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인삼까지 뺏어먹으려는 중국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2.06.24 23: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오차이·백두산 인삼 등으로 세계 시장 공략 노려…한국, 독자 브랜드로 고유 이미지 구축해야

중국 쓰촨 성 내 한 박물관에 전시된 파오차이 단지(왼쪽 위). 쓰촨 파오차이는 김치와는 제조법과 맛, 형태가 다르다(왼쪽 아래). 오른쪽은 중국 도심에서 판매되는 김치와 김밥. ⓒ 모종혁 제공

중국 내륙 서북부 간쑤(甘肅) 성의 수도 란저우(蘭州) 시.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면 ‘란저우라(拉麵)’의 고향인 이곳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음식은 인기 있는 특색 요리이다. 번화가에 위치한 김밥·김치 판매점 후라라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체인점으로, 지난 2~3년간 점포 수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현지 종업원인 리양(여)은 “원래 란저우 사람들은 매운 음식이나 찬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데 김치와 김밥은 예외이다. 중국인들이 아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내륙 도시 충칭(重慶) 시 도심에는 수십 개로 추산되는 한국 식당이 성업 중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과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은 10곳도 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시 곳곳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는 김치이다. 샤핑바의 한 주택가에서 가판을 벌여 ‘한국 파오차이(泡菜)’라는 이름으로 김치를 파는 조선족 양광미씨(여)는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5백g당 8.8위안(약 1천6백원)에 팔고 있다. 양씨는 “충칭 밑반찬과 구별되는 매운맛에다 한국 대표 음식이라는 인지도가 더해져 찾는 이가 줄을 잇는다”라고 말했다.

‘종주국’ 한국의 김치는 중국 시장에 안 먹혀

란저우와 충칭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각각 100여 명, 5백여 명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김치를 모르는 현지 중국인은 거의 없다. 김치가 중국인에게 처음 각인된 것은 지난 2003년이다. 사스(SARS)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 희생자가 없는 이유가 김치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부터다. 사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으로 김치는 크게 주목되었다. 2005년 중국에서 외국 드라마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대장금>은 김치의 위상을 더욱 드높였다. 이후 중국에서 김치는 한국의 대표 요리로 중국인에게 각인되었다.

김치가 중국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달리 한국산 김치의 중국 수출은 극히 미미하다. 오히려 중국산 김치의 수입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된 김치는 총 20만3천78t으로 금액은 1억2천87만 달러에 달한다. 2009년 14만8천1백24t이었던 수입량은 2년 사이 37.1%(5만4천9백54t)가 늘어났고, 금액은 6천6백33만 달러에서 82.2%나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출량은 61t, 금액은 23만5천 달러에 그쳤다. 이는 수입량의 0.03%, 수입액의 0.19%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출량이 2009년 94t에 비해 35%나 줄었다는 점이다.

김치 수출이 부진한 데는, 가격 경쟁력 탓도 있지만 중국의 까다로운 수입 장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중국은 발효 식품에 대한 위생 기준은 없고 절임 채소에 대한 규정만 있다. 중국에서 절임 채소는 ‘소금에 절인 채소를 다듬어 탈염, 조미료 첨가, 밀봉을 거쳐 만든 것’이라고 정의된다. 발효 여부와는 관계없이 미생물 지수를 대장균군 100g당 30마리 이하로 관리해 적용하고 있다. 절임 채소로 구분된 김치는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산균이 미생물 범주에 포함되어 상품 유통에 제약을 받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에 발효 식품과 관련된 수입 검역 기준을 개정해줄 것을 꾸준히 요구했다. 지난 5월13일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정상회담에서도 관련 안건이 상정되어 논의되었다. 이러한 요구와 중국 내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중국 정부는 먼저 발효주에 대한 세균 수 제한을 삭제하는 ‘발효주 국가 표준’ 개정안을 발표했다. 절임 채소와 발효 식품에 대한 규정도 조만간 개정할 예정이다.

수입 장벽이 낮추어진다 해도 앞으로의 김치 수출 전망은 극히 어둡다. 무엇보다 중국이 김치를 중국화해 전략 산업으로 키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중국 내 한 지방 정부가 일으킨 김치 원조설은 그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투젠화 쓰촨(四川) 성 농업청 부청장은 “김칫독의 원조는 쓰촨 파오차이 단지이다”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투 부청장은 “파오차이가 채소를 단지에 담아 발효시킨다면, 김치는 독 속에서 소금에 절여 만들어 유산균도 없다”라고 김치를 폄하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쓰촨 성 수도 청두(成都)의 파오차이 업체 40여 개가 모여 청두파오차이협회를 발족했다. 위솨이(余帥) 협회 회장은 “쓰촨 파오차이의 품질을 개선하고 브랜드 위상을 높여 한국 김치와 경쟁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쓰촨 파오차이는 무·당근·배추 같은 채소에 고추·생강·마늘을 첨가해, 소금·식초·바이주(白酒)를 섞은 물에 담가 고온 발효시켜 만든다. 발효 기간이 길 수도 있지만 보통 2~3일이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제조법이나 맛, 형태에서 김치와 큰 차이를 보인다.

지린 성이 백두산에 인삼 키우는 이유

하지만 시장 규모는 의외로 커서 2010년 매출액이 1백20억 위안(약 2조1천8백40억원)에 달한다. 이는 2조8천억원 규모인 우리 김치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임성환 KOTRA 청두무역관장은 “매출액 1억 위안(1백82억원) 이상의 파오차이 생산 기업만 쓰촨 성 내에 16개 정도가 있다. 쓰촨성 정부는 파오차이산업 5개년 발전 계획을 수립해 지역을 대표하는 전략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관장은 “일부 파오차이 생산 기업은 중국 내륙 시장을 겨냥해 김치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김치뿐만이 아니다. 지린(吉林) 성 정부는 백두산, 중국명 ‘창바이산(長白山)’ 인삼을 내세워 우리 고려인삼을 위협하고 있다. 지린 성은 지난해 4월 백두산 전역을 야생 인삼밭으로 조성해 백두산 인삼을 생산하는 ‘인삼 산업 발전 가속화를 위한 의견’을 발표했다. 같은 해 5월 퉁화(通化)에서 ‘야생 인삼 자원 회복 공정’을 선포하고 경비행기로 백두산 일대에서 인삼 종자 2천㎏을 투하했다. 올해 들어 종자 2천㎏을 더 뿌렸고 옌볜(延邊)에 인삼 무역구과 인삼 가공구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지린 성이 백두산에 인삼을 키우는 이유는 야생에서 자란다는 선전 효과와 한국과 근접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중국 언론은 한국이 수출하는 인삼의 주요 소비자가 중국인이나 화교라고 보고 있다. 전적으로 인공 재배에 의존하는 한국과 달리 백두산의 천연 환경을 특화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려 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는 100년 된 백두산 산삼이 한 뿌리에 100만 위안(1억8천2백만원)에 경매되기도 했다. 지린 성은 5년 내 인삼 생산액을 1백50억 위안까지 늘리고 수출액도 3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이 김치와 인삼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중국 지방 정부는 우리의 김치와 인삼을 이용해 쓰촨 파오차이나 백두산 인삼의 인지도를 높임으로써 자국 내수시장은 물론 대외 수출을 늘리려 하고 있다. 우리의 대표 수출 상품이 중국의 상업적 목적에 의해 휘둘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국인에게 그릇된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김치는 한국 파오차이라는 절임 음식으로, 고려 인삼은 창바이산 인삼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름의 뜻과 의미를 중시하는 중국인이기에 그 여파는 크다. 정만영 주청두 총영사관 총영사는 “파오차이가 중국 전통 음식이듯 김치는 우리 고유 음식이기에 독자적인 명칭이 필요하다. 김치의 중국어 이름을 즐거움을 주는 뜻의 ‘진치(金祺)’나 다른 적절한 이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발음과 유사하고 ‘으뜸가는 도시’라는 뜻의 중문 이름 셔우얼(首爾)이 중국의 한 지방 도시를 연상케 하는 한성(漢城)을 대체한 효과는 컸다.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작지만 세심한 일부터 고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