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인가, 이익단체인가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2.05.2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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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를 소재로 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웃음>에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사과나무 꼭대기에서 두 사과가 세상을 관찰하고 있다. 한 사과가 말한다. “저 인간들 좀 봐. 참 우스꽝스럽지 않아? 서로 싸우고 자기주장에 열을 올리고, 어느 누구도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가면 언젠가는 우리 사과들이 지구를 다스리게 될 거야.” 그러자 다른 사과 왈, “우리라는 게 누구야? 빨간 사과들, 아니면 노란 사과들?”’

이 소설 속의 유머처럼 사람들(심지어 사과들까지)은 편 가르기에 재능이 참 많습니다. 혈연에, 지연에, 학연에, 심지어는 유치원 엄마들 모임까지 기회만 생기면 패거리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그냥 뭉쳐서 놀기만 하면 좋을 텐데, 가끔씩은 패거리끼리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상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이기적인 믿음이 작동한 탓입니다.

그같은 파당적 대립이 가장 극단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 정치입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파당 간의 경쟁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을 향한 경쟁이어야 합니다. 자신들의 이익만 좇아 움직이면, 조선 실학자 성호 이익이 말한 ‘붕당(朋黨)’ 꼴을 면치 못합니다. 

지금 우리 정치권 내에서도 많은 계파가 서로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힘과 힘이 맞부딪치면서 파열음도 자주 새어나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근혜계가 당의 요직을 다 꿰차자 친이명박계 등 반대파에서 볼멘소리가 높습니다. 당권 경쟁이 한창인 민주통합당에서도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손을 잡으면서 ‘야합’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진 행위라도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독단 혹은 담합이 되고 맙니다. 국민의 마음을 향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붕당 정치’의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불거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정당의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를 안겨준 사건입니다. 막장 수준에 이른 폭력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싸움의 명분도 억지스럽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아무리 마음을 열어 이해하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국민’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앞서 당원의 눈높이가 우선”이라는 통합진보당 당권파 운영위원의 발언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줍니다. 진보 정당의 뿌리, 토대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제도권 정치에 안착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NL이니, PD니 하는 담론적 세력이 아니라, 이 땅에서 땀 흘려 일해온 노동자들입니다. 노동자층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앞장서주리라는 대중의 희망과 기대가 오늘의 통합진보당을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보수의 오만도 문제이지만, 진보의 오만도 문제입니다. 전국 유권자 열 명 중 한 명이 자신들에게 표를 던져준 그 현실적 기대와 꿈을 겸허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당도 국민보다 당원이 앞설 수는 없습니다. 당원의 이익이 앞선다면, 정당이 아니라 이익단체일 뿐입니다. 힘은 곧게 뻗어나가야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왜곡되어 비틀린 힘은 결국 스스로를 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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