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에 몰린 ‘밀어붙이기’ 대학 개혁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5.1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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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김진규 총장 퇴진 둘러싼 내홍 막후 / 교수협·노조 80~90%가 ‘해임건의안’ 찬성

서울 광진구에 있는 건국대학교 교정에 김진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른쪽은 김진규 건국대 총장. ⓒ 시사저널 박은숙

총장 스스로는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수 등 학교 구성원 대다수는 총장의 독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이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최근 건국대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5월2일, 건국대 법학관의 한 대형 강의실에서 교수총회가 열렸다. 교수총회는 회칙상 재적 회원의 10분의 1만 참석해도 성립된다. 그런데 이날 총회에는 재적 교수 8백91명 중 3백91명이 참석했다. 주요 보직을 맡은 교수 및 연구년 중인 교수 등 1백20여 명을 제외하면 50%가 넘는 높은 참석률이었다. 이날 안건은 ‘김진규 총장 해임권고안 표결’이었다. 참석한 3백91명의 교수 중 3백72명(95.1%)이 ‘해임건의안 찬성’에 표를 던졌다.

학생회와 재단설립자 유족까지 ‘퇴진’ 압박

그보다 앞선 4월30일에도 비슷한 표결이 있었다. 건국대 노동조합측이 진행한 ‘총장 찬반 신임투표’였다. 노조 집행부가 직원들을 개별 방문해 설문조사를 한 형식이었다. 재적 조합원 3백68명 중 3백63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 중 3백25명(89.5%)이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신임’ 의사를 밝힌 조합원은 33명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대학 노조는 일반 노조와는 달리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총장에 대한 불신임이 이렇게 강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최근 건국대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2010년 9월 취임한 이래 강도 높은 ‘개혁 드라이브’를 고수해온 김총장이 강력한 역풍을 맞고 있다. 교수·임직원 등 학내 주요 구성원들이 김총장 퇴진을 외치고 나섰다. 그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일반 행정부터 학사 구조조정에 이르기까지, 김총장이 추진하는 일에서는 합리적인 계획, 원칙과 철학에 입각한 실행,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노력 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졸속 행정’이 ‘개혁’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직 김총장이 물러나는 것만이 답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김진규 총장은 국내 진단검사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줄곧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임해온 전형적인 ‘서울대맨’이었다. 그런 그가 2010년 7월 갑자기 건국대 총장으로 입성한 데 대해 교내에서는 다소 놀라는 시선이 많았다. 당시 그는 교수와 외부 인사 등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자심사위원회의 1차 심사를 거쳐 건국대 학교법인 이사회의 의결로 선임되었다. 임기는 4년이다.

“중요 사안 추진하면서 교수들과 소통 안 해”

김총장은 2010년 9월 취임하면서부터 개혁적 성향의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선 ‘녹색 총장’을 표방하며 임기 내내 자전거 출퇴근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학교 재단이 제공하겠다고 한 공용 차량도 마다하며, 차량 구입 비용 1억5천만원을 의학 관련 석좌교수 초빙에 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그의 공언(公言)은 그야말로 공언(空言)에 그쳤다. 한 학교 임직원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것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심지어 그때마다 이를 대외에 알릴 홍보 인력을 대동했다. 김총장이 하는 일이 이런 식이다. 단기적 성과에만 치중하는 보여주기 식 일 처리이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현재 김총장은 이용하지 않겠다던 공용차를 2대 사용하고 있다.

김총장은 지난해 초 한 언론사가 발표한 대학 평가에서 건국대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자, 강도 높은 학사 관리에 나섰다. 교수 연구 업적 기준 상향 조정, 학사 구조 개편, 계열별 부총장 제도 도입, 폐강 기준 강화 등 굵직한 사안들을 밀어붙였다. 건국대의 ‘경쟁력 확보’라는 명분에서였다. 이에 대해 장영백 교수협의회장은 “이렇게 중요한 사안들을 추진하면서 당사자인 교수들과는 거의 소통하지 않았다. 지금 김총장은 원칙도 없고 정도도 없는, 즉흥적이고 졸속적인 일 처리를 개혁이라고 주장한다”라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총장측은 교수협의회와 노조측이 오히려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며 맞섰다. 급기야 문제의 ‘재신임 발언’이 나오면서 갈등이 격화되었다. 지난 3월23일 교무위원 연찬회 자리에 참석한 김총장은 갑자기 “건국대의 발전과 혁신을 위해 남은 2년의 잔여 임기를 포기하고 다시 심판받겠다. 새로운 총장을 재선출하는 방식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라고 전격 발표했다. “교수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총장 흔들기와 대학 개혁에 대한 발목 잡기는 더 이상 안 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발표를 한 직후 사태가 확산되자 김총장은 전체 교직원에게 띄운 서한에서 “본의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라며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김총장의 말 바꾸기에 분노한 교수협의회와 노조는 ‘해임안 건의 투표’ ‘신임투표’로 강력 대응하고 나섰다. 갈등은 극단 양상으로 치달았다.

김총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분위기에는 학생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임진용 건국대 총학생회장은 “지난해 ‘반값 등록금’이 이슈가 되었음에도 등록금 인하는 2.5% 수준에 그쳤다. 올해 초 등록금 심의 과정에 학생 대표가 참석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때 김총장은 미국에 간다며 불참해 매우 유감스러웠다”라고 밝혔다.

교내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김총장에 대한 불신임 분위기가 비단 학교 행정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다. 취재진과 접촉한 학교 관계자 일부는 “김총장을 도덕적인 측면에서 교육자로서 신뢰하기 힘들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결국 재단 설립자(고 유석창 박사)의 유족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9일 기자와 만난 설립자의 한 가족은 “교수 및 직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김총장이 취임하기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김총장이) 물러나야 할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처럼 대학 구성원들의 전방위적 ‘퇴진’ 압박에 김총장은 곤혹스런 상황에 내몰렸다. <시사저널>은 김총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대학측은 “지금 김총장을 둘러싼 악의적인 소문이 많다. (김총장이) 지금까지 해온 개혁 및 앞으로의 비전을 참고해달라”라는 입장만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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