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행동해야 돈 벌 수 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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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문가 채익종 다다디앤씨 대표 / 청소차 운전사에서 100억 자산가로 변신한 비결 공개

ⓒ 시사저널 임준선

부동산 컨설팅업체 다다디앤씨의 채익종 대표(45)는 5년 전만 해도 청소부였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 중구청 소속 청소차 운전사였다. 지금은 외제 승용차(BMW)를 몰고 다니는 100억원대 자산가이다. 청소차를 운전하던 그가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닐 만큼 부를 축적한 이유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절박함 때문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그를 절박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쉬엄쉬엄 복덕방을 했고, 어머니가 대폿집을 꾸렸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해야 식구들이 겨우 목구멍에 풀칠했다. “가난이 싫었다. 술주정뱅이가 어머니를 희롱해도 참아야 하는 가난이 싫었다. 이후 나는 돈이 없어 결혼을 못 하고 먼저 동거를 했는데, 그때까지도 12평짜리 3천만원 전셋집에 할머니부터 4대가 살았다.”

서울 답십리에서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남 앞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말수가 적은 소년이었다. 친구가 없어 항상 외로움에 사무쳤다. 그것에 대한 반동이었을까. 아니면 동네 씨름 선수였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탓일까. 그는 싸움에 일가견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싸움질을 했다. 어렵사리 전문대 야간을 턱걸이로 들어갔지만 주먹질은 여전했다.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지만 허리를 다쳐 방위로 제대했다. 전문대 졸업 후 지금의 부인과 동거를 시작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치른다는 것은 사치였다. 무슨 일이든 해야 했던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일당 8천원을 받고 공사장 잡부로 일했고, 나이트클럽 웨이터, 가스 배달, 택시 운전, 버스 운전, 학습지 배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사장 운전기사로도 일했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다. 1992년에 서울 중구청의 청소차 운전사가 되었다.”

밑바닥 삶이라도 종잣돈은 악착같이 모아야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돈을 벌지는 못했다. 열심히 일해도 대물림되는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당시 월급이 92만원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다. 서울 도심의 고층 빌딩을 보면서 사회를 원망했다. 어떻게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이가 학용품을 사달라고 떼를 써도 돈이 없었다. 그래서 애꿎게 아이를 야단쳤다.”

눈에 핏발이 서린 그는 말을 잠시 끊었다. 그리고 다시 어린 시절의 얘기를 꺼냈다. “대폿집 앞에 당시 2억5천만원짜리 집이 있었다. 지금 돈으로 아마 20억원쯤 할 것이다. 어린 나는 어머니에게 커서 그 집을 사주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화가 났다.”

책과 담을 쌓고 살던 그는 서점에서 재테크 책을 샀다. 책에는 여유 자금을 굴리는 법만 가득했다. 여유 자금은 고사하고 종잣돈도 없는 그는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월급을 고스란히 저축했다. 주말에 택시를 운전하고, 폐지를 모아 팔아서 번 돈으로 아이 우유와 기저귀를 샀다. “당시 신문 폐지 1kg에 1백20원, 박스는 1백50원을 쳐주었다. 그 돈으로 5천8백원짜리 분유를 샀다. 밑바닥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때 가격을 기억한다. 나는 밥에 간장을 비벼 먹으며 돈을 모았다.”

3년 만인 1995년 통장에 3천만원이 쌓였다. 보증금 1천5백만원짜리 월세로 분가했다. 나머지 1천5백만원으로 서울 행당동 도로변에 있는 2평짜리 땅을 샀다. 주변에서는 바보라고 손가락질했고, 식구들은 사기당한 것이 아니냐며 걱정했다. 그 땅은 재개발 지역에 들어가서 24평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불과 6개월 만에 1천만원이 붙었다. 그 땅을 팔아 서울 길음동 재개발 지역에 있는 전세를 낀 2천5백만원짜리 빌라를 샀다. 이것이 3천5백만원으로 올랐고, 재개발 후에는 1억원대로 뛰었다. 그 돈으로 서울 성수동에 빌라 두 채를 사서 팔았다. 이런 식으로 차익을 남겼다.

“서울 도곡동에 있는 13평짜리 주공아파트 전세가 1억원이었다. 1천5백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울을 벗어난 곳의 땅은 평당 10만원이어서 1천만원에 100평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멀고 무엇보다 환금성이 떨어졌다. 환금성이 좋은 물건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빌라와 연립주택이었다. 아파트보다 투자 금액이 적고 위험 부담도 없다. 깔끔해서 신혼부부 등 수요가 계속 이어지면서 전세금을 올려받을 수도 있다. 감정 평가가 잘 나오고 환금성이 좋다. 몇 차례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재건축·재개발이 유망하다는 사실이었다.”

운도 따랐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재개발 붐이 일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후반부터 부동산 경기는 곤두박질쳤다. 6억원이던 그의 부동산 가치가 반 토막이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아버지는 병을 얻어 입원했다. 혈액종양이었다. 병원비만 한 달에 5백만원씩 들었다. 대출 이자도 못 갚을 정도였지만 어떻게든 병원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2000년 그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 병 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폿집을 처분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대폿집은 채대표에게 꼴도 보기 싫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1998년 정부가 바뀌면서 부동산 경기가 다시 활기를 찾았다. 6백억원짜리 거래를 할 정도로 그는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보았다. 그렇다고 항상 돈을 번 것은 아니다. 한 번에 40억원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2008년 7월 청소차 운전대를 놓았다. 결핵성 늑막염으로 1년 동안 약을 달고 살았다. 청소차를 몰면서 먼지를 너무 마셨고, 손해 본 것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쓴 탓이라고 했다. 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아서 몸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청승맞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발품 팔아 투자하고, 행동해서 벌어라”

“푼돈 아껴서 큰 부자가 되겠냐며 주변에서 비아냥거렸다. 무식한 놈이 돈벼락을 맞은 졸부라고 손가락질도 한다. 졸부는 아무 노력 없이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다. 나는 밑바닥부터 처절하게 기었다. 발품을 팔아 투자하고, 행동해서 돈을 벌었다. 그러니 졸부는 아니다.”

그는 빌라를 지어서 팔기도 한다. 채대표를 만난 서울 신당동의 건물은 그가 20번째로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 건물 1층에 머니트리(돈나무)라는 카페를 열었다. 커피를 팔지만 부동산 투자 노하우도 판다.

“사주 카페, 인터넷 카페가 있듯이 부동산 카페를 차렸다. 올해 전국에 2백~3백개 체인점을 낼 계획이다. 부동산 투자 방법도 알리고, 건축·설계·시공·세무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100억원대 부자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언론과의 접촉은 극도로 피한다. 소문이 날수록 빈손을 벌리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가난은 죄이다. 대놓고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모든 일에서 열외당하면서 그것을 느낀다. 물론 다른 사람은 나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만, 가난한 나는 모멸감을 느낀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지만, 가난은 가난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은 더 큰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없는 사람도 나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꿈꾸지만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모든 사람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러나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열의만 가득했지 정작 행동은 하지 않는다. 나는 행동을 해보아서 그 사실을 안다.”

“부자들이 가난을 돕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

채대표는 부자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부자들은 나눔의 삶을 살지 않는다. 겨우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기부하는 척한다. 그러지 말고 평소에 나눔의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강조하지만, 가난을 돕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이다.”

그는 5년 이내에 재산 전액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사후에 장기도 기증하기로 했다. “10층짜리 기부 빌딩을 지을 계획이다. 지인들이 관리하겠지만 사회가 소유하도록 할 생각이다. 1~3층에는 카페를 운영해 운영비를 벌고, 그 돈으로 4~8층에 장학·무료 의료·무료 교육·무료 문화 사업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싶다. 9~10층에는 교회를 만들 것이다. 주먹질만 하던 내가 긍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믿은 신앙의 힘이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집을 사주겠다는 어릴 적의 약속을 지켰다. 가난 대물림의 고리도 끊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외롭다. “돈으로 쌍놈이 양반으로 신분 상승했다. 2백70만원짜리 구두에, 외제 자동차에 널찍한 집이 있다. 그런데 92만원 월급에 만족하던 가족은 9백20만원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또 청소차를 몰던 당시 동료는 여전히 가난하고 나를 멀리한다. 나는 그들에게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인가 보다. 부자는 물이 다 다르며 나를 피한다. 돈이 많아진 만큼 행복은 줄어든다는 것도 깨달았다.”


1. 공인중개사와 친해져라.

인근 부동산을 자주 방문해서 공인중개사와 친분을 쌓아두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 은행을 이용하라.

저축하라는 말이 아니다. 은행 대출로 금리보다 높은 수익이 날 곳에 투자하라.

3. 부자를 존경하고 인정하라.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를 닮아야 한다. 부자가 거만하고 아니꼽게 느껴지더라도 부자가 되기 위한 자극으로 받아들여라.

4. 여러 사람과 함께 투자하라.

1억원 투자해서 2천만원 버는 것보다 1억원씩 10명이 10억원을 투자하면 단가가 싸고 수익률이 높아진다. 화합만 잘 되면 공동 투자가 낮은 위험도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5. 큰 호재가 있는 지역은 장기 투자하라.

어설프게 사고팔면서 세금만 축내지 말고 큰 호재가 있는 지역은 장기 투자하라. 시간이 지나면 만만치 않게 오른 가격에 놀랄 것이다.

6.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아라.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얼굴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 차익을 남겨 다시 투자하는 방법이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7. 싼 게 비지떡이다.

쌀수록 수익률도 낮다.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유가 되면 비싼 곳에 투자하라.

8. 인맥 관리와 신뢰를 쌓아라.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말과 행동을 보여라. 그들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9.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한 것과 같다. 망가질 것이 없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투자하라.

10. 부채도 자산이다.

10억원을 대출받아 20억원 건물을 가지고 있다면 20억원에서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대출 이자를 상쇄할 수 있으므로, 부채는 빚이 아니라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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