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전체 기부액, 전년 대비 12% 증가했지만 양극화 여전
  • 이석 기자·최은진 인턴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5.2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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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상위 50대 기업 감사보고서 분석 결과 / ‘기부왕’은 삼성전자·현대중공업

ⓒ 일러스트 권오환
매출 상위 50대 기업 중에서 지난해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곳은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은 24% 감소했음에도 기부금은 26%나 늘어났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31.37% 감소했지만, 기부금은 1백8.65%나 증가했다. 이에 반해 현대위아나 현대상선은 ‘짠돌이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두 회사는 지난해 각각 4억4천9백만원과 2억6천9백만원의 기부금을 내는 데 그쳤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4천7백억원대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기부금 역시 47%나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위아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백35%나 증가했다. 50대 기업 중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배당금 역시 전년에 비해 1백35%나 증가했음에도 기부금은 4억원대에 머물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SK가스·E1, 기부금 증가율 700% 넘어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매출 상위 50대 기업(공기업 제외)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서 드러났다. 절대 금액 측면에서 조사 대상 기업의 기부금은 12% 정도 증가했다. 지난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전세계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환율 효과 등으로 매출이나 당기순이익에서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매출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기업들이 비축하는 유보금 역시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기부금을 대폭 줄이면서 “사회 공헌 활동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난 여론이 폭주했다.

지난해의 경우 주요 기업의 기부금이 처음으로 1조원대를 돌파했다. 기부금이 증가한 곳 역시 전체의 62%인 31곳에 달했다. 특히 국내 기업은 지난해 유럽발 재정 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다. 상위 50대 기업의 당기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12.75%나 하락했다. 수출을 하면 할수록 손실이 쌓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기부금 비용을 늘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가 2천4백93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현대중공업(1천9백77억원), SK텔레콤(1천32억원), CJ제일제당(9백5억원), 포스코(5백8억원), 현대차(4백91억원) 등이 2~6위를 차지했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올 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삼성은 국민 기업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접근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공익 재단을 설립해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 차원에서 기업들이 기부금을 늘린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도를 측정하는 ‘순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지난해 크게 상승했다. 지난 2008년까지 이 비율은 2.53% 정도였다. 1천원을 벌면 2백53원은 기부금으로 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1.99%와 2.13%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이 수치가 2.73%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속 내용을 뜯어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매출 상위권 기업은 상대적으로 활발한 기부 활동을 보였다. 반면, 하위권 기업의 기부 참여율은 매우 낮았다. 일부 기업은 전체 순이익의 0.2~0.3%만 기부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기업들 간에 기부 문화가 극명한 양극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공개한 기부금 내역에는 사내 복지금도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을 제할 경우 일부 기업은 사실상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관되게 사회 공헌 나서는 기업 적어” 지적

매출 상위 기업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기부금 지출 상위 6곳 중에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늘어난 기업은 포스코가 유일했다. 전년에 비해 13%가 줄어든 SK텔레콤이 그나마 낫다. 하지만 포스코의 기부금은 15%나 줄어든 5백8억원을 기록했다. SK텔레콤 역시 49% 하락한 1천32억원을 지출했다. 이에 반해 순이익 하락 폭이 큰 삼성전자나 현대중공업, CJ제일제당 등은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72%나 감소한 1천5백86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9백5억원을 지난해 기부금으로 지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정유나 LPG 업계의 행보 역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정유업계는 지난해 휘발유값 상승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었다. 정유 4사의 총매출은 1백46조2백87억원으로 전년보다 31.8%나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40.1% 급증했다. 특히 에스오일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5.59%와 67.93% 증가했다. 하지만 기부금은 순이익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매출이나 순이익은 50개 기업 중 4위를 차지했지만, 순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은 41위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LPG 판매업체인 SK가스와 E1은 지난해 순이익이 각각 -2.7%와 7%에 머물렀지만, 기부금 증가율은 2천3백13%와 7백38%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이었다. 이 밖에도 대림산업과 이마트(신세계 포함) 역시 지난해 순이익이 100~2백% 이상 급증했지만, 기부금 액수는 60%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부소장은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일부 기업들은 아직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업이 사회 공헌 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사회적 책임 투자 자문회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사회 공언에 대한 일관성이 부족하다”라고 꼬집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지면서 이듬해 기부금을 1천82억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95% 하락한 90억원으로 감소했다. 류대표는 “기업 및 오너 일가의 비리나 사고가 터졌을 때 기부금이 증가했다가 다시 줄어드는 것이 국내 기업의 현실이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기업의 매출은 매년 증가하는 데 반해 기부금의 절대량은 크게 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업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사회 공헌 활동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재벌 오너 소유 공익 재단 ‘논란’…무늬만 기부, 실상은 경영권 방어용?

이번 조사를 통해 상당수 기업이 사회 공헌 활동에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기업은 총수들이 운영하는 공익 재단에도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하지만 재벌 계열 재단의 경우 폐쇄적인 운영으로 여전히 뒷말이 나오고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재벌 계열 공익 법인은 모두 45개에 달한다. 대부분이 오너의 이름을 따거나 오너가 사재를 출연해서 만든 재단이다. 실제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지난해 5천억원을 해비치재단에 기부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도 2천억원을 자신이 설립한 공익 재단에 넘겼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역시 그동안 3백억원대의 주식을 남촌재단에 넘겼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도 롯데장학재단과 롯데복지재단에 5백13억원어치의 개인 보유 주식을 증여했다.

하지만 보유 재산의 대부분이 계열사 주식인 데다, 배당에만 의존하는 처지여서 진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의연구소 팀장은 “보유 재산의 평균 배당률이 1.59%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당 수익으로 고유 사업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재단법인 웅진(웅진)과 남촌재단(GS), 정석학원(한진) 등 11곳은 배당금마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 재단이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 지배 구조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주요 그룹 총수들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을 때마다 거액의 기부 의사를 밝혀왔던 터여서 재벌 계열 공익 재단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주요 그룹이 운영하는 재단을 보면 총수의 호주머니에서 재단으로 주식을 옮긴 것에 불과하다. 재단 운영에만 상당액이 들어감을 감안할 때 고유 목적에 사용되는 돈은 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성호 바른사회공헌포럼 공동대표는 “주요 그룹 총수들이 운영하는 공익 재단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한다. 그는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지난 2011년 공익 목적 사업비는 자산의 1% 수준인 70억원에 불과하다. 출연 주식을 일부 매각해 공익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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