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처럼 단단하게 소신 행보 ‘드리블’
  • 최은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6.12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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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의 ‘인생 행로’ / 재벌가 6남으로 30세에 현대중공업 맡아 무소속으로 정계 입문한 뒤 2002년 대선 도전에서 한 차례 좌절

맨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 취임 후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중앙고 졸업식 때 어머니인 고 변중석 여사와 찍은 사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 정몽준 제공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파란만장한 계동 거리 잔혹사’라고 표현했다. 멀쑥하게 키만 큰 깡마른 소년이던 고등학교 시절, 정 전 대표는 근육을 키우고자 권투를 시작했다. 그 무렵 싸움깨나 하는 학생들이 모인 주먹클럽 멤버인 학교 유도부 주장이 그를 불러냈다고 한다. 유도부 학생들의 비위를 거스르게 했다는 이유였다. 100명쯤 되는 유도부 학생들과 주먹클럽 멤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싸움은 시작되었다. 예상을 깨고 정 전 대표의 펀치에 유도부 주장은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그 뒤 흠칫 두들겨맞기는 했지만, 파란만장하고 반항기 강했던 그의 학창 시절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정 전 대표는 1951년 10월 부산 범일동에서 고 정주영 회장의 8남1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세 살 되던 해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를 거쳐 중앙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과였으나, 그렇다고 공부만 들이파는 성격도 아니었다고 한다. “공부를 게을리한다”라는 아버지의 핀잔에 오기가 생겨 입시를 앞두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0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후에는 멋있어 보이고 싶다는 치기로 친구들과 시험 커닝을 하다 적발되어 유급을 당하기도 했다. 대학 3학년 시절에는 보안부대 군인들과 싸우다 국방부에 끌려가 밤새도록 맞기도 했다고 한다.

장남·장녀 모두 외국계 컨설팅회사 재직

반항기 강한 학창 시절을 보낸 정 전 대표는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ROTC(학군단)를 선택했다. 제대 이후에는 미국 MIT에서 MBA를 밟았다. 석사 과정을 마친 1982년 만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현대중공업 사장에 취임했다. 기업인 정몽준은 현실 정치를 바꾸고, 공직에 봉사하라는 아버지 정주영의 뜻에 따라 ‘정치인 정몽준’으로 변신하고자 했다. 1985년 울산에서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만류가 제동을 걸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측근을 포진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3년여 뒤인 1988년 정 전 대표는 다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민정당 정권은 “출마할 것이면 여당 후보로 입후보해달라”라고 또다시 종용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무소속을 택했다. ‘공직을 권력의 입맛에 맞춰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정 전 대표는 정치인이 되었고, 2002년 대권 도전에서 좌절하는 쓰라린 경험을 한 후, 10년 만에 다시 대권 후보의 반열에 올랐다.

정 전 대표는 전통문화단체 ‘예올’의 이사인 아내 김영명씨(56)와의 사이에 2남2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김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막내딸이다. 외교관인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해외 경험을 많이 했고, 미국 웨슬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또 김씨는 정 전 대표가 몸담았던 FIFA(국제축구연맹) 내에서도 ‘미세스 스마일 월드컵’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교성이 좋다. 정 전 대표 부부는 넷째 형수 이행자씨의 중매로 만나 1년여 열애 끝에 결혼했다. 장남 기선씨(30)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를 마친 후, 현재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재직 중이다. 장녀 남이씨(29)는 미국 MIT에서 MBA를 마친 후 역시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다니고 있다. 차녀 선이씨(26)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고, 막내 예선군(16)은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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