녀를 보기 위해 한국에 가 지내 보니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서울에 근무하는 한 주재원은 임기가 끝나면 당연히 도쿄 본사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요즘 같으면 일본 수도권에서 언제 지진이 일어날 줄 몰라 차라리 고향인 남부에 있는 사무소로 돌아가고 싶다며 지진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한국에 직접 투자하고 공장을 이전하고자 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 오오스나 소장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기업들로서는 일본보다는 한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속내이다. 게다가 전력 부족과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더는 일본 국내에서의 사업에 이점이 없다고 판단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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