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국 뒤흔드는 ‘소비세 지진파’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06.1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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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총리, 자민당과의 협력 노리며 ‘증세’ 추진…오자와 전 민주당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 앞세워 반대

지난 4월26일 일본 도쿄 법원 앞에서 오자와 이치로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Xinhua
지난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 중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소비세를 인상하겠다고 소신을 거론했다. 결과는 대패였다. 참의원 다수석을 자민당에 내주었다. 바로 간 나오토 정권은 레임덕에 빠졌다. 그 이후 지금까지 주요 사안들이 자민당의 벽에 부딪혀 정국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소비세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재정 적자를 감안해 소비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당위론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막상 인상하고자 하면 반대로 돌아선다. 민주당 내에서 제일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자와 전 대표가 이런 국민들의 생각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오자와 씨가 내세우는 명분은 2009년 정권이 교체되었을 때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는 행정 개혁, 정당 교부금 및 세비 삭감 등을 통해 재정 건전화를 도모해야지, 국민들에게 세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소비세를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노다 총리와는 정반대 입장이다.

재무성 대신 출신인 노다 총리 입장에서는 현 재정 상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이대로 가면 재정이 파탄 지경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자와 씨와의 담판도 시도했으나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자 전략을 바꿨다. 야당인 자민당에 러브 콜을 보냈다.

그동안 자민당은 안전 보장에 대한 기초 지식조차 없는 다나카 나오키 국방상과 사전 선거운동으로 문제가 된 마에다 다케시 국토교통상을 참의원에서 문책하기로 결의하면서 노다 총리에게 경질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참의원 결정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다 총리는 경질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나 지난 6월4일 다섯 명의 신임 장관을 임명했다. 개편의 핵심은 자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오자와 씨보다는 자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소비세 인상안은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노다 총리의 결의이다.

내각 개편 때 오자와 측근은 경질되지 않아

지난 6월4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노다 총리(가운데)가 신임 각료들과 사진 촬영을 마치고 걸어 나오고 있다. ⓒ AP 연합
하지만 이 결정으로 후폭풍이 서서히 일고 있다. 이번 내각 개편에서 경질될 것으로 점쳐졌던 고시이시 간사장이 유임되었다. 고시이시 간사장은 오자와 씨와 가까운 인사이다. 그는 그동안 노다 총리와 불협화음을 일으켜왔다. 간간히 월권 행위도 보였다. 심지어는 이번 내각 개편에서 자신이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자를 테면 잘라 보라. 당이 깨지면 소비세고 뭐고 없다. 고시이시를 자르는 순간 노다도 잘리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흘릴 정도로 노다 총리와 각을 세웠다. 고시이시 간사장이 이런 행동을 한 이면에는 오자와 씨와의 공조가 있다. 노다 총리는 소비세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통을 참아가고 있다. 자민당을 택하자니 민주당 내 갈등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자민당이 당장 우호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또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며 한 치도 굽히지 않는 오자와 씨와 협력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노다 총리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가는 선택을 해가고 있다. 이것이 이번에 고시이시 간사장을 경질하지 못한 이유이다. 일련의 갈등을 참아가는 이것이 오로지 소비세 법안을 관철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길이 캄캄하다. 두 명의 각료를 경질하면 국회 운영에 협조할 것 같던 자민당이 다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국회 운영에 소극적이다. 자민당의 최종적인 목표는 소비세 문제가 아니다. 조속한 시간 내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간 나오토 정권 때 소비세 문제로 참의원을 장악한 자민당으로서는 민주당이 별로 인기가 없는 지금 선거를 치러 중의원도 장악하겠다는 의도이다. 현재 중의원은 집권 민주당이, 참의원은 야당인 자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정국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야흐로 소비세 문제가 다시 정권을 심판하는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자민당과의 협력이다. 이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지난 6월3일 오자와 씨와의 담판에서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후 기자단에게 소비세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오자와 씨를 설득하기보다는 자민당과 함꼐 법안을 수정·협의하는 쪽을 우선시하겠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야즈 총재도 자신들이 경질을 요구한 두 명의 각료를 노다 총리가 경질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우호적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이유는 노다 총리가 소비세 법안을 회기 말인 오는 6월21일까지 통과시키고자 하는 데 대해 자민당은 협의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한 발짝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이 원하는 바는 중의원 해산을 조건부로 회기 내에 통과시켜주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협의 결렬 후 중의원을 해산하는 방안이다. 민주당과 자민당 간에 수정 법안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소비세 법안보다는 사회보장 제도 개혁과 관련된 내용이다. 자민당은 ‘사회보장제도 개혁 국민회의’를 설치해서 사회보장 개혁을 분리해서 협의하자는 쪽이고, 민주당은 연금 일원화나 최저 보장 연금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 간의 생각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6월21일로 예정된 회기가 끝나게 되면 자민당은 자신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참의원에서 총리 문책 결의안을 제출해 가결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대화의 여지를 보여왔던 관계가 악화되어 노다 총리는 중의원 해산을 결정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세 번째이다. 지지율이 낮은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노다 총리가 중의원 해산이라는 카드를 꺼내들 경우 민주당 내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진다는 점이다. 중의원이 해산될 기미를 보이면 그동안 소비세 인상안에 찬성 입장을 보여왔던 당내 의원들조차 반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태생적 한계 드러내

어떤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향후 일본 정국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 노다 총리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과 협력 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같은 당내 세력에게 협력을 구하지 못하고 야당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노다 총리와 민주당의 현 위상에 대해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소비세 법안을 둘러싸고 일본 포털 사이트 야후에서 지난 5월30일부터 온라인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실시 당일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56%는 당의 분열을 각오하고라도 법안 심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애초부터 생각이 다른 오자와 씨와 더 이상의 협력은 의미가 없다는 것들이다. 위기 상황에서 같은 당의 협조를 얻지 못해 야당의 도움을 청해야 하는 민주당의 태생적 한계가 다시 지적되고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해 보수적 인사들에서부터 사회당 인사들까지 합심해 만든 정권의 모호한 정체성이 집권 내내 역효과를 보이고 있다. 또 2009년 집권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주장했던 정권 공약, 즉 세금 인상 반대 공약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표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정권 운영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소비세 문제는 정권을 획득하는 것보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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