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탈출’한 돈, 어디 갔을까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05.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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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정지 사태 전후 움직인 시중 여유 자금, 1조원 이상 추정…채권이나 오피스텔에 투자하기도

지난 5월6일 솔로몬·한국·미래·한주 저축은행 네 곳에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 시사저널 임준선
돈은 냉정하다. 저축은행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어디로 향했을까. 이번 4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사태를 전후로 움직인 시중 여유 자금은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축은행 예금자 중 상당수는 △고금리에 민감하고 △재테크에 밝으며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한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인들도 저축은행 탈출 자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볼 만하다.

■ 연 4.5%짜리 산은 다이렉트뱅킹

산업은행(산은) 서울지점에는 최근 재미있는 ‘광고 문구’가 하나 나붙었다. ‘큰돈은 최고 금리 산업은행에, 작은 돈은 가까운 이웃 은행에’. 시중 은행의 예금 금리가 지나치게 낮지만, 산은의 금리는 매우 높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로 반사 이익을 가장 많이 본 곳 중 하나가 산은이다. 산은은 전국 지점망이 60여 곳에 불과하다. 때문에 별도의 지점망 없이 영업할 수 있는 다이렉트 뱅킹을 크게 확대해왔다. 예금 가입자가 처음 실명 확인 절차만 거치면 온라인 등으로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실명 확인 절차는 고객이 산은 창구를 직접 찾거나 아니면 전화로 직원과 면담 약속을 잡으면 된다. 약속 날짜에 산은 직원이 직접 찾아와 서명을 받는다.

산은 다이렉트 뱅킹의 예금 금리는 시중 은행보다 훨씬 높다.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기본 금리가 연 4.3%(하이정기예금)이다. 인터넷 등으로 가입할 때 최고 연 4.5%를 지급한다.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 금리도 연 3.5%(하이어카운트)이다. 뭉텅이 돈이 잠깐 머물러 있기에는 최적의 대안이라는 것이 산은측의 설명이다. 다만 MMDA의 이자 계산법은 정기예금과 다르다. 하루 이틀 넣었다 빼더라도 이자 계산은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만 해주는 식이다.

고금리 정책 덕분에 산은 다이렉트예금에 가입한 자금은 지난해 판매를 개시한 이후 7개월여 만에 1조원을 넘어섰다. 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진 이후 하루 100억원이 넘는 돈이 몰리고 있다.

■ 맞불 전략 나선 시중 은행의 특판 예금

시중 은행들도 금리 인상 경쟁에 동참하는 분위기이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도 산은에 계속 밀리지는 않겠다는 의지이다. 다만 한시 판매하는 성격의 특판 예금으로 자금 유입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계단식 금리 구조의 월 복리 정기예금(KB국민UP정기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중도 해지 때에도 월 단위 예치 기간에 대해 약정 이율을 지급한다. 만기 해지를 포함해 세 차례에 걸쳐 분할 인출이 가능하다. 기본 금리는 1개월 단위로 연 2.9%에서 6.0%까지 계단식으로 상승하는 구조이다. 외환은행은 최근 ‘고객 감사 새 출발 예금’을 내놓아 2조원가량을 판매했다. 1년짜리 예금 금리가 연 4.15%이다. 3년짜리는 연 4.29%로 책정했다. 국책 은행이지만 오히려 시중 은행과 경쟁하는 기업은행은 신서민섬김통장 금리를 최고 연 4.6%까지 적용하고 있다. 기본 금리는 연 3.9%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대 금리 항목이 6가지나 된다.

다른 시중 은행들도 스마트폰을 통해 가입할 때 연 4%대 초·중반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스마트폰 전용 예금 금리는 최고 연 4.3%이다. 국민은행의 비슷한 상품 금리는 최고 연 4.4%이다. 농협은행 역시 최고 연 4.67%까지 주고 있다. 다만 스마트폰 전용 상품의 가입 한도는 대개 5백만~1천만원으로, 낮은 편이다.

■ “역시 저축은행뿐”… 안전은 따져야

일부는 또다시 저축은행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시중 은행이 제시하는 예금 금리가 영 시원찮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재무 구조가 나쁘지 않으면서 금리를 조금 더 얹어주는 저축은행에 여유 자금이 몰리는 양상이다. 다만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저축은행의 무더기 퇴출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지만) 건별로 상시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꿀 것이다”라고 밝힌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상당수 저축은행은 여전히 시중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단기 예금에 대해서는 시중 은행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금리를 적용한다. 짧은 기간 자금을 운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예컨대 스카이저축은행은 6개월짜리 예금에 대해 현재 연 3.8%를 주고 있다. 시중 은행의 같은 기간 예금보다 두 배가량 높은 금리이다. 이 은행의 1년짜리 예금 금리는 연 4.3%이다.

신라저축은행의 경우 한 달만 예금해도 연 3.8%를 적용한다. 1~3개월 예금에 연 3.8%, 3~6개월에 3.91%(이하 복리 기준), 6~12개월에 4.03%, 12~18개월에 4.38%, 24개월에 4.59% 등이다. 인터넷으로 가입하면 0.1%포인트의 금리를 추가해준다. 이 저축은행은 재무 구조가 다소 취약하지만, 높은 금리 덕분에 평소보다 돈이 더 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을 이용할 때는 개별 회사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순익 등 재무 구조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험사들은 요즘 장기 저축성 보험인 연금에 대한 마케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축은행에서 이탈한 자금을 잡기 위해서다. 특히 최고 연 5.1%에 달하는 금리가 무기이다. 보험사들의 연금보험 금리는 현재 연 4.6~5.1%이다. 생명보험회사에 비해 손해보험회사들이 조금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하는 편이다. 최고 금리를 기준으로 시중 은행의 일반 예금보다 연 1%포인트 정도 높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저축은행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데다 소득공제나 비과세와 같은 세제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어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비과세 혜택’ 신협·금고도 인기

신협은 현재 시중 은행 예금보다 높은 연 4.3% 안팎의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다 예금자는 1인당 3천만원 한도로 비과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1.4%의 농어촌특별세를 내야 하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이를 감안하면 연 4%대 후반 금리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신협에는 하루가 다르게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신협 예탁금은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한 한 주간 1천100억원 이상 늘어났다. 지난 4월 한 주간 평균 증가액의 세 배를 넘는 규모이다. 역시 비과세 혜택이 있는 새마을금고 예탁금에도 매주 수천억 원씩 자금이 들어온다.

증권사들은 저축은행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원금 보장성을 강화한 주가지수연계증권(ELS) 신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연 3.5~3.51% 수익률을 보장하는 한 달짜리 원금 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S)을 선보였다.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의 채권(산금채·중금채)도 인기이다. 신규 고객이 1년 만기 중금채를 매입하면 5천만원까지 최고 연 4.6%를 적용한다.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국책 은행이 발행했기 때문에 부도 위험이 없다. 일부 투자자는 연 5~6%대 임대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오피스텔을 찾고 있다. 경우에 따라 짭짤한 투자 차익까지 거둘 수 있다는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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