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사칭’에서 ‘카드론 편취’까지 수법 무궁무진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7.0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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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이종현
보이스피싱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지능 범죄이다. 전화를 거는 조직원들은 ‘심리 전문가’ 뺨칠 정도로 사람 속이는 데 능숙하다. 범죄 수법은 계절이 바뀌듯 매일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인간 본성에서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 겁을 주고, 믿음을 갖게 하면서 소중한 재산을 빼앗아간다.

지난 2006년 중반부터 중국발 보이스피싱이 시작되었다. 불특정 한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입수하고는 중국 내 콜센터에서 무차별 전화 공세를 펼쳤다. 서해를 건넌 첫 전화는 솔깃했다. 텔레마케터들은 ‘국세청이나 건강관리보험공단 등’의 기관을 사칭했고, 피해자들은 “공공 요금을 환급해준다”라는 말에 앞다투어 현금인출기(ATM) 앞으로 달려갔다.

그 다음 수법은 피해자에게 잔뜩 겁을 주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어 안전 조치가 필요하다”라며 계좌에 있는 돈을 이체하도록 요구했다. 일반 서민들은 ‘범죄’라는 말에 또 한 번 당했다. 대입 수능시험 후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타깃이 되었다. 특정 학교의 수험생 명단을 입수한 후 “대학 입시에 추가 합격되었다”라고 속여 등록금을 자신들의 계좌로 보내도록 했다.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는 아들과 딸이 납치된 것처럼 꾸며 돈을 요구했다. 자녀의 안전이 걱정된 부모들은 사기범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해외 유학생이나 군 복무 중인 자녀의 부모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녀들과 바로 연락이 안 되는 특수 상황인 것을 알고는 납치나 사고를 빙자해 돈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첨단 수법을 도입했다. 인터넷 메신저 정보를 해킹해 로그인한 뒤 대화나 쪽지를 보내는 방법이다. 주로 피해자의 지인에게 접근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라면서 송금을 요청했다. 우체국 직원을 사칭해 “신용카드가 반송되었고, 명의 도용이 의심된다. 보안 장치를 해주겠다”라고 속이는 일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카드론 편취형’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피해자의 신용카드 정보를 알아낸 뒤 ARS를 통해 카드론을 신청한다. 카드론 대출금이 입금되면 ‘범죄 자금’이라고 속여 송금을 유도했다. ‘공인인증서 재발급형’ 수법도 등장했다. 사전에 피해자의 금융 정보를 알아낸 뒤 카드론을 신청하고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아, 인터넷 뱅킹을 통해 피해자 계좌의 대출금을 직접 챙겼다. 은행원을 사칭한 사기범이 수사관을 사칭하는 공범에게 연결한 후 ‘거래 내역 추적 등’을 빙자해 공황을 야기해 자금 이체를 유도한 적도 있다.

경찰과 금융기관에서는 “최근 보이스피싱은 소액·다수 피해에서 고액·소수 피해로 전환되는 추세이며, 신종 수법이 등장하고 방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라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수법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앞으로도 각양각색의 수법이 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대출금 상환’이나 ‘분양 대금 입금’ 요구이다.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자나 아파트 분양자가 대상이다. 이들의 정보를 빼내 대출금(분양 대금)을 납입하라며 송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카드론에서 재미를 본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비대면 대출 상품’ 등을 노릴 수도 있다.

올해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도 보이스피싱 조직에게는 호재이다. 여론조사를 하는 것처럼 통화한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참여자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라며 경품 수령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기발한 수법에 서민들의 가슴만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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