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은 홍대앞 30대 여성은 청담동
  • 엄민우 기자·최은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5.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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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주 모이며, 어느 지역에서 소비를 많이 할까.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 모이고 그곳에서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관련 자료를 추출해보았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의 상권 분석 시스템과 <시사저널>의 현장 취재를 결합한 결과이다. 조사 대상은 서울 강남역·명동·청담동·홍대앞과 4개 지방 대도시의 주요 상권들이다.

5월16일 저녁 식사 후 서울 강남역 인근 상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여성들. ⓒ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는 왜 항상 복잡할까? 왜 20대는 약속 장소로 홍대앞을 선호할까? 청담동 카페 골목에는 20대가 많을까, 30대가 많을까? 명동을 배회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디서 소비할까? 이같은 내용들을 데이터로 뽑아볼 수는 없을까? GIS(지리 정보 시스템)와 통신 기술의 발전이 이에 대한 답을 가능케 했다. <시사저널>은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의 상권 분석 시스템 지오비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20~40대 남녀의 동선과 소비 행태를 추적했다. 서울(강남역, 명동, 청담동, 홍대앞)과 지방 대도시 주요 상권(광주 금남로, 대구 동성로, 대전 중앙로, 부산 서면) 등 여덟 곳을 조사 대상 지역으로 삼았다. SK 기술력에 <시사저널> 현장 취재가 더해져 나온 결과는 흥미로웠다. 상권마다 붐비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특성이 있었다.

홍대앞, 20대 여성 비율 가장 높아

직장인 신은미씨(28)는 금요일 저녁이면 홍대앞을 즐겨 찾는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만남 장소는 늘 그렇듯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KFC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서 있는 홍대앞 공식 약속 장소이다. 약속 시간이 되자 지인이 하나 둘 등장한다. 한껏 멋을 낸 모습이다. “너 오늘 대학생 같다”라는 칭찬 아닌 칭찬이 오간다. 저녁 7시. 배고플 시간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파스타집으로 향한다. 메뉴는 속을 파낸 빵에 크림 스파게티를 담아낸 홍대앞 명물 파스타와 피자, 샐러드이다. 수다를 떨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음식값은 3만8천원. 계산을 하고 나간다. 소화를 시킬 겸 걷는다. 골목을 따라 걷자 양쪽으로 여성 옷과 액세서리 상점이 즐비하다. 저렴한 액세서리는 1천원짜리 몇 장이면 살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한 번씩 들어가 걸쳐보고 구입하기도 한다. 가게 안에는 은미씨와 같은 젊은 여성들이 가득하다.

길거리도, 식당도 각양각색 젊음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음의 거리 홍대앞은 20대의 천국이다. 20대의 비율이 47%로 조사 대상 지역 중 가장 높다. 주요 소비 업종은 음식업이다. 밥이나 술 소비가 많다는 것은 곧 모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가라는 특성상 물가가 낮은 편이다. 저렴하면서도 개성 있는 분위기는 홍대앞만이 갖고 있는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대학생 유세영씨(가명·22)는 “학교가 신촌 근처이지만 홍대앞은 홍대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더 선호한다. 명동은 외국인에게 초점이 맞춰 있고, 강남은 가격이 부담스럽다. 친구와 모이면 거의 홍대에서 본다”라고 전했다. 홍대앞은 길거리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최근 상권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녁이면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학생뿐 아니라 젊은 직장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홍대앞에서 벌집 삼겹살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씨는 “평소에는 학생들이 많지만 금요일이 되면 오히려 직장인이 많다”라고 귀띔했다.

명동은 일본·중국인 관광객에게 자리 내줘

서울 강남역 주변 화장품 브랜드숍에서 여성 고객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강남역은 조사 대상 지역 중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주변에 회사가 많아 직장인 수가 많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상주 인구만 2만여 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 서초사옥 영향이 크다. 강남역 서초사옥에 근무하는 삼성물산 최선아씨(가명·27)는 “보통 점심때 3~4명이 식사를 하는데 5만원 이상 지출한다. 가끔 저녁에 팀 회식을 하면 1차에 20만~30만원 지출한다”라고 전했다. 삼성 사옥에 근무하는 2만여 명의 점심값 및 회식비를 생각하면 강남역 상권에서 삼성사옥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강남역에는 삼성맨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토익학원 및 편입학원에서 내일을 위해 땀 흘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들의 점심은 초라하다. 밥 때가 되면 학원 근처 편의점은 식사를 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편입 준비생 김 아무개씨는 “저렴하면서도 혼자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로 편의점에서 식사를 한다. 김밥이나 라면이 주 메뉴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 강남역 20~30대 남성의 주요 소비 업종은 ‘편의점’이었다. 재밌는 것은 같은 20대이지만 여성들의 주요 소비 업종은 ‘화장품’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는 젊은 여성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반영하듯 강남역 부근에는 아리따움, 더페이스샵, 미샤 등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화장품 브랜드숍들이 들어서 있다.

강남역에서 불과 5km 거리에 있는 청담동은 이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저렴한 브랜드숍 대신 명품 매장이 즐비하다.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커피숍뿐 아니라 고급스런 인테리어의 카페들도 종종 눈에 띈다. 지난 5월15일 청담동 카페 골목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 입구에는 외제차를 비롯해 고급차들이 즐비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루이뷔통 백과 명품 선글라스가 이들의 경제력을 설명해준다. 대화 주제는 남편과 자식 얘기이다. 카페 종업원은 “30대 주부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학부모들끼리 종종 모임을 갖는다”라고 귀띔했다. 음식 가격은 다른 상권을 압도한다. 커피값이 1만원을 넘어서고 식사 메뉴는 2만4천원 정도이다. 밥 종류나 떡볶이도 2만원이다. 홍대앞 명물 조폭떡볶이를 10인분 가까이 주문할 수 있는 가격이다. 이를 반영하듯 평균 지출 액수도 다른 상권을 압도한다.

여성 40대 결제 1건당 평균 금액은 17만원을 웃돈다. 청담동은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학생들은 모이기 쉽지 않은 곳이다. 조사 대상 상권 중 유일하게 여성 유동 인구 중 30대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청담동을 제외한 나머지 상권의 주요 여성 유동 인구는 모두 20대이다. 하지만 같은 20대라도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직장인들은 번잡하지 않다는 장점 때문에 종종 찾는다. 직장인 서은정씨(가명·28)는 “직장은 강남역이고 집은 홍대앞이지만 평소 모임은 주로 청담동에서 잡는다. 강남역과 홍대앞은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해 이야기를 나누고 편하게 쉬는 데 적합하지 않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 최고의 상권이었던 명동은 어떨까.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특별히 모임 장소로 각광받지는 못하고 있다. 식당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브랜드숍들이 즐비하다. 적어도 한창 꾸밀 20대 여성들에게는 천국이다. 명동을 찾는 20대 여성의 주요 소비 품목 1위는 ‘화장품’이다. 하지만 주변에 SK텔레콤, 외환은행 등 큰 기업이 많아 식당 업종 소비가 가장 많다. 명동 지역 직장인 박지웅씨는 “점심 시간 명동거리는 외국인 반, 식사를 하러 나온 주변 직장인 반이다. 보통 2~4명씩 식사하러 나가서 3만~4만원 정도 소비한다. 명동 물가는 강남보다는 저렴하지만 대학가에 비하면 부담되는 가격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명동에서 20~40대의 1건당 결제 금액은 홍대앞과 강남 지역의 사이인 9만6천원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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